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단 셋이서 여행을 떠났다.
큰애가 태어난지 12년, 작은 애는 10년.
남자 셋이 모인게 첨이다.
집에서 몇 시간씩은 같이 있기도 한다.
그런데 엄마, 여자 없이 수컷들이 여행을 갔다.
결과는?
좋았다. 아주 많이 좋았다.
어제의 숙취 덕분에 잠을 설쳤다.
몇 시간 못 자고 일어나 찾고 치우고 생난리.
아이들 깨우고 치카시키고 기차 시간 늦는다고 협박하고 별 짓.
풀러턴역서 산타바바라까지 암트랙타고 가는 길.
8시13분 예정인 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일단 마켓에 가서 김밥이라도 건져볼 양 했지만
왠걸 아침 8시 오픈. 아리랑도 시온도 한남도 죄다 8시다.
낭패.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와 몇 가지 주섬해서 역에 도착해 기차에 올랐다.
매일 출근하는 길로 가는 기차 안은 토요일을 알리듯 한산했다.
넓은 자리들을 살펴보며 편한 자리에 등을 기댔다.
아이들은 태블릿과 랩탑을 꺼내 게임.
다행히 와이파이가 잡혀 여러 게임과 유튜브를 맘껏 시청하는 듯 하더니
이내 불만 가득 목소리가...... 너무 느리단다, 어쩌라구?
완행열차는 LA에서 잠시 쉬어간 뒤 글렌데일 버뱅크, 채스워스, 시미밸리 등을 거쳐
3시간 반만에 산타바바라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뭐할거냐고 물어보는데 딱히 대답이 없다.
왜냐고? 준비 없이 왔으니까. 아이들이 좀 찾아보고 그럴 줄 알았는데
착오, 계산실수다.
어쩔 수 없다. 일단 역에서 가까운 해변가로 발걸음을 옮기고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낚시하는 사람들, 모래성 쌓는 사람들을 거쳐 피어 끝에 다달아서
파랗고 희뿌연 하늘을 쳐다본다.
기프트샵에서 애들이 하나씩 기념품도 고르고
다음은? 뭐 딱히 없지. MIssion이나 가보자고.
폰을 켜니 걸어서 가기에는 상당히 멀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도 못 거는 쑥맥들.
결국 지나치다 자전거 렌탈에 눈을 돌리고 그 곳으로 갔다.
미션을 물어보니 왕복 8.5 마일이라며 자기 같으면 안 가겠다고 한다, 이런 된장.
일단 길을 열고 페달을 스테이트 길을 따라 무작정 올랐다.
즐비한 샵들. LA한인타운의 Wilshire Blvd. 인 듯. 사람들도 많고.
힘들게 우연히 미션 길을 찾고 또 성당도 찾았다.
미션을 찾느라 소진한 힘.
점심 시간도 훌쩍 지나 미친듯이 페달링 한 결과로 배는 아주 그냥 미쳐버리겠다.
식당을 찾다 헤매고 맥도날드라도 가려 햇는데 안 보이고
결국 아이홉을 들어갔다.
녀석들은 평상시에는 쭈볏거리며 시키지 못할 소시지를 서슴없이 주문한다. ㅎ
원래 예정으로는 7시차를 타고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딱히 할 일도 보이지 않는데다 4시45분차가 있다.
작은 녀석은 2시간 더 자전거 타자고 졸라대는데
지친 나와 지루함을 못 견디는 큰 녀석이 억지로 설득해 차에 올랐다.
자전거를 더 타겠다는 녀석은 좀 지나자 곯아 떨어지고 2시간 가까이 불편한 자세로 잠을 청했다.
왕복 기차비 $164, 기념품 $25, 자전거 $60, 아이홉 던쳐(Duncher: Dinner + Lunch) $65
300불 가량 썼다. 큰 지출.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많이 얻었다.
아들 둘과 함께 한 여행.
왠지 기분 좋은 일들이 몰려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