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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책은 설명서가 아니라 편지다

독서는 처음이지?

by 에밀


 예전의 나는 책을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에는 정답이 있고, 그 정답을 빨리 이해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늘 조급했다.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은 나를 불안하게 했고,

 한 줄이라도 놓치면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책은 나에게 항상 어려운 시험지였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책은 시험지가 아니라 편지라는 걸.

 어떤 이는 위로의 말을,

 어떤 이는 자신의 깨달음을,

 어떤 이는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문장에 담아 보냈다는 걸.

 책은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건넬 뿐이다.


 편지는 읽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읽는 시점, 마음의 상태, 나의 경험에 따라

 같은 문장도 다르게 들린다.

 책도 그렇다.

 오늘 읽을 때와 내일 읽을 때의 문장은 다르다.

 그건 책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언제나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건다.

 “지금의 너라면, 이 문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뒤부터 책 읽기는 훨씬 부드러워졌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았다.

 편지를 받을 때, 모든 문장을 해석하려 애쓰지 않듯이

 책에서도 모든 뜻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 문장을 왜 지금 만났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대화가 되었다.


 책은 나보다 먼저 고민했던 사람의 목소리다.

 그 사람은 나보다 조금 먼저 길을 걸었고,

 그 길 위에서 느낀 생각과 감정을 나에게 건넨다.

 그래서 책은 늘 과거의 누군가가 현재의 나에게 보낸 편지다.

 편지는 다 읽지 않아도 마음에 남는다.

 책도 그렇다.

 한 문단만으로도, 한 구절만으로도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책이 가진 가장 인간적인 힘이다.


 책을 설명서로 읽으면 지식만 남고,

 책을 편지로 읽으면 마음이 남는다.

 그리고 마음이 남을 때, 책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문장은 그렇게 나와 연결되고,

 그 연결이 쌓여 독서가 나의 일부가 된다.


 이제 나는 책을 읽을 때 이렇게 생각한다.

 “이건 누군가의 마음이 나에게 도착한 편지다.”

 그렇게 마음을 연 순간,

 책 속의 문장은 더 이상 어렵지 않다.

 그건 이해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저 들어주면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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