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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Sep 18. 2021

<병상일기5>

 입원해 보면 알겠지만, 병원의 실권자는 원장이나 의사가 아니다. 정형외과의 경우, 부장이나 실장이  기세를 휘어잡는다.  병원의 부장님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싶다. 비교적 전형적인 인물이다. 특별히  하는 줄은 몰겠으나 딱히  끼는 곳은 없다. 고정된 근무 방이 있지만 행적은  유동적이다. 그가 주로 가는 곳은 흡연 구역으로 향하는 비상구다. 뭔지 어쩐지 분주해보이긴 하는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잠깐 보이는  싶다가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입원실을 정할 때도 그랬다. 그가 나와 남편을 데려간 곳은 일인실이었다. 아담하고 말끔해보였다. 남편이 맘에 들었는지 그 방을 쓰겠다고 했다. 나로 말하자면, 망설이긴 했다. 아시다시피 일인실은 보험 적용이 안 됐기 때문이다.

굳이 이런 여유를 누릴필요가 있을까. 그냥, 삼인실 쓸게요.

내가 말했을 때 부장님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이고, 요즘 코로나 때문에… 다인실은 힘들지요.

그래도 삼인실 쓸래요.

부장은 쩝,하며 입맛을 다셨다.


내가 고집을 부린 건 돈 때문은 아니었다. 그의 느물느물한 표정과 속물적인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던 탓였다. 남편은 난처한 모양이었다. 일단 계약서에서 입원실 선택은 뛰어넘고 다른 사항부터 체크하기 시작했다.


유착 방지용 주사가 있어요. 나중에 철심 뺄 때 열어보면 혈관이며 근육들 유착이 얼마나 심한지 말도 못해요. 우리 원장님은 이 주사를 꼭 쓰거든요.

부장님은 이건 매우 신중한 일이라는 듯 얼굴에 제법 비장을 실었다.

얼만데요?

오십만 원.

남편이 흠… 하더니 싸인을 했다.

그리고… 다시 부장이 말했다. 비타민 주사가 있는데…

그건 얼만데요?

사십만 원.

이쯤되자 남편이 나를 쳐다봤다. 너는 원하냐는 눈빛이었다. 아니, 이 인간은 지 멋대로 신나게 싸인할 땐 언제고 이제 감당이 안 되나보지?

한쪽은 사탕발림으로 낼름대며 꼬시고 다른 한쪽은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개폼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가관의 극을 달리던 중이었다.

내가 말했다.

제가 왜 비타민을 맞아야 할까요.

응…. 그게요.

필요없어요.

짜증이 줄줄 새는 목소리로 내가 대답했다.

뱀을 닮은 부장님과 가오잡는 똘만군이 뭐, 그럼 그러덩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입원실은 일인실로 결정했다. 이마에 내천 자를 만들며, 당신은 코를 골아서 아무래도 일인실을 써얄 것 같아. 똘만군이 말했고, 그걸 덥썩 물어낸 뱀부장이 이렇게 말했던 때문이었다.

아… 그거 코골이 그거 민원 들어오면 우리가 참 난감한데…


입원실에 짐을 부리고 침대에 누웠다가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어? 창문이 없네?

억울해서 그랬는지 답답함 때문이었는지 길고 긴 병원 밤시간이면, 나는 가슴을 두드리고 때로 쥐어뜯었다.


속고 속이고 속는 척 속이지 않는 척, 세상사가 그렇다. 혼자 똑똑한 척하지만 인생길 굽이굽이에서 똥멍청이가 된 우리가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죽진 않는다. 오늘은 내가 피해자지만 어느 날인가는 가해자로 탈바꿈한 내가 있다. 그러니 그토록하게 똑부러질 필요는 없다. 대충 퉁치며 사는 거, 그게 또 생의 기막힌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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