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배추대파수육, 숙주나물, 참나물
아내의 올해 목표는 감사함을 표현하는 삶이다.
그래서 요즘은 식당이든 카페든, 좋은 경험을 하면 꼭 후기를 남긴다.
맛있었다고, 친절했다고, 분위기가 좋았다고.
가게 문을 나설 땐 늘 밝은 목소리로, 칭찬과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는다.
그렇게 세상에 자신의 감사함을 한 스푼씩 퍼뜨린다.
어느 날, 외식 후 영수증을 받아든 아내는, 곧장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맞은편에서 그녀를 바라봤다.
글을 쓰는 내내 아내는 따뜻해지는 무언가를 만난 듯,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속에 작은 장난기가 솟는다.
나는 슬쩍 물었다
근데... 나는? 내가 요리는 제일 많이 해주잖아. 나한테는 후기 안 남겨줘?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아내에게 차려준 밥만 해도 족히 1,000번은 넘을 것이다.
1,000번 이상 방문한 단골 집이 또 있을까.
이 정도면 VVIP 아니던가.
회원카드도 하나 만들어 줘야 할 판이다.
아내의 정성스러운 후기가 세상에 퍼져, 우리 집이 '숨은 맛집'으로 소문이라도 나면 어떡하나.
동네 사람들이 줄이라도 서면, '오늘은 재료 소진으로 마감했습니다'라고 현수막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일단 접어두고, 진짜 중요한 건 나도 후기 받고 싶다. 진심으로.
아내는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그러게. 근데 오빠는 식당이 아니잖아. 어디에 후기를 남기면 좋을까~
식당처럼 사업자등록을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쓰는 사람. 브런치 작가.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요리하고, 글을 쓰고, 거기에 아내의 후기를 곁들이면 그게 바로 식당이 아닐까?
바로 그 자리에서 연재 계획을 짰다.
그리고 아내에게 제목을 보여주었다.
메뉴판 없음, 재료는 사랑, 단골은 한 명.
"어때? 그 한 명은 바로 너야."
아내는 대답 대신 반짝이는 눈빛을 보냈다.
그 반짝임이 '감동'인지, 앞으로 더 자주 맛있는 요리를 먹게 될 거란 '기대'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아내가 기뻐하니, 이 연재는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우리 부부는 SNS를 하지 않는다.
그 흔한 인스타그램 계정도 없다.
인스타 DM으로만 예약이 가능했던 재즈바 덕분에, 임시로 만든 계정 하나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진도 잘 찍지 않는다.
소문난 핫플도, 예술 같은 플레이팅도 우리에겐 "우와~" 한마디로 충분하다.
우리는 그저, 바로 먹는다.
왜냐하면... 그게 제일 맛있을 때니까!
사진은 늘 "아, 찍어둘걸..." 이라는 아쉬움 뒤에나 떠오른다.
이미 늦었다.
덕분에 남은 건, 텅 빈 그릇 사진들뿐.
한입도 남기지 않은 완식 인증샷 전문 부부다.
연재를 위해선 이제 사진도 찍어야 할 텐데...
또 깜빡하고 홀랑 다 먹어버릴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다.
연재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야겠다.
오늘은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뭐 먹고 싶어?"
답은 빠르게, 그리고 간단했다.
"나 나물! 나물!!"
아내는 늘 이렇게 명확하다.
'아무거나'라는 말로 나의 센스를 시험하지 않는다.
진짜 아무거나 괜찮을 때만 '아무거나'라고 한다.
이런 명확한 고객님, 아주 편하다. 고맙다.
일단 나물을 무친다.
숙주나물, 참나물.
나물은 보기보다 손이 많이 간다.
흙 묻은 잎을 하나하나 골라내고,
데치고, 헹구고, 물기 짜고, 조물조물 무쳐야 한다.
물기를 짤때 힘을 너무 주면 식감이 죽고,
너무 약하면 물이 흥건해져 감칠맛을 앗아간다.
참기름을 두르고, 소금 한 꼬집, 깨 한가득.
손끝에 집중해 조물조물 무친다.
이쯤 되면 나물은 '손맛의 종합예술'이라 불러도 된다.
음~ 이 정도면 단골 손님 감동의 후기가 나올 만하다.
반찬이 준비되었으니, 이제 메인 요리를 시작한다.
오늘의 메뉴는 알배추대파수육.
겉모습은 밀푀유나베와 닮았지만,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숙주 대신 얇게 썬 양파를 바닥에 깔고, 깻잎은 생략했다.
고기는 소고기가 아닌 돼지고기.
통마늘은 아낌없이 듬뿍 넣어준다.
육수는 따로 없다.
야채와 고기에서 나오는 자연의 수분만으로 조리하는, 무수분 요리다.
양념도 간단하다.
약간의 소금과 후추만 뿌린다.
마지막으로 쪽파와 부추를 송송 썰어 새콤달콤하게 무쳐낸 소스를 곁들인다.
입안 가득 상큼함이 퍼지고, 수육의 고소함이 더 깊어진다.
야채와 고기에서 우러난 수분만으로도 국물은 충분하다.
중간중간 보이는 잘 익은 통마늘이 또 하나의 별미다.
그대로 먹어도 좋고, 으깨서 국물에 풀어 먹어도 좋다.
마치 엄마는 외계인 아이스크림 속 초코볼같다.
아내는 그 초코볼을 유난히 좋아했는데, 오늘은 초코볼 대신 마늘을 찾아가며 즐거워한다.
역시나 오늘도, 쌀 한 톨 남김없이 완식 인증.
후식으로 딸기를 준비하며 나는 다시 말을 꺼냈다.
"근데 있잖아, 연재 제목... 진짜 잘 지은 것 같지 않아?"
"왜~ 또 셀프 칭찬이야?"
"아니 진짜로. 나중에 우리 아기 생기면, 제목만 살짝 바꾸면 되거든."
"어떻게?"
메뉴판 없음, 재료는 사랑, 단골은 두 명.
아내의 후기
알배추대파수육
★4.5
부드러운 알배추, 돼지고기에 양념장을 곁들여 먹으니 정말 감칠맛이 납니다!
국물과 함께 먹으면 쑥떡쑥떡 절로 넘어가네요~
통마늘은 찾는 맛과 부드러운 맛이 함께 있어 재밌었습니다.
숙주나물, 참나물
★4.5
할머니가 짜주신 참기름에 신랑의 손맛이 더해진 건강한 맛의 나물!
제 입맛에 딱맞는 식감과 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