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처음이지?
책을 읽다 보면 종종 이런 순간이 온다.
‘아, 이 사람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구나.’
한 줄의 문장이 그렇게 마음을 녹일 때가 있다.
그 순간, 우리는 단지 글을 읽고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데미안』의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땐 그저 멋있다고만 느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았다.
그건 ‘성장’이 아니라 ‘이해’의 이야기라는 걸.
자신을 깨뜨려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아주 조용한 깨달음이 그 속에 숨어 있었다.
나는 책을 통해 처음으로 ‘다른 시선’을 배웠다.
예전의 나는 늘 내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밖에 말하지?’
‘저건 그냥 핑계잖아.’
그렇게 쉽게 단정 짓던 시절,
『인간 실격』의 주인공 오바 요조를 만났다.
그의 불안, 그 어눌한 고백,
그리고 “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는 한 문장이
이상하리만큼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때 처음 느꼈다.
이해하지 못한 사람을 미워했던 건,
사실 내가 외로웠기 때문이었다는 걸.
책 속 인물들은 때로는 낯설지만,
그 낯섦 속에서 우리는 공통된 마음을 발견한다.
누군가는 실패를 통해,
누군가는 후회를 통해,
누군가는 사랑의 부재를 통해 자신을 이야기한다.
그걸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사람’이라는 복잡한 존재가
조금은 따뜻하게 보인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나는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그를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이 가르쳐준 건 바로 이런 마음이었다.
이해가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려는 태도 자체가
사람을 조금 더 다정하게 만든다는 걸.
책을 읽는다는 건 결국,
수많은 사람을 대신 살아보는 일이다.
나는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한 여성의 시선을,
『노르웨이의 숲』을 통해 젊은 시절의 상처를,
『언어의 온도』를 통해 말 한마디의 무게를 배웠다.
이해보다 느리지만, 진짜로 내 안을 바꿔놓은 건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시간이었다.
책은 그래서 ‘안전한 관계의 연습장’이다.
현실에서는 쉽게 닿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책 속에서는 천천히 마주할 수 있다.
거기엔 평가도, 방어도 없다.
그저 ‘아, 그랬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마음만 남는다.
그 마음이 쌓여, 현실의 인간관계도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책을 덮을 때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사람을 실제로 만났다면
나는 그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그 질문이 나를 조금 더 인간적으로 만든다.
책을 읽는 건 결국, 문장을 통해 사람을 배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이해하는 순간,
나도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