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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Sep 19. 2021

<병상일기6>

 아시다시피 간호사는 삼교대 근무다. 입원했던 병원의 병실 간호사는 서너 명쯤. 가끔은 수술실 간호사까지 교대 근무를 하는  같았다. 마스크로 가리고 있으니 처음에는 간호사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았다. 살집이 있는 간호사는 그래서 제일 먼저 익숙해졌다. 몸만 봐도 달랐다. 그녀는 제법 비만에 가까울 정도였는데, 눈빛은 사슴처럼 맑았다. 아마도 간호사 중에 제일 어린 축에 드는 듯했다.


입원 첫날이었다. 그녀가 혈압을 재는데 혈압기에서 자꾸 오류가 났다. 그녀는 나중에 다시 온다며 돌아갔다가 다시 그 나중에 돌아왔는데, 역시나 혈압기에 오류가 떴다. 잔뜩 예민했던 내게서 좋은 반응이 나올 리가 없었다. 왜 혈압 체크가 안 되는 거죠? 다른 혈압기를 가져와 보시든가요.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대며 돌아갔다. 그리고 역시나 똑같은 혈압기를 들고 다시 찾아왔다. 혈압기가 그것뿐이라고 했다. 간신히 혈압을 체크했다. 180이 넘었다. 그녀는 이번엔 혈관을 찾기 시작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라고 내게 말했다. 혈관을 찾는 그녀를 살피니,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내게서 또 어떤 지청구를 들을까 겁을 먹은 건 아닐까, 그쯤되자 그녀가 애처로웠다. 기껏해야 내 딸아이보다 서너 살 많아보이는 걸…


그녀는 주사를 놓을 때도 특별했다. 엉덩이를 두 차례 때린 후, "꾸욱~!" 소리를 내며 주사를 꽂았다. "꾸욱~!"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내 심리상태가 안정적이었다면 귀엽게 봐줄 수도 있었겠지만, 심신이 최악의 상태였던 때였다. 이건 뭐, 병원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어린 그녀에게 더이상 상처를 주긴 싫었다. 나는 그녀가 주사를 들고 들어올 때마다 꾸욱, 꾸욱, 꾸욱을 마음 속으로 열 번씩 외쳤다. 그러면 조금은 익숙해질까해서. 그리고 그 사실을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그녀는, 까내린 내 엉덩이에 바늘을 꽂으며 꾸욱,하는 추임새를, 잊지 않았다.


또 다른 그녀는 꾸욱,소리는 내지 않았다. 다만 엉덩이에 멍이 들 만큼 손바닥으로 맵차게 때렸다. 엉덩이 주사를 맞는 게 아니라 형벌을 받는 것 같았다. 찰싹, 찰싹!! 유달리 연한 엉덩이에 붉은 손자국이 났으리라고 나는 확신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가 주사를 들고 문을 열어젖힐 때마다 내 귀에선 찰싹, 찰싹!! 굉음이 들렸다. 주삿바늘보다 따갑고 아픈 손바닥질은 난생 처음이었다.


또 다른 그녀말고, 또 다른 세 번째 그녀는 유독 마스크에 민감했다. 일인실을 쓰던 참이었으므로 나는 혼자 있을 때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는데, 그녀에겐 그게 참을 수 없는 반란의 행동으로 보인 듯했다. 내게 몇 번이나 주의를 줬다. 외부 출입도 안 되는 곳에서 독방에 들어앉은 환자가 마스크까지 해야 하는지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려면 뭐하러 일인실을 쓰나... 네,네. 대답했지만, 혼자 있을 땐 마스크를 벗었다.

한번은 그녀가 문을 열고 주춤 섰다. 그러더니 병실 구석구석에 소독약을 뿌리기 시작했다. 내가 버젓이 누워있는데, 소독약을 저렇게 뿌려도 되는 걸까, 의아했지만 그런가보다 했다. 다음날인가는 아침 일찍 주사를 들고 그녀가 내방했다. 나는 자고 있었다. 입원했던 내내 밤에 잠을 잘 수 없었다. 두근두근 불안했으며 고요와 침묵이 공포였다. 밤새 뒤척이고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그리고 기어이 새벽 해가 떠야 지쳐선 잠이 들었다.

그날도 그렇게 헤매다가 늦잠을 자던 중이었다. 누군가 내 얼굴을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화들짝 놀라 깨보니, 그녀가 서있었다. 억, 하고 일어나 앉으려는데 문득 입이 답답했다. 그녀가 마스크로 내 입을 덮어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 죽음을 맞으셔야 해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입이 눌린 채로 공포에 떨었지만, 다행히도, 그건 "아침 주사 맞으셔야 해요.”란 소리였다.

황당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황당해서 역시 아무 말도 못한 채로 나는, 그녀에게 엉덩이를 내어주고 말았다. 순결을 잃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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