무의식의 세계 19

피해자가 가해자로 되는 순간

by 김통

학창 시절로 돌아갔나 보다. 교복을 입고 학교에 들어서는데, 몇몇 애들이 화장실에서 나를 괴롭혔다. 가로막고 못 가게 막으며 온갖 폭언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난 그 애들에게 조목조목 따졌고, 아이들은 한 걸음씩 뒷걸음을 쳤다. 약간의 통쾌함을 느낌과 동시에 다른 아이가 화장실에 들어오자마자, 그 아이들은 새로운 아이를 타깃으로 삼고 나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난 그 아이를 구하진 못했다. 그저 화장실을 벗어났다. 하지만 수업엔 이미 늦었고, 중간에 교실에 들어가서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바에는 차라리 쉬는 시간에 들어가야 할지, 아니면 오늘 하루 학교를 쉬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잠에서 깨어났다.


어렸을 적, 나는 말이 없고 조용한 아이였다. 항상 생활기록부에는 ‘숫기가 없어, 얌전하며, 내성적이며’ 등의 단어들이 늘 빠짐없이 등장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내성적’인 것과 ‘내향적’인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실제로 난 내향적이기도 하다.

아무튼 나 같은 아이는 늘 포식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는 걸 나중에 알긴 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일화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한 친구가 다가와서 오늘부터 ‘왕따놀이’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첫 대상자가 ‘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아이들이 그날 하루 종일 나를 이른바 ‘왕따’ 시켰다.

물론, 모든 아이들은 아닐 테고, 몇몇의 여자아이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뭐 어찌 되었든지 간에 그날 난 아무랑도 놀지 못했고, 아무도 내가 물어보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심지어 집에 갈 때 늘 같이 동행했던 친구들 조차 나와 함께 가지 않았다. 나는 그날 혼자 터벅터벅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난 정말 그게 ‘놀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엄청나게 ‘잔인한 놀이’.

다음 날, 그 아이는 이제 더 이상 그 놀이는 안 하기로 했다고 말하고 쏜살같이 다른 자리로 가버렸다.

미처 내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한편으로는 그런 ‘잔인한 놀이’가 끝났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고, 결국 나를 놀리기 위한 놀이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그건 ‘놀이’가 아니라 ‘폭력’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았다. 그 날 이후로 결심했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 또 이런 일을 안 당하려면 ‘힘’ 있는 아이들과 지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소위 ‘날라리’라고 불리는 아이들하고도 어울려 보려고 했지만, 역시 그들도 나를 그저 ‘심부름꾼’이나 ‘장난감’ 정도로만 치부하면서 나에게 남을 괴롭혀보는 걸 시키기도 했다.

내가 피해자였다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 이 잔인한 ‘놀이’이자 ‘폭력’을 멈춰야 함을 알아챘다.

결국, 나는 그 이후로 ‘고독’의 길이라 쓰고, ‘사색’이라 읽으며 내 친구들은 현실세계가 아닌 상상의 세계인 ‘영화’,‘책’에서 찾고자 했다. 다행히도 읽을 책은 무궁무진했으며, 봐야 할 영화도 넘쳐났다. 물론, 도시락을 먹을 때 ‘같이 먹자’ 말하는 친구가 없어도 혼자 씩씩하게 잘 먹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긴 했다. 다만 ‘친구’라는 것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의견을 피력하는 일도 뒤늦게 생겼고, 나만의 ‘주관’이라는 것도 생겼다. 그리고 진실한 친구를 감별하는 약간의 능력도 생겼다.


이 꿈을 꾸게 된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요인이 있는 것 같다.

첫째, 며칠 전 자전거를 타다가 무릎 골절상을 당했다. 누가 들으면 무슨 MTB라도 탄 줄 알겠지만, 난 그저 동네 주변을 살살 달렸을 뿐이다. 아주 살살. 그래서 태어나 처음으로 깁스를 했다. 움직임의 제약이 생각과 시야를 제약하는 건 아니지만, 신체의 불편함이 깊숙한 내면에 숨겨져 있는 ‘불편함’을 끄집어낸 게 아닐까 싶다.


다른 한 가지 요인은 며칠 전에 읽은 기사 때문인 듯하다. 기사에서는 과연 학교에서 인기 있는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내용이었다. 글쓴이는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그들이 사회에서 성공하기보다는 오히려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하였다.


https://www.mentalhelp.net/blogs/are-popular-kids-at-school-more-successful-later-in-life/


생각해보니, 나도 학창 시절엔 ‘인기’와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나름대로 사회생활도 잘하였고, 그럭저럭 인생을 잘 꾸려나가고 있다. 물론, ‘공황장애’를 진단받고 난 뒤에는 내 인생에 균열이 생긴 것 같아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지만,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온 날 들에 대한 보상이자 ‘갭 이어(gap year)’ 라 생각하며 다시 나의 친구들을 소환하고 있다. 책과 영화들.

그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며, 내가 선택을 하든 안 하든 열심히 무럭무럭 그 자리들을 잘 지키고 있어서 오히려 내가 미안함을 느낄 지경이다. 물론, 소셜미디어 시대로 넘어오면서 책과, 영화들의 자리가 위태롭다고는 하지만 항상 그래 왔듯이 그들은 현명하게 자신의 자리를 잘 포지셔닝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 세상엔 내가 아직 만나지 못한 셀 수 없는 많은 좋은 작품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 테다.


초등학교 시절에 가장 즐겨 읽었던 작품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이었다. 난 에드몽 당테스처럼 그들에게 복수를 꿈꿨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 복수라는 걸 꿈에서 실현한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꿈속에서 화장실에서 그들에게 맞선 나는 현재의 '나'일 테고, 뒤에 들어온 아이는 과거의 '나'일 테다.

하지만, 과거의 '나'를 구원해주진 못했다. 그건 과거의 '나'가 해결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를 구해줄 수도 있을 테지만 그건 과거의 ‘나’를 부정하는 일일 수도 있다.

과거의 암울했던 시절의 ‘나’도 ‘나’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난 지나쳐 갔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모든 경험들을 소중한 순간들로 받아들이기로 했기에, 나의 첫 골절상도 신기할 따름이고, 잊고 싶었던 학창 시절의 기억들도 고마워하기로 했다. 덕분에 좋은 작품들을 많이 읽고, 좋은 영화들을 많이 봤으며 이런 나의 판타지 친구들은 나를 성장시킨 자양분이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진부한 말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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