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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Sep 25. 2021

<상실에 관하여>


내 기억의 시작은 동생을 낳은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던 장면이에요. 아빠가 엄마를 부축했고 할머니가 아가를 안고 있었어요.  엄마는 몸속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듯 보였어요. 오랜만에 봤는데도 잘 지냈니? 한 마디뿐, 허옇게 뜬 입술을 혀로 축이며 곧장 안방 안으로 들어갔어요. 내 나이 네 살이던 어느 해 추석 즈음이었어요. 아빠는 오빠에게 동생들이 안방 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잘 감시하랬어요. 초등생이던 오빠는 우리를 지키고 또 단속할 의무가 있었죠. 그러나 기껏해야 아홉 살, 초딩 이 학년인 오빠도 호기심의 불사신 앞에선 맥을 못추는, 그저  어린 아이였을 뿐였죠. 아빠가 서재로 들어가자 오빠는 안방 손잡이를 스르르 돌렸어요. 물론 우리에겐 꼼짝말고 티비나 보고 있으라고 명령해두고요.


방문을 살짝 열고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오빠를 향해 엄마는 씩 웃었다고 했어요.


아직 가을이었는데, 안방은 후끈했어요. 엄마는 아랫목에 누워 있었어요. 언니와 내가 엄마 곁으로 다가갔어요. 오빠는 아기 옆으로 갔고요. 뜨끈뜨끈한 아랫목 바닥이 따갑게 느껴졌어요. 나는 엉덩이를 들고 쪼그려앉았죠. 엉덩이에 불이 붙을 거 같았거든요.


아기는 작은 담요 위에 뉘어져 있었어요. 그 담요는 내 것이었어요. 고동색 테두리에 ‘밤비’ 사슴이 크게 그려진, 보드랍고 포근한 담요였죠. ‘밤비’의 눈이 참 크고 예뻤어요. 그래서 나는 그 눈을 손으로 문지르며 놀곤 했죠. 내가 밤비의 눈을 손바닥으로 비빌 때마다, 밤비는 부끄러운 듯 눈을 내리 깔기도 하고, 성이 난듯 눈을 모로 세우기도 했죠. 신기했어요. 살아있지 않은 그림이 내 손바닥을 거치면 표정을 바꾸곤 했으니까요.


“저거 내 담욘데…”


나는 엄마에게 말했어요. 아마도 눈살을 찌뿌렸을 지도 몰라요.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분명 내 담요였거든요. 게다가 아가의 몸에 깔려 밤비의 눈은 보이지도 않았죠. 그때, 아가가 팔을 버둥대며 끼잉, 하는 소리를 냈어요. 동시에 엄마가 손가락을 들어 입에 갖다 대며, 우리를 향해 “쉿!”했어요.  


나는 좀 심술이 났어요. 다시 얘기하지만 그건 내 담요였어요. 쪼그린 다리가 저릿해서 엉덩이는 이미 아랫목 바닥에 철퍼덕 퍼질러졌는데, 어찌나 뜨겁던지 정말이지 더는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죠.


아가는 아주 잠깐 사이에 또 잠이 들었어요.


“ 엄마, 아기 손가락 좀 만져봐도 돼?”


이번엔 엄마의 귀에 대고 내가 속삭였어요.


“안 돼. “


힘없는 소리였지만 단호한 말투로 엄마가 말했어요. 그리고는 아가의 발치에서 물끄러미 아가와 엄마를 바라보던 오빠를 향해 말했어요.


“호야, 이제 동생들 데리고 나가 있어라.“


오빠는 고개를 끄덕이곤, 언니와 나를 향해 나가자는 눈짓을 했어요.


언니가 말없이 일어섰고 저도 엉거주춤 일어섰어요. 그때였어요. 아가가 으앙!하며 울음을 터뜨렸어요. 손과 발을 버둥대는 아가의 등짝 밑으로 밤비의 까만 눈이 반짝 드러났다가 다시 사라지길 반복했어요. 엄마가 힘겹게 일어나 아가를 안았어요. 그러자 밤비가 살아났어요.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부르르, 그렇게요. 나는 담요를 번쩍 들어 안았죠.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내 것이었니까요. 언니가 내 팔뚝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어요.


“야. 애기 거잖아.”


“원래 내 거거든!”


내가 우겼어요.


엄마가 오빠를 다시 불렀고 우리는 모두 안방에서 나와야했어요. 담요는 두고 가라고 엄마가 말했어요. 오빠는 이게 모두 니 탓이라며 제 등을 거칠게 밀었어요. 거실로 쫓겨난 우리는 모두 조금씩 화가 났어요. 그게 단지 쫓겨났기 때문인지 엄마와 아기를 볼 수 없게된 때문인지 알 순 없었지만, 기분은 고약하게 안 좋았어요.


