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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책은 대화다.

독서는 처음이지?

by 에밀


 책을 읽는다는 건 대화다.

 하지만 그 대화는 저자와의 대화만이 아니다.

 진짜 대화는 책을 덮은 후에 시작된다.

 문장을 따라가다 멈춘 자리에서,

 나는 나에게 묻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처음엔 그 질문이 어색했다.

 책은 늘 나에게 답을 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았다.

 좋은 책은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질문을 돌려주는 존재라는 걸.

 그 질문이 마음에 남아 있을 때,

 그제야 대화는 시작된다.


 어떤 책은 나를 설득하려 하고,

 어떤 책은 내 생각을 흔들어놓는다.

 『자기 앞의 생』을 읽을 땐

 세상에 이해받지 못한 존재들의 외로움이 보였고,

 『도덕경』을 읽을 땐

 “물은 다투지 않지만 모든 것을 이긴다”는 문장이

 오랫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문장들이 나를 조용히 흔들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얼마나 단단한가,

 그리고 얼마나 유연한가.’

 그 질문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왔다.


 책은 늘 나를 향해 질문한다.

 “너는 어떤 선택을 할 거니?”

 “너는 지금 행복하니?”

 그 물음에 답하지 못해도 괜찮다.

 책은 조용히 기다려준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내가 스스로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어쩌면 독서는 대답이 아니라 듣기의 과정이다.

 저자의 목소리를 듣고, 세상의 소리를 듣고,

 그다음에야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가 아주 작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분명히 나의 언어다.

 책을 읽는다는 건 결국,

 그 언어를 되찾는 일이다.


 나는 이제 책을 읽을 때마다 다짐한다.

 ‘이 책이 나에게 무슨 말을 건네는가’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나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가’ 하고.

 그때 비로소 독서는 대화가 된다.

 책이 말을 걸고, 내가 답을 하며,

 그 사이에서 삶의 의미가 조금씩 만들어진다.


 『월든』의 소로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이유는,

 살아 있다는 사실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책도 그렇다.

 우리가 책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지식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감각을 다시 배우기 위해서다.

 그 감각이 깨어나는 순간,

 독서는 더 이상 외로운 일이 아니다.


 책을 덮고 난 후에도 그 문장이 머릿속에 남을 때,

 그게 바로 대화의 흔적이다.

 그 대화는 어쩌면 평생 이어질지도 모른다.

 책 속의 목소리가 나의 언어가 되고,

 그 언어가 또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는 것.

 그게 책이 만들어내는 가장 오래된 대화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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