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우리는 여기까지였네요

나는 호구 대리였다.

by 띄라

회사의 나름? 배려로 퇴사 일을 내가 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셔서

지금 하고 있는 업무가 있어 이것만 마무리하고 일주일 뒤에 퇴사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이직 할 곳을 구해놓고 나가고 싶어도.. 마음도 내키지 않고.. 더군다나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계약 종료를 하신 거라.. 얼른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에 퇴사 일을 최대한 빠른 시일로 말씀드렸다.

그렇게 일주일 더 연장해 일을 하게 된 나.

그러던 어느 날, 일하던 도중 일러스트 파일을 PNG 파일로 변환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내 자리엔 일러스트 프로그램이 없었던지라 두 주임들에게 부탁을 해야하는 상황이였었다. 왜냐하면 두 주임들 자리엔 일러스트 프로그램이 깔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 메신저로 한가하신 분께 파일 변환 좀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막내 주임이 해주신다고 답해서 파일이 19개정도 됐지만 변환이니까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해 부탁드렸는데.. 하시면서 나를 부르더니 파일이 너무 많은데 이걸 다해드려야 하냐는 식의 반응에 한숨을 계속 쉬시고 이를 지켜본 기존 주임은 나에게 jpg로 그냥 다운 받고 올가미툴로 잘라서 쓰면 되지 않겠냐, 비효율적이다 라고 대놓고 나를 무시하고 무안을 주는 발언을 하는 게 아닌가??? 순간 나도 당황해서 "그러면 그냥 하지 마세요" 이러고 그냥 넘어가 버렸다.. 나도 바보인 게 벡터파일로 해야 이미지가 안 깨지니 이렇게 부탁했던 것이라는 걸 바로 말했었어야 했는데... 지나고서도 계속 이게 맴돌았다..

아니 그래도 내가 직급도 대리이고 경력도 더 있는데 자신들의 방법이 더 옳다고 생각하고 나에게 직설적으로 말하고 가르친다는 입장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열받는데... 여기에 반박도 못하고 그냥 넘어간 내가 더 바보같아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ㅠㅠ)

설령 상사가 답답해보인다고 한들, 이렇게 대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나이도 그렇게 어린 친구들도 아닌데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 온 건지..

나는 아무리 그래도 아랫사람이던 윗사람이던 절대 이렇게 대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 날 점심도 따로 먹었다. 도저히 같이 먹을 자신이 없었다.. (이러면 안되지만 나도 모르게 기분이 태도가 되어버림ㅠㅠ) 그런데 혼밥을 하고 있는 와중, 우연히 회사 디자이너님과 만나게 되어서 같이 점심을 하게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순간 오늘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서 혼밥하게 되었다고 말하자 디자이너님도 공감해주셨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그렇고 예의가 아니라고..

그리고 디자이너님도 자기도 저번에 기존 주임에게 어떠한 일로 메신저로 확인 답변까지 받았었는데 나중에 그런 기억이 없었다고 말씀하셔서 당황한 적이 있었던 에피소드까지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같이 밥을 먹고서 회사 근처 카페를 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두 주임들하고 마주쳐버렸다.

사실 디자이너님도 담달에 퇴사예정이셔서 기존주임하고 셋이서 같이 밥 먹기로 했었는데

오늘 나와 둘이서 먹는 거 보더니 왜 자기한테는 같이 밥 먹는 거 말 안해주냐고 내심 서운해 하길래

내가 장난식으로 "그럼 내가 일일히 보고해야 하냐"고 답하자 순간 서운하다는 표정에 굳어버리시더라..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였는데.. 저번에 우리 팀원끼리 밥을 먹다가 기존 주임이 자기는 이 회사 오래 다닐 생각 없다, 그만 둬야겠다라고 징징댄 적이 있었다. 내가 그때도 장난으로 "그럼 가요, 가" 이랬다가 이 말에 되게 서운했다, 상처받았었다고 기존 주임이 말하더라..

물론 나는 그럴 의도로 말한 건 아니였지만.. 듣는 사람이 상처 받았다면 그건 내가 잘못한 게 맞다.

그런데 항상 자기 중심적, 자기 기분만 생각하는 마인드가 난 좀 달갑지 않게 느껴졌다.

내가 기존 주임한테 먹힌 건가?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선 넘은 경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였기 때문이다.

입사 초반에 내가 대리인데, 실수로 주임으로 몇 번 부르질 않나, 같이 회의하는 과정에서도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자기 주장이 너무 확고하고 (대표랑 회의했을 때도 자기가 답답하다고 대표한테 욱하는 모습도 보였던 사람이다) 심지어 나에게 부탁할 때도 요청이 아니라 당연하다는 듯이 통보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이런 게 MZ인건가 싶었다.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만만한 사람한테만 유독 이러는 거 같다. 대표님도 착하신 분이시고 나도 싫은 소리 못하고 다정하게 잘해주는 스타일인데 그러한 사람들한테만 이러한 면모들이 두드러지게 보였던 것 같다.

아니면 너무 친해진 게 화근이였을까..? 솔직히 사적인 얘기도 할 만큼 엄청 친했었다. 그래도 나는 친하니까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매사에 모든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난 그게 당연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이래서 인간 관계에 있어 다들 선을 지키려 하고 선을 긋는 것 같다.

주임이 항상 퇴사하고서도 연락하고 지내자는 말을 수도 없이 했었었다. 그래서 나도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니 퇴사하고서도 종종 연락하고 지내면 좋을 것 같아서 그럴려고 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무조건 손절해야겠다 마음 먹었다.

나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면 내가 서운한 게 있을 시 말해서 풀고 넘어가려 한다. 반대로 내가 실수를 한 게 있다면 바로 사과하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한텐 굳이 이런 걸 얘기 하지도 않고 그냥 조용히 뒤도 안 돌아보고 손절해버린다. (주임에겐 미안하게 됐지만 나는 기회를 많이 줬다고 생각한다.)

하필 이 날은 크리스마 이브 날이였는데.. 나에게 최악의 크리스마스 이브 날로 남게 되었다..

퇴근 후 친구한테도 동생한테도 이 얘길 해서 그나마 화를 좀 풀 수 있었다.

친구는 회사에서 직급이 주임인데 자기는 회사 대리님에게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나보다도 더 심각한 반응을 보였었다. 동생도 마찬가지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였다.

다음 회사가서는 너무 친해지지도, 너무 멀어지지도 딱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겠다고 느꼈다.

그리고 퇴사하면 무조건 남, 회사에선 절대 친구가 없다라는 사실, 다 시절 인연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그 후로 난 퇴사 일까지 주임님들과 단 한번도 점심을 같이 먹지 않고 퇴사를 했다.

나의 두 번째 정직원 도전기도 이렇게 끝이 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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