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루틴설계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루틴을 ‘반복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물을 마시고, 출근길에 같은 음악을 듣고, 밤마다 운동을 하면 그것을 루틴이라고 부른다. 그러다 이 반복이 끊기면 루틴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루틴을 반복의 문제로만 이해하면 금방 한계에 부딪힌다. 반복은 루틴의 결과이지,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루틴을 만들려는 사람들의 첫 번째 패턴은 행동을 목록처럼 적어두는 것이다. “일찍 일어나기. 운동하기. 책 읽기.” 하지만 이렇게 ‘해야 할 행동’을 나열한다고 루틴이 유지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며칠을 넘기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행동은 감정·피로·환경 같은 외부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즉, 행동 자체는 매우 불안정한 단위다. 감정이 흐트러지면 행동은 쉽게 사라지고, 이런 방식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반면 루틴이 잘 유지되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출발점에서 움직인다. 그들은 ‘어떤 행동을 할지’보다 ‘어떤 구조에서 그 행동이 이루어지는지’를 먼저 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매일 퇴근 후 운동을 꾸준히 이어간다. 이것은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운동이 가능한 구조가 이미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옷은 미리 준비되어 있고, 운동하는 장소가 고정되어 있으며, 그 시간대에는 방해 요소가 없다. 구조가 갖춰져 있으니 행동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심리학자 커트 레빈은 “인간의 행동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장(field)에 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는 특정 행동이 일어나는 환경과 조건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이라는 의미다. 루틴도 마찬가지다. 행동 그 자체보다,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장(場), 즉 구조가 중요하다. 구조가 안정되면 행동은 저항 없이 이어지고, 구조가 흔들리면 행동도 금방 사라진다.
한 연구에서도 유사한 사실이 관찰되었다. 영국 UCL 연구팀은 습관 형성 과정에서 “반복의 횟수보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 일어나는 맥락의 일관성”이라고 밝혔다. 같은 시간·같은 장소·같은 신호가 주어질 때 습관이 훨씬 잘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즉, 맥락이 안정될 때 뇌는 행동을 자동화하여 에너지를 적게 들이는 경로로 저장한다. 루틴이 자리 잡는 이유는 반복이 아니라 안정된 구조 때문이다.
반대로 루틴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구조가 없다. 일찍 일어나기로 결심하지만 알람이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다. 운동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운동복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 책을 읽겠다고 마음먹지만 휴대전화가 늘 시야 안에 있다. 구조가 무너지면 의지는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의지는 쉽게 흔들리지만 구조는 지속된다.
우리는 종종 “나는 의지가 약해서 그래”라고 말한다. 그러나 루틴은 의지로 유지되지 않는다. 의지는 감정에 휘둘리고, 피로에 침식되고, 일정의 변화에 흔들린다. 루틴을 지탱하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조건이다. 조건이 갖춰지면 행동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루틴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이제 루틴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 루틴은 반복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구조다. 행동은 구조가 끌어내고, 구조는 일상의 흐름을 결정한다. 반복되는 행동이 하루를 만들고, 그 하루들이 쌓여 인생의 방향을 만든다. 그렇다면 루틴을 다룬다는 것은 결국 삶의 구조를 다루는 일이다.
이 책의 다음 절에서는 행동이 반복되도록 만드는 뇌의 에너지 시스템을 살펴본다. 루틴이 ‘왜’ 쉽게 자리 잡거나, ‘왜’ 쉽게 무너지는지 이해하려면 뇌의 전략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루틴이 구조라면, 그 구조는 결국 우리의 뇌가 선택한 에너지 경로 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