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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필요하지 않은 것을 배웁니다

직장인에게 자기개발이란? 투자가 아닌 공부, 미래 자기 이론

by 퉁퉁코딩

저의 자기개발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학습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고, 2년 전에는 전사에서 자기주도 학습을 꾸준히 실천한 직원에게 주는 대표이사상도 받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자기개발에 대한 저의 생각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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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자기개발에 끌리는 걸까?

황금 같은 점심시간을 쪼개 영어 단어를 외우고, 퇴근 후엔 학위 수업을 듣고, 주말엔 자격증 강의까지 듣는 직장인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자기개발 괴물들'을 마주칩니다. 그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감탄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찌릿해지기도 합니다.


"요즘 뭐 배우는 거 있어요?"

이 질문 앞에서 마음이 불편하다면, 아마도 당신은 자기개발에 욕심이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자기개발이란 단어는 직장인에게 '애증'의 단어입니다. 설렘과 죄책감을 동시에 안기는 단어입니다.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하면 지칩니다. 열심히 하고 나서도 이게 진짜 나를 위한 일인지 헷갈릴 때가 많죠.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토록 자기개발에 끌리는 걸까요?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 출발선은 단순합니다. 직장인의 자기개발은 '당장 필요한가, 아닌가'로 나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장 필요한 자기개발

당장 현실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자기개발은 단순히 실용성을 넘어선 인간의 심리와 생존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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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형 자기개발

어떤 사람은 매일매일의 보고서 작성에 답답함을 느끼다 문서 자동화 기능을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단순 반복 업무를 줄이기 위해서죠. 이런 경우 자기개발은 생존을 위한 선택입니다.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더 빠르게 일을 끝내기 위해 학습합니다.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바로 효과를 보인다면, 이는 강력한 학습 동기가 됩니다.


비교형 자기개발

또 다른 경우는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됩니다. 옆자리 동료가 자격증을 땄다는 말을 듣고, 어느 날 갑자기 나도 모르게 그 자격증 책을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죠. 비교에서 비롯된 자기개발은 방향보다 속도가 중요합니다.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불안 역시 강한 동기가 되곤 합니다.


숨은 욕망 실현형

그리고 아주 조용한 유형도 있습니다. 본업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강의를 듣습니다. 퇴근 후 디자인 툴을 독학하거나, 마케팅 책을 파고드는 사람이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전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주어진 역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자아의 영역을 다시 찾기 위한 여정입니다. 이건 재설계입니다.


당장은 필요하지 않은 자기개발

모든 자기개발이 즉각적인 보상을 전제로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배움은 당장 쓸모가 없어 보이고, 누군가는 왜 하냐라고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공부가, 오히려 나를 가장 멀리 데려다 줄지도 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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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변화에 대비하는 미래 대비형

생성형 AI 활용, 에이전트 기반 자동화, 퍼스널 브랜딩 등을 꾸준히 탐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어진 본인의 직무와는 전혀 관련 없을지 몰라도, 그들은 조용히 준비 중입니다. 겉으로는 진취적으로 보이며 그들의 내면에는 깊은 경계심이 숨어 있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더 빨리 움직이는 것이죠. 그들은 미래를 막연히 기다리는 대신, 그 미래에 맞춰 스스로를 설계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면의 호기심과 즐거움 중심의 흥미형

또 어떤 사람은 전혀 다른 이유로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커피를 배우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씁니다. 회사 일과 아무 상관없는 일들 속에서 의외로 오래 버팁니다. 왜냐하면 그 배움은 생존을 위한 도약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한 회복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개발이란 단어는 언제나 성장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나를 나로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필요하지 않은 것을 배우는 이유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당장은 필요하지 않은 자기개발'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정적이 찾아옵니다. 일이 익숙해지고, 회의에서 나올 질문도 예측됩니다. 눈치가 능력이 되어 뭐든지 쉽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입니다. 어떤 날은 아침이 시작되기도 전에, 하루가 이미 끝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새로움이 사라지고, 긴장도 사라지고, 배우는 것도 사라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정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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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그 시간을 여러 번 지나왔습니다. 하나의 업무를 2년 넘게 담당하며, 조직 안에서 이 분야만큼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한 전문성이, 제 미래를 보장해 줄 거라는 믿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장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꾸준히 공부해 왔습니다. 디자인, AI, 생산성 툴, 심리학, 협업 도구... 언젠가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평생 써먹지 못할 수도 있는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공부하는 이유는, 그걸 공부하는 '내가' 나를 썩지 않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평생 한 번도 쓰이지 않을지도 모를 것을 공부하는 노력들이, 가장 깊은 성장의 밑거름이 됩니다.


나의 미래는 지금의 나와 얼마나 가까울까?

콜롬비아 대학교의 심리학자 할 허쉬필드는 '미래의 나'를 얼마나 현실감 있게 느끼는가에 따라 지금의 선택이 달라진다는 미래 자기 이론(Future Self-Continuity Theory)을 연구했습니다.


그는 두 가지 실험을 통해 이 이론을 증명했습니다.

[실험 1]

참가자들에게 3D 시뮬레이션으로 나이 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더니, 은퇴 자금에 더 많은 금액을 저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실험 2]

미래의 자기 모습이 지금과 닮지 않을수록, 사람들은 건강, 재정, 학습 등 장기적 투자에 현저히 소극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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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이론은, 미래의 나를 지금의 나처럼 실감할수록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고 말합니다. 자기개발에 대한 관심은 미래 자기와의 심리적 거리(Future Self-Continuity)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죠. 미래의 내가 낯선 타인처럼 느껴진다면, 지금의 불편함을 감수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미래의 내가 오늘의 나와 동일한 사람처럼 느껴진다면, 오늘의 선택이 곧 내 인생 전체를 바꾸는 일처럼 다가옵니다.


배움은 그 자체 보다 그 배움을 선택하는 오늘의 내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미래의 나는 막연한 이상향이 아닙니다. 그는 나의 동료이고 후배이며, 때로는 지금의 나보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내가 가진 가장 비싼 책

제가 가지고 있는 책 중 가장 비싼 책은 15만 원짜리 마술 책입니다. 하지만, 100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책이죠.


제게 마술을 공부하는지 묻는다면, 저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마술을 해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습니다. 이 책은 초보자를 위한 책도 아니어서, 내용은 전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구입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서문에 적힌 단 한 줄의 문장 때문입니다. 이 문장이 제가 왜 당장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계속 배우는지를 너무도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마술 책의 특성상 책의 내용을 사전 허가 없이 직접 인용할 수 없어, 이 책을 번역한 마술 제작자님의 책 소개 영상을 대신 첨부합니다. 영상의 7분 34초부터 등장하는 마지막 대사가 바로 그 문구입니다.


https://youtu.be/vRbFOc5f5cw?si=u94I2nBSRPhBDM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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