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투'는 국어사전에 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우거나 노력함'이라는 뜻이다. 비슷한 말은 '분전', '분전 역투'가 있다. 그래, 우리에게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아니하고 힘에 벅찬 일을 잘해나가는 '고군분투'라는 말이 익숙하다. 때문에 처음 보는 '분투력'이라는 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분투'할 수 있는 힘이라는 의미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단어 '분투력'.
책에서 정의한 <분투력>은 '익숙하고 편안한 안전지대를 과감히 벗어나' 끝내 목표에 도달하는 힘(S.T.R.I.V.E)이다. 그리고 각 철자의 첫 자를 따서 분투 전략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S-Set a Goal(목표)
T-Think about How to Get There and Plan for Success(전략 수립)
R-Risk: Embrace It, Expect It(위험 감수)
I-Insights, or What Did You Learn from Your Uncomfortable Change or risk?(통찰력)
V-Verify Progress(발전 정도 확인)
E-Enhance Yourself, Mentally and Physically, with Safe Biohacking (정신과 육체 강화)
분투력을 발휘할 목표를 세우고, 목표에 도달할 방법을 강구하며, 위험을 감수하는 통찰력을 발휘하고, 발전 정도를 확인하면서 정신과 육체를 강화해 나가는 것. 글로 정리해 보니 6개의 항목이 분투력의 핵심 전략이자 그 자체가 분투력의 정의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분투력은 꼭 거창한 성공과 경이로운 업적 달성을 위해서만 필요한 힘은 아니라는 걸 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다. 그리고 '분투력'이라는 말은 살짝 생소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미 유사한 개념의 '극기'라는 말이 있다. 내가 나를 이기는 힘, 극기. '극기'든 '분투'든 운동을 할 때도 위의 6가지 전략이 얼추 들어맞는다.
1. 운동 목표 세우기 -친구와 함께 세운 무병& 장수의 꿈.
매주 두 번, 보통 화, 목으로 코치에게 PT를 받을 때 꼭 함께 하는 동반자가 있다.
처음부터 스케줄을 맞춰 같이 하다 보니 어쩌다 한 사람이라도 시간이 안 맞는다든가 행여 다칠라치면 약속한 듯 아예 둘 다 운동 약속을 취소하고 각자 개별 운동에 돌입한다. 한 명이 시간이 조금 늦어 다른 한 명이 먼저 받고 있으면 왠지 익숙지 않아 트레이너와 몸을 풀면서도 다른 한 명이 도착할 때까지 계속 문 쪽을 곁눈질하게 된다. 같이 운동하던 습관이 이렇게나 무섭다.
사내 지하 1층에 있기에 아침에 주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은 이미 익숙하고 친근하다.
일상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간혹 업무상 할 이야기도 얼굴 본 김에 편하게 나누기도 한다. PT를 받는 사우들은 많은데 우리처럼 2인 1조로 하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그들은 물어본다. 어차피 두 명이 한다고 강습비가 더 저렴해지는 것도 아닌데 혼자 해야 트레이너에게 더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지 않느냐고. 하나가 아닌 둘이 하면 경쟁심이 생겨서 효과는 더 좋을 것 같다고.
맞는 말이다.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도 처음에는 아사다 마오라는 주니어 시절 경쟁자가 있었기에 시니어 때 한 차원 높은 자기와의 경쟁도 견딜 수 있는 작은 발판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사원 복지 차원에서 제공되어 강습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는 하지만 당연히 2:1 강습보다는 1:1 강습이 훨씬 가성비가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 운동선수인 마라토너도 페이스 조절을 도와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리지 않는가?
경쟁보다는 협업이다. 혼자보다 둘일 때 외롭지 않고 심심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다. 상대방과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점검해볼 수도 있다.
어차피 각자 운동 능력이 다르기에, 내가 유연성은 비교적 좋지만 파워가 약하다는 것과 보디빌딩을 할 때 허리가 과하게 뒤로 꺾이는 경향이 있으니 의식적으로 배에 더 힘을 줘야 하고, 자꾸 어깨를 올리니 역시 어깨를 내리면서 어깻죽지를 모아야 된다는 걸 알게 된다.
