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무의식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by 김통

이 작품은 1973년에 발표한 흑인 운동가인 제임스 볼드윈의 소설이다. 포니와 티시는 아주 어린 흑인 커플이지만, 할렘가를 벗어나 포니가 활동하는 순간부터, 백인 경찰들의 눈에 포니는 그저 먹기 좋은 먹잇감이자 표적이 되는 셈이다. 죄 없이 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성실하게 살아왔던 포니는 졸지에 강간범 신세가 되며 감옥에 가게 된다. 포니와 티시는 다행히도, 주변에 좋은 어른들이 몇 있었다. 티시는 보기 드물게 단단한 흑인 가정에서 자랐으며, 그녀의 부모는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제도권에 대한 불합리함을 뛰어넘어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고자 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자식들이자, 이 사회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이 작품에 대한 리뷰는 여기서 생략하고 , 여기서는 티시가 꾼 꿈을 바탕으로 그녀의 무의식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이 소설에서 꿈 장면은 딱 한 번 나온다. 티시가 포니를 면회하면서, 티시는 절망인지 두려움인지 눈물을 쏟아내고, 그날 밤 꾸게 되는 꿈이다. 티시의 꿈속에서 포니는 큰 고속도로 위에서 큰 트럭을 과속한 채로 몬다. 티시는 아무리 포니를 부르지만, 포니는 듣지 못한다. 두 개의 도로 중 하나는 바다 위 절벽의 가장자리에 나 있고, 다른 도로는 티시네 집의 차고로 이어진다. 티시는 포니를 목청이 터져라 부른다.


이 꿈은 이 소설의 핵심이자 상징으로 묘사되며, 흑인 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두 가지의 길.

하나는 절벽으로 치닿는 길, 모든 것이 바다라는 거대한 욕망과 지배층의 비정상적이고 불합리한 지배질서의 소용돌이 속으로 풍덩하게 되는 길, 다른 한 길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사랑으로 서로서로를 이해하고 감싸며 거대한 지배계층에 맞서는 불굴의 힘을 보여주는 길이다. 티시는 아무리 포니를 불러도 들을 수 없다. 감옥이라는 거대한 공간 안에 던져진 포니는 티시와 포니가 유리벽을 사이에 대화하듯이, 모든 게 전혀 다른 공간에 타의로 위치되어진 것이다. 포니는 애달프고, 초조하고 불안하며 두려움에 떨고 질주한다. 그렇기에 티시가 아무리 불러도, 그 소리는 유리벽에 메아리치는 허공처럼 반사되어 다시 티시에게 돌아올 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꿈속에서 포니는 차를 돌렸다. 이제 자포자기한 그저 ‘흑인’이기에 희생되는 ‘흑인’이 아닌 사랑과 굳건함, 정신의 곧음, 대항하려는 의지, 삶에 대한 흑심(a black heart)을 조각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 힘은 바로 티시의 가족들에 대한 올바름이고, 가족애에 대한 정상적인 행태이며, 미래 세대에 대한 희망이 받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고 전진하는 힘. 올바른 동지애와 가족애에 대한 믿음, 이 모든 것들이 티시의 꿈에, 그녀의 무의식 속에, 저자의 의도적인 메시지가 동시에 함축되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중간에 티시는 포니가 차를 돌리는 순간 깨어났다. 티시의 힘에 의해 포니는 포기하지 않고 정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어떻게 사건이 전개되었는지는 꿈에서도 소설에서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건 제임스 볼드윈도 모를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이 백인 주류 사회 미국 땅에서 ‘흑인’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버텨낼지 말이다.


이 책이 1973년도에 발표되었지만, 아직도 똑같은 일들은 현재 진행형들이며, 어떤 이들은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곤 있다. 다만, 그들이 어떤 곤경에 처했는지를 떠올려보면, 개개인 하나하나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여과 없이 드러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볼드윈은 포기하지 않았다. 티시도 포기하지 않았고, 티시의 가족들도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는 힘은 포니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포니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꿈에서 티시는 목청이 터져라 포니를 부른 것이다. 포기하지 말고 함께 전진하여 우리 아기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자고. 아주아주 조금씩 변화가 될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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