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성공 가능성을 낮추는 심리, 학습된 무기력함, 자기 핸디캡
몇 년 전, 저는 회사가 오랜기간 준비한 과제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1년 넘게 수십 명의 다양한 부서 인원들과 설계하고 다듬어온 프로젝트였죠. 그런데 마지막 최종 버전 배포를 하루 앞둔 저녁 7시, 갑자기 법무 요건 중 하나가 누락된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정해진 일정상 배포를 미룰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즉시 법무팀에 연락했고, 긴급 수정 가능성에 대비해 개발팀 인원을 대기시켰습니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 한 선배가 다가와 당장의 문제 해결과는 상관없는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회의록이랑 메일은 갖고 있죠?
이거 예전에 누구랑 확인한 거예요?
그쪽에서 이렇게 하라고 했던 거 맞죠?
그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신, 오직 '이 문제가 내 책임이 아님을 명확히 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책임이 없다는 판단이 서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밝은 웃음을 지으며 퇴근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무책임하다고만 느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곱씹어보니, 그는 그 순간에도 나름의 심리적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혹시라도 일이 실패했을 때 자신이 그 실패의 일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책임이 없음을 미리 확인하고 빠져나가면, 실패가 발생하더라도 '나는 거기에 없었다'는 변명거리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즉, 그는 성공 가능성을 일부러 낮춰 실패로부터 감정적 상처를 막기 위한 행동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바로 자기 핸디캡의 전형적 형태였습니다.
자기 핸디캡(Self-Handicapping)은 실패할 가능성이 있을 때, 미리 핑계를 준비하거나 일부러 스스로를 방해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그 이유는 실패했을 때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이 전력을 다한 결과가 실패하면 자존심이 상처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예 최선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자존심을 보호하는 쪽을 택합니다. 성공 가능성은 낮아지더라도 단기적으로 자존감을 지킬 수 있죠.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을 떠올려 보세요.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어제부터 몸살 기운이 있어서..."라며 결과에 대한 기대를 낮추는 동료
시험 보기 전 친구에게 "공부할 시간이 하나도 없었어"라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학생
손님을 초대한 후 "차린 게 별로 없어요"라고 미리 말하며 부담을 덜어내는 모임 주선자
이런 행동은 아주 인간적인 방어입니다. "내가 진짜 못해서 망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다"는 도피처를 미리 만드는 것이죠. 실제로 최근 연구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조차 일부러 그 기회를 완벽하게 잡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자기 핸디캡은 개인의 심리적 방어로 시작되지만, 때로는 그것이 하나의 공기처럼 조직 전체를 감싸기 시작합니다. 한 사람의 변명은 가볍지만, 그것이 반복되고 공유되면 팀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혹시 회사 업무에 대해 동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 있지 않은가요?
윗선이 도와주지 않는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이 프로젝트는 애초에 기획이 잘못됐어.
이번 분기 목표 자체가 비현실적이잖아.
이런 말들이 떠도는 순간, 팀은 알게 모르게 집단적 자기 합리화에 빠집니다. 실패를 대비해 팀 전체가 실패의 정당성을 미리 만들기 시작하죠. 결국 성공이 아닌 실패를 위해 노력합니다. 누구도 책임질 필요 없고,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만이 목표입니다. '학습된 무기력함'으로 표현되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집단적 자기 핸디캡의 무서운 점입니다. 실패의 책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실패 그 자체를 합의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서로가 서로의 방패가 되어 도전이라는 단어는 점점 조직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문제는 누구도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겸손, 현실감, 냉철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기 핸디캡은 자존심을 지키는 데는 일시적으로 유리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도전정신을 약화시키고 성장 기회를 빼앗는 무서운 함정입니다.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주어진 조건이 완벽했다면 정말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종종 상황이 완벽했다면, 컨디션이 좋았다면,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면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세상이 결코 완벽한 조건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실패를 피하고 싶을 때 우리는 외부 요인을 탓합니다. 하지만 실패의 씨앗은 언제나 환경이 아닌 나의 준비와 대응 속에 숨어 있습니다.
실패할 가능성이 보인다면, 그 실패를 외면하지 말고 기록하세요.
왜 실패할 위험이 생겼는지, 무엇을 바꿀 수 있었는지 냉정하게 분석하세요.
그리고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아내세요.
진행 중인 일에도 스스로에게 질문하세요.
지금 이 일에는 어떤 실패의 조짐이 숨어 있는가?
그 위험을 줄이기 위해, 지금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환경이 완벽해지기를 기다리기 보단, 조건이 부족한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실패를 방어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핑계는 나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패를 고착시킬 뿐입니다.
실패를 직시하고, 실패할 이유를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는 것이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의 습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