그에 반해 운동 메이트는 무산소 운동을 할 때 승모근을 많이 쓰니 목과 팔, 어깨보다는 코어 근육을 의식하면서 해야 한다는 걸 관찰하게 된다. 또한 몸의 오른쪽 근육을 무의식적으로 과도하게 쓰는 나와는 다르게 운동 친구는 동작을 할 때 오른쪽, 왼쪽, 상체와 하체의 밸런스가 모두 좋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몰랐던 나의 몸을 알게 됨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몸도 자연스럽게 알아간다.
한 번은 운동 친구가 점핑볼에서 동작을 취하다가 스피드가 점점 빨라지면서 넘어졌는데 그만 뼈가 부러지고 말았다. 그 친구는 발목 수술을 한 후 깁스를 한 채로 목발을 짚고 나와 재활운동을 같이 했다. 이번에는 내가 걷다 넘어져 발목을 접질렸는데 역시 반깁스를 한 상태에서 상체운동 위주로 운동을 함께 지속했다. 혼자였다면 운동을 못 할 상황도 함께 하니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했다. 운동 친구와 나는 농담 삼아 웃으며 서로에게 말한다. 네가 없었으면 나 이렇게 몇 년 동안 꾸준히 못했을 거라고.
그래서 운동 친구는 경쟁자라기보다는 동반자의 의미가 매우 강하다. 오히려 경쟁자는 나 자신일 때가 100이면 99.99999% 일 것이다. 전문적인 운동선수도 훈련 파트너가 필요하듯 이제 운동 시작하는 초보자나 아마추어에게 함께 하는 다른 한 명은 운동 친구로서 운동할 때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파트너이다.
사내에서 운동을 좀 한다 하는 사람들이 연중행사로 빼놓지 않고 참가하는 대회가 있다.
일 년에 한 번, 3월에 시작해서 5월에 결과를 발표하고 시상식을 거행하는 다이어트 이벤트인데, 개인과 팀 출전이 동시에 가능하다. 기존에 팀은 최소 5명이 한 조여야 했지만 팀 원을 모으기 힘들다는 사원들의 요청에 따라 올해부터 최소 2명으로 인원이 조정됐다. 운동 파트너와 나는 기존의 개별 출전에서 팀 출전까지 가능하게 되었고, 팀 명을 정해야 했다.
"너는 운동을 왜 하니?" 이름 짓기에 고심하다 내가 물었다.
운동 파트너이자 후배는 아무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무병장수하려고요."
"그래? 무병장수....... 좋은데? 그럼 네가 무병을 맡아. 나는 장수를 할게. 두 명이니 딱 좋다. 무병과 장수"
이렇게 우리 팀명은 무병& 장수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올해 다이어트 이벤트 단체 부문에서 무병& 장수팀은 수상을 하지 못했다.
대신 여자 개인부문에서 무병이가 1등을 차지했다. 몸무게와 근육량이 심사 기준인데 무병이는 몸무게와 근육량이 동시에 늘어 백화점 상품권을 부상으로 받으면서도 어리둥절해했다. 반면 나는 단기간 다이어트로 몸무게는 빠졌지만 근육량까지 줄어 3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1위는 아니더라도 몇 년간 2,3등은 꾸준히 했었는데 아쉬움이 컸다. 그리고 장수인 내가 조금 더 분발했다면 무병이는 개인과 단체부문을 모두 석권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미안함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의 헤피엔딩이다. 무병이는 부상으로 받은 백화점 상품권을 백화점 6층 식당가에서 한턱을 내는 데 썼다. 나와, 같이 운동하는 사우들은 마음껏 축하하며 기분 좋게, 맛있게 한 끼를 즐겼다. 나 같으면 옷 사는데 보탰을 텐데, 역시 착한 무병이다.
2. 전략 수립하기- 목표 달성에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요즘은 간단히 집에서 동영상을 보면서 따라 하는 '홈트'가 유행인데,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고픈 현대인들에게 딱 맞는 운동방법이다.