나는 밤비를 두고 온 것이 못내 억울했어요. 그건 내 거라고 엄마가 분명히 말했었거든요. 언니는 암것도 모르면서 혼자 잘난 척을 한 거였죠. 내 밤비를 이래라 저래라 그럴 순 없는 거였 거든요. 나는 티비를 보고 있는 언니 뒤로 몰래 걸어가서 머리 끄뎅이를  잡아당겼어요. 언니가 으악! 하고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할머니의 고함 소리가 들렸어요.


“저노무 간나 봐라! 언니 머리 끄뎅이를 잡고 흔드는 동생이 어딨네? 저노무 간나래 왜 저리 말썽이간?어?”


그날 나는 할머니가 정성껏 차려준 밥도 몇 숟가락 먹지 않았어요. 할머니는 밥을 께적댄다며 나에게 또 야단을 쳤어요. 암것도 모르는 할머니가 미워서 나는 숟가락을 소리나게 밥상 위에 던졌지요. 할머니는 완전히 진노하셨어요. 간나였다가 종간나였다가 썅간나까지 이어지는 욕세례를 거품까지 물고 쏟아내셨어요.


그날 밤에 나는 언니 옆에 누워 몰래 울었어요. 언니가 눈치를 챘는진 모르겠어요. 중요한 건 나를 달래주지 않았단 거예요. 언니도 오빠도 아빠며 할머니도. 모두 나를 외면하거나 나를 향해 인상을 쓰거나 심지어 욕을 퍼부었던 거예요.


나는 담요를, 아니 밤비를 빼앗겼는데 말예요. 이유도 없이 막무가내로 내 것을 가져가곤 사과도 하지 않고 돌려주지도 않았는데 말예요. 정말 슬펐던 건 그걸 엄마가 했다는 거예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가, 나를 제일 사랑해주는 엄마가요.


그날부터였을 거예요. 인생에 불만을 품기 시작한 건 말예요.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툴툴대고 징징대는 울보, 쨈보가 됐던 건 모두 담요 때문이에요. 아니 동생 때문인 건가, 아니 어쩌면 엄마 때문이었을 거예요. 내가, 엄마의 귀여운 애기였던 내가 한순간에 천덕꾸러기가 된 것은, 맞아요. 모두 엄마 때문이었어요.


그로부터 오랫동안 나는, 쉽게 짜증내고 울음을 터뜨리며 발버둥을 치다가 스스로 지치면 잠이 들곤 했어요. 어린 나이에도 내가 생떼를 쓴다고 생각했지요. 이러면 안 되는데, 마음으론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멈출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그것이 내가 관심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단 걸요.


엄마가 없는 지금은 나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요. 이제 나를 달래줄 사람은 없죠. 이제는 내가 보듬고 지켜줘야 할 사람들만 남았어요. 그래서 나는 이제 소리내서 울지 않아요. 달려올 엄마가 없는 세상에 내 존재를 알리는 건, 뭐랄까 좀 바보같아 보이거든요.


사람들은 씩씩하게 잘 사는 듯 보이지만 모두 다 외로운 존재래요. 게다가 어른이 되면 엄마는 사라지거나 엄마가 애기가 돼버리곤 하잖아요. 그러니까 더 외로울 거예요. 그래서 인스타며 페북에 옹기종기 몰려 앉아 떠들거나, 쓸데없이 홀로 비장하거나, 나르시스트의 정점을 찍거나 뭐 다들 그렇게 견디나봐요.


나는 아직도 담요의 부드러운 촉감과 밤비의 맑은 눈을 기억해요. 한순간에 그것을 빼앗겼던 억울함을 잊지 않았죠. 하지만 무엇보다 선명한 것은, 엄마의 관심을 잃었다는 서러운 기억이죠. 깊은 심연 속 첫 기억이 상실이야기란 건 참말이지 슬픈 일예요. 그깟게 뭐가 중요하냐고 할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누군가에게 상실이란 그저 ‘잃음’이 아니에요. 그건 복구할 수 없는 삭제된 파일 같은 거여서 망연자실하다가 지랄발광하며 발을 구르고 울부짖으며 찾고 부르고 또 갈구하다가 그 자리에 선 채로 돌이 되어도 찾을 수 없는,  뼛속 깊이 한으로 남을 허무함인 거죠.


누군가의 상실을 보듬어주지 못할 거면 사랑한다 말하지도 마세요. 상실한 것이 무엇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그러니까 그게 비록 밤비가 새겨진 담요일지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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