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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책은 사람을 이해하는 연습장이다

독서는 처음이지?

by 에밀


 책을 읽다 보면 종종 이런 순간이 온다.

 ‘아, 이 사람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구나.’

 한 줄의 문장이 그렇게 마음을 녹일 때가 있다.

 그 순간, 우리는 단지 글을 읽고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데미안』의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땐 그저 멋있다고만 느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았다.

 그건 ‘성장’이 아니라 ‘이해’의 이야기라는 걸.

 자신을 깨뜨려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아주 조용한 깨달음이 그 속에 숨어 있었다.


 나는 책을 통해 처음으로 ‘다른 시선’을 배웠다.

 예전의 나는 늘 내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밖에 말하지?’

 ‘저건 그냥 핑계잖아.’

 그렇게 쉽게 단정 짓던 시절,

 『인간 실격』의 주인공 오바 요조를 만났다.

 그의 불안, 그 어눌한 고백,

 그리고 “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는 한 문장이

 이상하리만큼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때 처음 느꼈다.

 이해하지 못한 사람을 미워했던 건,

 사실 내가 외로웠기 때문이었다는 걸.


 책 속 인물들은 때로는 낯설지만,

 그 낯섦 속에서 우리는 공통된 마음을 발견한다.

 누군가는 실패를 통해,

 누군가는 후회를 통해,

 누군가는 사랑의 부재를 통해 자신을 이야기한다.

 그걸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사람’이라는 복잡한 존재가

 조금은 따뜻하게 보인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나는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그를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이 가르쳐준 건 바로 이런 마음이었다.

 이해가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려는 태도 자체가

 사람을 조금 더 다정하게 만든다는 걸.


 책을 읽는다는 건 결국,

 수많은 사람을 대신 살아보는 일이다.

 나는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한 여성의 시선을,

 『노르웨이의 숲』을 통해 젊은 시절의 상처를,

 『언어의 온도』를 통해 말 한마디의 무게를 배웠다.

 이해보다 느리지만, 진짜로 내 안을 바꿔놓은 건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시간이었다.


 책은 그래서 ‘안전한 관계의 연습장’이다.

 현실에서는 쉽게 닿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책 속에서는 천천히 마주할 수 있다.

 거기엔 평가도, 방어도 없다.

 그저 ‘아, 그랬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마음만 남는다.

 그 마음이 쌓여, 현실의 인간관계도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책을 덮을 때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사람을 실제로 만났다면

 나는 그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그 질문이 나를 조금 더 인간적으로 만든다.

 책을 읽는 건 결국, 문장을 통해 사람을 배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이해하는 순간,

 나도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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