하지만 영어회화도 전화나 화상대화가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것만 못하듯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운동도 직접 옆에서 세밀히 자세를 잡아주고 격려도 받으면서 하는 편이 나에게는 오히려 더 맞다. 홈트나 혼자 하는 운동은 딱 그만큼이라는 자기 자신만의 한계를 설정해 놓고 ‘적당히 숨찰 만큼만’, ‘아침 운동 후, 일 시작하기에 피로하지 않을 만큼만’이라는 기준을 설정해 놓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가령 트레드밀 위를 걸을 때 6.5 이상은 넘지 않는다는 나만의 기준을 세워놓고 매일 딱 그만큼만 하자는 식으로 절대로 무리하지 않는다. 운동 강도를 점점 높여야 하는데 몸은 원체 약아서, 넘어서는 안 될 힘든 선은 절대로 넘지 않는다.
그럴 때 필요한 사람이 바로 전문 트레이너다.
나만의 편리한 기준과, 컨디션을 구실로 내세우는 핑계가 통하지 않는 훈련 교관 같은 사람, 팔짱 끼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어야 자세 한 번을 취해도 훨씬 더 힘이 들어가고 정확해진다.
꾀병과 컨디션 난조를 매의 눈으로 정확히 구별하는 전담 트레이너의 초능력이 놀랍다.
무병이와 장수가 아무리 힘들다고 징징거려도 지속해도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서면 '기분 탓일 겁니다.'라고 조용히 상황을 정리해 버린다. 말없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거나 어질어질해하는 것 같으면 재빨리 알아채고 '무리하지 마십시오.'라고 넌지시 쉼표를 찍어준다.
또한 트레이너와 시간을 정했기 때문에 당일 웬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불가피한 상황이 생기지 않는 이상 되도록이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포기하거나 취소하지 않고 집을 나서야 한다.
운동 메이트와 함께 세운 무병& 장수의 꿈은 전문가의 주도면밀한 계획에 따라 일주일에 두 번, 어쩔 수 없이 '제대로' 실행하고 있다.
3. 위험 감수하기- 편한 저강도 운동을 버리고 다른 세계와 만나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전신운동이 되는 각각의 동작들을 쉴 새 없이 빠르게 돌고 돌아 무한 반복하는 서킷을 할 때였다. 서킷은 한 세트만 해도 숨이 차고 정신이 없다. 두 세트부터는 서서히 동작의 정확성이 떨어지고 세 세트부터는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난다. 네 세트 때는 아예 몸과 정신이 분리되는 유체이탈의 경지에 이른다.
‘이 힘들고 헉헉대며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이 비루한 몸은 내 몸이 아니다. 고로 힘든 건 내가 아니다. 나는 이 좀비 같은 몸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생각을 안 한다. 고로 이건 나의 몸이 아니다.’라며 무중력 상태에서 최면을 걸게 된다. 문학 용어로 ‘낯설게 하기’를 저절로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섯 세트 째가 되면 이제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된다.
마지막 세트이기도 하고 정말 죽을 것 같은 순간에 ‘악!’ 외마디 소리와 함께 기합을 넣으면 갑자기 방전됐던 몸 어딘가 아주 깊숙한 곳에서부터 태초의 힘이 솟아오르는 기분을 느낀다. ‘아, 이게 바로 갓난아기 때 엄마 젖 먹던 힘이구나. 태어나자마자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살려고 본능적으로 더듬어 찾아낸 엄마의 찌찌를 힘차게 빨던 바로 그 근원적 힘이로구나.'
해탈의 경지에 들어선다.
가장 힘든 2,3세트를 지나 반쯤 정신 나간 상태에서 4세트를 때우고 5세트 때 무의식의 저편으로 사라졌던 원초적 힘까지 끌어올리고 나면 몸은 완전히 지쳐 나가떨어지고 널브러진 상태에서 마침내 끝을 맺는다. 터질 것 같은 심장 소리에 함께 한 운동 파트너와 트레이너에게 수고하셨다는 말도 겨우 내뱉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몸 밖으로 삐져나올 것 같은 심장의 박동이 어느 정도 가라앉아 서서히 평정심을 되찾을 때쯤이면
그다음에는 오늘 할 일을 이미 다 해낸 것 같은 나른한 기분이 밀려온다.
