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건/사고.

by ziwoopa



누나를 따라 비 오는 학교 운동장(성북국민학교)에 놀러 갔었다. 취학 전이라 지금 생각해도 아무 생각 없는 꼬마였을텐데 누나는 나를 방치하고 따로 놀고 있었고, 난 연못가에서 놀다 물에 빠졌다. 무릎 높이였지만 질척한 뻘바닥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허우적거리면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근처를 지나던 누군가가 내 머리채를 쥐고 들어 올렸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난 죽었을 거다. 그날 이후로 물에 대한 공포가 있어 수심이 깊은 시퍼런 물을 보면 난 기절초풍을 한다. 캐리비언의 멋진 해안풍광도 나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성북동 집(현재의 복구 전 서울성곽 성벽이 우리 집 담벼락이었다.)에서 철거를 당해 6년 동안 원효로 고모님 댁 방 한 칸에 얹혀산 적이 있다. 좁은 방에 6 식구가 모여 자는 게 안쓰러웠는지 그 당시 대학생이던 사촌형이 나를 데리고 자기로 했다. 집 구조가 ㄱ 자 형태였고 형 방은 가운데 있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소변이 마려워 잠이 깼는데 어느 쪽으로도 나갈 수가 없었다. 안방을 지나자니 고모님 내외와 사촌동생이 깰 것 같았고, 우리 식구들이 있는 쪽은 큰 교자상으로 막혀있어 내 힘으로는 열 수가 없었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형을 깨울 수도 없었고.....

그렇게 장대비 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을 청했지만 난 3단 매트리스에 그날 온 비 보다 더 많은 오줌을 싸버렸다. 다음날 우리 방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발을 모으고 잠을 잤다.




용산으로 이사를 오고 부쩍 부모님들 싸움이 잦아졌다. 역시나 방 한 칸. 달라진 게 있다면 다락방을 개조해서 누나와 내가 잠을 잘 공간이 생겼다는 정도, 빗소리를 뚫고 온 동네에 퍼질 만큼 시끄럽던 싸움이 잠시 소강상태에 이르자 아빠는 담배 피우러 나가시고 엄마는 부엌에 간 틈을 타서 몰래 집을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발걸음이 향한 곳은 한강대교. 중학생 나이에도 사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춘기를 겪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곳에 오면 뭔가 매듭을 지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러나 장맛비에 불어난 물이 한강대교 상판을 때리며 흐르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목도하고는 죽음에 대한 무서움보다는 물에 대한 공포가 더 심해져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군 제대를 하고 복학해서 살았던 이촌역 앞 낮은 지대의 월셋집. 장마 예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빗물펌프장 관리자의 실수로 동네가 침수를 당했다. 아침에 엄마가 깨워 일어나 보니 침대 높이 까지 이미 물이 차 있었다. 침대 밑에 있던 내 모든 기록들과 기억들이 물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졸업앨범, 손으로 그렸던 악보들, 유년시절과 성장기 모습이 박제되어 있던 사진첩 전부가....




아파트에 살면서 낙수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베란다에 걸려있는 에어컨 실외기 덕분이다. 잠시 누워 떠오르는 상념들을 지워가면서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내 한 몸 뉘일 공간이 있음에 또 한 번 고마워했다.




가끔 나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가 있다.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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