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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루틴은 뇌의 에너지 전략이다

나는 루틴설계자입니다.

by 에밀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선택하고, 수백 번 판단한다. 하지만 뇌는 그 많은 선택을 모두 신중하게 처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능한 한 적게 고민하고 적게 결정하려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뇌는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기관이고, 그래서 줄일 수 있는 모든 결정을 줄이려 한다. 루틴은 바로 이 ‘뇌의 에너지 절약 전략’에서 탄생한다.


새로운 행동을 할 때 뇌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낯선 일을 시작할 때 더 피곤하고, 준비되지 않은 행동 앞에서는 이상하게 저항감이 생긴다. 반면 익숙한 행동을 할 때는 거의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일어나자마자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복된 행동은 뇌가 ‘자동 경로’로 저장해두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바바라 오클리는 “뇌는 반복되는 행동을 에너지 절약 모드로 저장해 자동화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행동이 자동화된다는 것은 그 행동을 할 때 더 적은 에너지를 쓴다는 뜻이다. 그래서 루틴이 자리 잡으면 유지하는 데 힘이 거의 들지 않는다. 이것이 루틴의 가장 강력한 힘이며, 동시에 무서운 힘이기도 하다.


영국 UCL(University College London)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관찰이 있었다. 습관 형성 과정을 추적한 연구팀은 “습관이 자리 잡는 데 중요한 것은 반복의 횟수가 아니라 그 행동이 일어나는 맥락의 안정성”이라고 밝혔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신호가 주어질 때 뇌는 행동을 자동화하여 에너지를 적게 쓰는 경로로 저장한다. 결국 뇌는 반복보다 ‘맥락’을 더 중요하게 본다. 루틴이 자리 잡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맥락이 결정하는 것이다.


사례를 하나 보자. 어떤 사람이 매일 아침 10분씩 스트레칭을 한다고 해보자. 처음엔 의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일정한 시간대, 같은 장소, 방해받지 않는 환경이 계속 유지되면 뇌는 이 행동을 반복되는 기본 경로로 인식한다. 즉, “이 시간엔 스트레칭을 하는구나”라고 자동으로 기록한다. 시간이 지나면 스트레칭은 더 이상 결심이 아니라 흐름이 된다. 이것이 뇌의 자동화다.


반대로 루틴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뇌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 하지만 알람이 손 닿는 곳에 있어 바로 꺼버린다.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지만 운동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책을 읽으려 해도 휴대전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런 환경에서는 뇌가 기존의 자동 경로(휴대전화, 쉬기, 미루기)를 선택한다. 익숙한 경로가 더 적은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다. 이처럼 뇌는 ‘더 쉬운 길’을 선택하려 하고, 그 쉬운 길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일 수도 있다.


루틴이란 바로 이 뇌의 전략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기술이다. 뇌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자동화 경로를 찾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연스럽게 반복되기를 바라는 행동을 자동 경로에 올릴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원하지 않는 행동은 자동 경로에서 벗어나도록 환경과 신호를 바꾸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직장인은 아침마다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루틴을 점검해 출근 직후 10분 동안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행동이 하루의 흐름을 흐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책상 위에 휴대전화를 두지 않고 가방에 넣어두는 구조를 만들었다. 동시에 컴퓨터를 켜면 자동으로 하루 목표가 적힌 문서가 열리도록 설정했다. 두 달이 지나자 그는 “하루 첫 10분이 바뀌니까 업무 집중력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것은 의지의 승리가 아니라 구조의 승리다.


이런 예시는 루틴이 의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의지는 감정에 따라 달라지고, 피로에 따라 약해지고, 예기치 않은 일정 앞에서 쉽게 흔들린다. 반면 구조는 비교적 안정적이고 지속된다. 그래서 루틴은 의지로 싸우는 문제가 아니라 조건을 설계하는 문제다. 조건이 갖춰지면 행동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루틴은 성격이 강해야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뇌가 원리대로 움직이도록 설계되어야 유지된다.


이처럼 루틴을 이해하는 핵심은 뇌의 에너지 흐름을 이해하는 데 있다. 루틴은 반복의 결과가 아니라 뇌가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만든 자동 경로다. 우리는 그 경로를 설계할 수 있고, 설계된 경로는 삶의 방향을 바꾼다. 루틴을 바꾼다는 것은 결국 뇌의 에너지 전략을 다시 짜는 일이다.


이제 다음 절에서는 루틴이 어떻게 생산성과 집중력으로 이어지는지를 살펴본다. 뇌의 자동화는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 하루의 질과 성과를 결정짓는 중요한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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