샤워실을 향해 가는 발걸음은 무겁고 둔탁하지만 마음만은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낀다.
오늘 나는 나의 한계까지 가봤고 평생 모를 수도 있는 아기 때 젖 먹던 힘의 존재를 알게 됐으며 심지어 알뜰하게 꺼내 써보기까지 했다는 보람을 느끼면서. 나는 오늘 나를 극기했다는 자신감, 그리고 적어도 오늘 해야 할 일을 한 가지만큼은 확실히 했다는 성취감을 아침부터 맛본다.
4. 통찰력- 어떠한 상황에서도 운동 must go on.
남들은 늦게 일어나 허둥지둥 출근을 서두르고 있을 시간에 이미 나는 한 가지의 작은 성공을 이뤘다.
물론 하루를 운동으로 시작하는 경우에는 그 이후의 일정이 이미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에서 지치고 피로하게 시작할 우려도 있다.
실제로 나 역시 초기에는 운동 후에 도저히 피로 해소가 안 돼서 낮잠이 아닌 오전 잠을 반드시 청해야 했다.
동료들이 커피 한 잔 마신 후 일에 슬슬 집중력을 발휘하기 시작할 때 숙직실 침대를 찾아야 했다. 매일 새벽 근무를 하기에 망정이지 오전부터 잠깐이라도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 건 직장 내에서 오해 살 여지가 충분하다.
따라서 각자 성향과 스타일, 체질, 매일 하고 있는 업무의 종류와 시간대에 따라 운동하기에 적당한 시간대를 정해 놓아야 한다. 나처럼 아침 운동이 맞는 분들도 있고 업무 특성상 점심때 짬 내서 해야 하는 분들. 그리고 아예 업무 끝나고 해야 마음 편하게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달밤에 체조해야 잠도 잘 온다는 분들도 있을 테고.
중요한 건 어떤 시간대든 상관없이 운동은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몸매가 예뻐지고 근육이 멋지게 붙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땀을 흘려 온몸을 순환시키고 질병에 걸리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발로 걷고 내 입으로 음식을 먹으며 내 머리로 판단할 수 있는 '건강한 상태'로 오래 사는 게 더 가치 있다.
5. 발전 정도 확인- 운동을 안 하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간혹 내 친구를 비롯한 여성들 중에는 운동을 해도 땀이 안 난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
그렇다면 강도를 일단 높여야 한다. 다소 격렬한 운동으로 한번 땀샘이 터지면 다음부터는 약한 강도로 시작해도 몸이 운동한다는 걸 인식하고 알아서 땀을 배출해 준다.
또 너무 바빠 운동할 짬이 도저히 안 난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 그렇다면 운동이 하루 일과의 순서와 중요도 측면에서 적어도 항상 2위권은 차지하고 있어야 빼놓지 않을 수 있다.
운동을 습관화해야 한다. 안 하면 오히려 몸이 더 찌뿌드드하다 싶게 루틴으로 만들어야 한다.
샤워를 집이 아닌 운동하는 곳에서 해야 나만의 펜 덕분에 책을 읽게 되듯 주객이 전도되어 세수하러 갔다가 물만 먹고 오는 게 아니라 운동도 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경쟁자인 나를 이겨봤다는 극기의 경험은 호된 세상살이로 밑바닥이 훤히 드러난 자존감을 조금씩 채워줄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바로 내 몸무게 이기기, 내 중력 거스르기니까.
예전보다는 하체에 쏠렸던 지방 재배치가 이뤄져 '몸꽝'만 면한 정도다. 이번 생은 몸짱 근처에도 못 간다. 운동 덕분에 오래 살아 90살에 피트니스 대회 최고령으로 도전한다면 혹시 모를까. 날씬한 여성들은 운동 못하게 막아야 된다고 농담 삼아 말하는, 난 그냥 ‘무병으로 장수하려고 분투하는 아줌마’다.
p.s. 읽으면서 설마설마하다가 역시 어쩐지 했다.
저자는 이민자이다. 한국 이름은 나와 있지 않다. 저자의 삶 자체가 분투의 험난한 과정이었다.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어떤 이인지 궁금해서 TED 강의도 찾아보았다. 책은 곧 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