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회복 선언문

애순이를 피하는 방법

by 안녕 굿데이

나는 임상춘 작가의 작품을 사랑한다. 그는 슬픔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한 말투로 슬픔이, 애잔함이 심장을 눌러, 보던 이로 하여금 스스로 무너져버리게 만든다. ‘동백꽃 필 무렵’ 을 보며 나는 매회 울었고, 매회 조금씩 회복되었다.

그래서 신작이 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것은 기대라기보다 거의 의무감에 가까웠다. 내 슬픔을 가장 정확한 자리에 떨어뜨려줄 단 한 명의 작가. 마침내 1화를 틀었고, 애순이와 엄마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슬픔의 스위치가 너무 쉽게 ‘온’이 되었다.


눈물이 애순이와 엄마의 첫 장면에서부터 차올랐다.

나는 급히 리모컨을 찾아 정지 버튼을 눌렀다.

왜 껐을까.

좋아서? 아니다. 비어있어서다.

그 순간의 감정은 기쁨도, 감동도 아니었다. 가슴이 텅 빈 허허벌판에 서 있는데, 저 멀리서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의 눈사태가 몰려오는 것을 목격하는 듯한 극한의 무력감이었다.

나는 터져 나오는 눈물의 양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것은 치유가 아니라, 감정의 저수지를 통째로 무너뜨리는 댐 폭파처럼 느껴졌다. 끝까지 울고 나면 다음 날 하루 일과 전체를 망칠 것이라는 처절한 계산이 순식간에 섰다.


나는 눈물을 흘릴 '잔고'가 없었다. 내 육체 역시 그럴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감정 은행 계좌는 잔고가 바닥이었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간신히 모아둔 에너지, 나를 겨우 지탱해줄 최소한의 감정 자본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그 최소한의 자본마저 모조리 인출하려 들었다. 눈물을 흘리는 그 몇십 분의 시간이 곧 다음 날 하루를 기진맥진하게 만들, 감당할 수 없는 빚이라는 것을 내 몸이 먼저 계산해낸 것이다.

나는 눈물 흘리는 일이나 화를 내는 감정 자체를, 내 안에서 무한정 솟아나는 당연한 기능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일상 속 끊임없는 감정 소모를 겪으며, 이것이 더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고갈될 수 있는 '희귀 자원'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냉정하다거나 눈물이 없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나는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 아니다. 불쌍한 거리의 동물을 볼 때, 혹은 예측하지 못한 순간 타인의 순수한 진심을 목격할 때, 나의 눈물은 격렬하게 반응한다. 나의 눈물샘은 완전히 건조한 것이 아니라, 오직 진정성이 통과될 때만 열리는 내면의 성문과 같았다.

하지만 나의 일상 속 가장 큰 소모는, 그런 거창한 슬픔도 걷잡을 수도 없는 분노가 아니었다. 웃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웃어주고,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주며, 매일 '매너'라는 이름으로 지출된 소액 결제들이었다.


특히 한 동료가 기쁜 소식, 예컨대 오랜 노력 끝에 이직이 확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가 결정적이었다. 나는 당연히 진심으로 축하해주어야 했다. 입으로는 '진심으로 축하해!'라고 외쳤지만, 가슴속에는 아무런 울림도, 따뜻함도 없었다. 공감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이 완전히 마비된 채, 그저 미소를 짓는 '노동'만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의 감정 계좌는 마이너스가 아니라, 아예 멈춰버린 '지급 정지' 상태라는 것을. 내 감정은 이미 최후의 비상 연료마저 소진한 상태였다.


사람들은 말한다. "울면 시원해", "감정은 표출해야 해." 맞다. 하지만 울려면 힘이 든다. 슬프려면 여력이 필요하다. 너무 힘들면, 슬플 자격조차 없어진다. 눈물도 체력이다. 웃으려면, 슬프려면, 화내려면, 사랑하려면. 모두 에너지가 필요하다. 내 감정 계좌는 텅 비어 있었다.

드라마를 껐던 행위는, 나의 연약함을 인정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남은 에너지를 지키기 위한 가장 단호하고 이성적인 비상 정지 명령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지금은 감정을 쓰지 마시오"라는 사용 금지 명령을 내렸다.

나는 오늘 울지 않음으로써, 내일 웃을 힘을 저축했다.

회복이란 뭘까? 다시 웃는 것? 다시 우는 것? 아니다. 회복은, "아직 울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은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드라마는 괜찮다. 나는 나의 회복을 기다릴 것이다. 나는 울음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정 은행에 잔고가 쌓이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언젠가 다시 그 드라마를 볼 것이다. 그때는 슬픔에 압도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의 금고를 열고 눈물이라는 자원을 마음껏 인출할 수 있을 만큼 충만한 상태에서 말이다. 그때 애순이와 함께 맘껏 울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