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봄날, 일요일 오후 5시.
시계의 짧은 바늘이 5를 막 지나쳤을 때, 나는 소파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 5시라는 시간은 언제나 독특한 색채를 띤다. 모든 것이 끝나기 직전의, 부드럽고 나른한 체념 같은 것. 방 안에는 비스듬히 넘어온 햇살이 먼지들을 금빛 가루처럼 반짝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 빛은 며칠 동안 닦지 않은 레코드 플레이어 덮개 위에도, 마룻바닥의 희미한 흠집 위에도 공평하게 내려앉았다.
강아지는 마룻바닥의 햇살이 가장 따뜻한 곳에 배를 대고 엎드려 있었다. 이따금 잠꼬대를 하는지 앞발을 움찔거리거나, 만족스러운 듯 꼬리로 바닥을 툭, 툭 치는 소리를 냈다. 녀석의 세상에는 아마 일요일도, 오후 5시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따뜻한 곳과 충직한 주인이 있을 뿐. 그런 점이 나는 가끔 부러웠다.
나는 몸을 일으켜 레코드 선반으로 다가갔다. 빌 에반스 트리오의 앨범을 꺼내 턴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바늘이 소리골과 만나 자아내는 작은 마찰음 뒤로, 피아노 소리가 물처럼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Waltz for Debby'.
음악이 흐르는 동안,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선반 구석에 놓인 동그란 보이차 덩어리에서 작은 조각을 떼어내 다관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찻물이 검붉게 우러나자, 흙냄새와 오래된 시간의 냄새가 함께 피어올랐다. 이 차는 그녀가 남기고 간 것이었다. 언젠가 그녀는 이 차를 내밀며, 시간을 마시는 것 같지 않냐고 물었었다.
따뜻한 찻잔을 들고 소파로 돌아왔다. 3년 전, 그러니까 그녀가 아직 내 곁에 있던 어느 일요일. 그녀는 지금의 내 자리에 누워, 똑같이 빌 에반스의 레코드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음악을 듣다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이 레코드, 꼭 일요일 오후 같아."
"무슨 뜻이야?"
"모르겠어.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 모든 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설령 아무것도 괜찮지 않더라도."
그녀는 그런 식의 말을 하곤 했다. 나는 그때 그녀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도 같다.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완전하게 느껴지는 순간. 피아노의 타건 하나하나가, 드럼의 섬세한 브러쉬 소리가, 보이차의 묵직한 향기와 함께 방 안의 공기를 채웠다.
창밖에서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곧 저녁이 올 테고, 거리는 가로등 불빛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월요일이 시작된다. 언제나처럼.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그것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다만 이런 일요일 오후가 되면, 그녀가 남기고 간 온기가 방 안의 햇살처럼, 찻잔의 온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슬픔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레코드의 마지막 곡이 끝나고, 턴테이블은 소리 없이 돌고 있었다. 강아지가 긴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는 내게 다가와 무릎에 턱을 올려놓았다. 저녁밥을 달라는, 특유의 말없는 압박이었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사료를 가지러 일어섰다. 따뜻한 봄날, 일요일 오후 5시 30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