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봉고차
학창 시절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포’ 아닌 ‘공포’가 하나씩 있을 것이다.
그건 ‘성적’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고, ‘친구관계’ 등 여러 관계들에 대한 고뇌일 수도 있다. 나의 ‘공포’는 셔틀버스를 놓칠까 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일단, 우리 집은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꽤 멀었다. 그래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고갯길을 올라가야 했는데 내 동네 주변에 사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의 어머니들은 돈을 모아 분홍색 봉고 아저씨를 섭외했다. 이른바 사설 셔틀버스인 셈이다. 매달 아저씨께 흰색 봉투에 교통비를 넣어서 드리는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난 시간 맞춰 약속 장소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잠도 설칠 때가 많았고,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지만 내가 만약 그 분홍색 봉고차를 놓치면 지각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과 매일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나가야 한다는 게 크나큰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지각 좀 한다고 무슨 인생에 큰일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내가 학교 다닌 시절에만 해도 ‘지각’은 무시무시한 ‘처벌’의 대상이었다. 더군다나 학교라는 길이 고될 경우에는 더더욱 공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거라 여겼다. 그리고 1분만 내가 늦게 버스에 타도, 주변의 시선은 싸늘했다. 근방에 사는 친구들이긴 하지만 우리는 3년 동안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누거나 통성명을 해본 적이 없다. 아! 한 명 정도 하고는 ‘안녕’ 하고 인사를 나누며 지낸 적이 있다. 하지만 난 나머지 9명 아이의 얼굴도, 이름도 전혀 기억나지 않은 그저 백지 같은 존재들로 기억할 따름이다. 마치 브이 포 벤데타의 가면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난 토요일 오후를 가장 좋아했다. 그날은 봉고차를 안 타고 자유롭게 집에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 학교 근처에 있는 ‘신림역’을 탐방한답시고 근처를 동네방네 돌아다니고, 그 당시 꽤 유명했던 ‘광장서적’에서 몇 시간씩 이 책 저 책들을 두리번거리며 신간 서적이라든지, 베스트셀러라는 그런 책들을 탐색해보곤 했다.
그러나 토요일 오후를 제외하곤 분홍색 봉고차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은 늘 나를 강하게 짓눌렀다.
0교시 시작이 7시 30분이므로(내 기억으로는), 난 집 앞에서 6시 45분쯤엔 차를 타야 했다. 물론, 헐레벌떡 타는 일이 대부분이고 브이 포 벤데타 아이들은 나를 쳐다본다거나 정면으로 응시한 적도 없다. 난 그저 가면들 사이를 걸어가는 유령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에 누구나 그렇듯 제정신으로 학교를 다니진 않았을 테고, 나 역시 언제나 계속 수면부족 상태였다. 그렇다고 내가 공부를 많이 해서 수면부족은 절대 아니고, 마침 우리 집이 케이블 tv를 개통하였고, 난 밤새 OCN의 수많은 영화들을 보았을 뿐이다.
비디오를 빌리지 않고도 24시간 영화만 나오는 채널이 있다는 건 17년 나의 인생에 있어서 과히 혁명적이고도 감격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 영화 하나하나를 놓치는 게 아쉬워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뒤, ebs 강의를 꾸벅꾸벅 졸면서 한두 시간 보다가 졸린다는 핑계로 늘 OCN을 돌려 영화를 봤다. 그러면 정신이 말똥 해지고, 잠자리도 뒤척거리게 되면서 늘 한 가지의 꿈을 꾸게 되었다. 그건 ‘분홍 봉고차를 놓치는 꿈’이었다. 내가 아무리 달려가도 봉고차는 출발했고, 내가 아무리 소리를 부르짖어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으며 나의 분홍색 봉고차는 그렇게 나를 놔두고 달려가는 것이다. 이런 꿈을 거진 3년 내내 꾸게 되었다. 다행히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그 꿈을 꾸게 되지 않을 거라 여겼는데 일 년에 한 번, 이년에 한 번, 오 년에 한 번, 주기로 가끔 나타나 주긴 한다. 이게 내 심연에 쌓여두고 있는 ‘공포감’의 발현인지, 그 시절의 추억인지 이제는 헷갈린다. 밤새도록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쾌감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내 미래는 백 도화지일 것이라는 백치의 순수함을 아쉬워하는 것인지, 십 대 라는 케케묵은 숫자 관념에 빠져 적은 숫자에 대한 미련인지 알 수는 없다.
그래도 세상에 대한 낭만과 판타지가 아주 조금은 남아있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그럴지언정, 아직도 난 분홍 차를 놓치는 걸 보면,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꿈에서도 인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