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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책을 펼치기 전, 마음이 멈추는 이유

독서는 처음이지?

by 에밀


 책을 펼치려다, 이상하게 손이 멈출 때가 있다.

 읽고 싶은 마음은 분명한데, 눈앞의 책이 나를 잠시 바라보며 묻는 것 같다.

 “지금, 괜찮겠어?”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여러 번 망설였다.


 그때의 나는 늘 바빴다.

 눈으로는 화면을 쫓고, 마음은 늘 다른 곳에 있었다.

 하루 종일 수많은 정보 속을 떠돌다가 문장 앞에 앉으면,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피곤했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집중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의 속도를 내려놓는 일이었다.

 그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책은 느리다.

 책은 기다린다.

 그리고 그 느림과 기다림이,

 오랫동안 빠른 세상에 길들여진 우리에게는

 어쩌면 가장 낯선 감각이다.

 그 낯섦이 바로, 책을 펼치기 전 마음이 멈추는 이유였다.


 나는 그 시절, 나를 자주 탓했다.

 “왜 나는 집중을 못 할까.”

 “왜 읽어도 남는 게 없을까.”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다시 느려지는 법’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은 느림의 언어로 말하지만,

 그 언어를 이해하려면 마음이 먼저 조용해져야 했다.


 이제 나는 책을 펼칠 때, 마음부터 고요히 한다.

 완벽하게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고, 한 쪽만 읽어도 충분하다.

 책은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괜찮아, 조금 천천히 와도 돼.”

 그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책을 읽는다는 건 결국,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이 아니라

 나에게 돌아오는 일이다.

 책을 펼치기 전 잠시 멈추는 그 시간,

 그건 나의 마음이 다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신호다.

 그때부터 이미 독서는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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