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세계 20

꿈을 꾸기엔 나이랑 상관없다.

by 김통

한 중년의 여성이 있었다. 그밖에 몇몇의 남성들도 있었다. 나도 있었다. 우리는 관광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 여성은 버스의 맨 앞에 앉아서 담배를 물고 있다. 어딘가를 응시하는 그 눈빛이 매우 강렬하여 아무도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목적지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버스는 달리고 있었고, 정적을 깨는 굵은 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어딜 간다고요?”

그러자, 맨 앞에 있던 여성이 계속 응시하던 곳을 주시하며 그 남자의 말에 무미건조하면서도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충청도 000라고.”

그리고, 그녀는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자, 또 다른 남자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그 여성을 향해 들으라는 건지, 대답을 요구하는 건지 모를 애매모호한 말투로 말했다.

“어차피 오늘 다시 온다면서, 뭐하러 거기까지 가는 거요?, 어차피 도착하면 다시 돌아와야 할 시간이구만”

나도 그의 말에 속으로 긍정하며, 도대체 이 여정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처럼 마음속의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에 그녀는 대꾸하지 않고, 여전히 같은 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담배만 길게 피워댔다.

“그러게 말이야. 굳이 오늘 거기까지 가야 하는 건지 원”

두 남자는 서로를 번갈아보며 투덜거렸지만, 여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내뿜는 뿌연 담배 연기는 뒤에 앉은 내 자리까지 스멀스멀 퍼져왔다.

한참 뒤, 그녀가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냥 가는 거야. 돌아오더래도. 우리는 가야 해. 가야 하니까 가는 거지. 그게 우리의 목적지니까. 물론 거기서 우린 바로 돌아올 수도 있고, 10분이라도 쉴 수는 있겠지. 그건 우리가 지금 얼마나 가야 하는가에 따라 달려있고, 도로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 차가 많이 막히면 막히는 대로 가는 거고, 거리낌 없이 달리게 되면 금방 도착해서 조금이라도 쉬고 돌아올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은 알 수 없지. 얼마나 걸릴지. 하지만, 목적지만 생각해.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 그것만 생각하자고. 가서 돌아오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것도 우리의 할 일이고, 돌아오는 것도 우리의 몫인 거지. 하지만, 한 가지만 생각하자고. 목. 적. 지.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한다는 것만 생각하자고. 가는 과정, 돌아오는 여정. 그런 건 지금 생각할 필요가 없어. 다시 한번 말하자면, 목적지. 그게 우리가 지금 가는 이유야.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아까와 같은 자세로,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같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담배연기처럼 사라졌다. 다리를 다치고 나서부터 유독 어디 가는 꿈을 거의 매일같이 꾸고 있다. 한 번은 말레이시아, 한 번은 캘리포니아 어딘가, 한 번은 제주도인지 울릉도인지 기억 안 나는 섬. 무언가의 제약은 무언가에 대한 갈망과 판타지를 만들어 내는 듯하다.

움직일 수 없는 처지가 되다 보니,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물리적 욕구는 심리적 욕구와 결합되어 더더욱 진화된 꿈을 꾸게 되었나 보다.


마치, 나의 심리적 불안을 정리해주는 듯한 그녀. 담배연기처럼 사라진 그녀.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목적지만 생각하라고. 과정은 예측할 수 없지만, 가서 쉬게 될지 다시 돌아오게 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그래. 나에게도 꿈이 생겼다. 손이 잡히지 않는 꿈. 남들은 비웃을 수도 있고, 세상 물정 모르는 꿈이라 할지라도 나에겐 그것이 ‘목적지’인 것이다. 과정이 힘들어도, 가서 ‘이게 아니다’ 하고 바로 돌아올 수도 있는 꿈.

이 나이에 새로운 꿈이 생긴 게 어색하긴 하지만, 다시 돌아오더라도 ‘목적지’를 향해 달려 나가 봐야겠다.

그게 1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말이다.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의 1962년 작 ‘쥴 앤 짐(Jules et Jim)’은 ‘앙리-피에르-로쉐’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놀라운 점은 이 작품이 그가 73세에 출판한 그의 첫 작품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의 친구는 나를 격려해주었다. 최소 73세 때 까지는 너의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꿈속의 그녀가 말한 대로, ‘목적지’ 하나만 보고 달려야겠다. 그녀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혹은 확신이 서지 않았던 나의 마음가짐들을 다잡아 주었던 또 다른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이매진 드래곤스(Imagine Dragons)의 Dream 이 더더욱 와 닿은 날이다.

That everything's a mess

But I wanna dream
I wanna dream
Leave me to dream

(모든 게 엉망이지만, 난 꿈꾸고 싶어. 꿈꾸게 내버려 둬)

https://www.youtube.com/watch?v=BWu7JDETw_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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