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부터 부캐 열풍까지, 모든 영역을 재편하는 프로젝트의 힘
프로젝트라는 건 대체 무엇이고, 그 특별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프로젝트 피플〉은 3회에 걸쳐 '프로젝트란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 생각과 지식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① 당신에게 프로젝트란
② 프로젝트에 관한 아주 짧은 역사
③ 시작하는 프로젝트 피플을 위한 최소한의 안내서
지난 번 〈당신에게 프로젝트란〉 설문 답변을 정리하면서 요즘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프로젝트라는 단어가 차지하는 위치를 흐릿하게나마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멋진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으로는 윤종신, 니키리와 같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각인된 유명인들이 많이 언급되었는데, 특히 음악, 영화, 미술과 같은 문화·예술 종사자들이 많았다. 한편 '기회가 된다면 해 보고 싶은 프로젝트'로는 공예, 출판, 프로그래밍 아이디어가 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정작 '프로젝트'라는 것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렇게 개인 주도로 창의성을 발휘해 예술적, 기술적인 목표를 달성해 내는 프로젝트이 대중적 관심을 끈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과거에는 주로 건설이나 토목, 과학, 군사와 같은 분야에서 국가나 기업이 주도해서 추진하는 대규모의 과업들을 '프로젝트'라고 불렀다면, 최근에 와서야 이 단어를 문화·예술 분야나 개인이 기획한 활동에도 경계 없이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프로젝트'라는 말이 이처럼 여기저기 쓰이게 된 것이 그저 한 단어의 유행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세상이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 어떠한 중요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
프로젝트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프로젝트를 명확히 정의내릴 필요가 있다. 프로젝트 관리 분야의 국제적인 표준으로 통하는 PMBOK 가이드는 프로젝트를 "하나의 유일무이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수행되는 일시적인 노력"으로 정의한다. 일시적이라는 것은 분명한 처음과 끝이 있음을 뜻한다. 몇 년, 몇십 년이 걸리는 프로젝트도 있지만, 영원한 프로젝트란 없다. 예전에 없던 고유한 무언가를 창조해내기 위한 시도로서, 평소에 하는 상시 활동과는 달리 한 번 하면 끝나는 일회성 활동이라는 점 또한 중요하다.
즉 프로젝트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미래에 이루어졌으면, 혹은 만들어졌으면 하는 어떤 결과를 내기 위해 현재인 지금 기획하는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의 기획 없이 이미 완료되어 있는 이런 저런 일들을 추후에 묶어서 '프로젝트'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이처럼 특정 시간 속에 존재하면서 단 한 번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은 프로젝트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프로젝트가 성공할 것임을 미리 확언할 수는 없다. (만약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일은 프로젝트로 볼 수 없다.) 프로젝트는 알 수 없는 미래에 우리가 의도를 적용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불확실한 시도인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기원전 26세기에 완공된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미드가 기록된 최초의 프로젝트라고 말한다. 피라미드라는 엄청난 건축물을 완성시키기 위해 업무의 범주, 일정, 품질, 자원, 위험 요소 등에 관한 계획과 실행이 필요했으리라는 것이다. 그 당시 건축은 파라오의 권한으로 무한정의 노동력이나 시간을 투입했을 것처럼 보이지만, 기록을 살펴보면 아무리 많은 자원과 권력이 있다 하더라도 일을 작게 쪼개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실행하는 정교한 계획이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대규모의 건축물을 만드는 것은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는 할 수 없고 큰 규모의 자원이 투입되는 일이었기에,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먼저 자연스럽게 프로젝트 단위로 일이 기획·조직되어 왔다. 현존하는 건축 프로젝트 중 가장 오래도록 진행 중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프로젝트의 본질적인 불확실성을 잘 보여주는 예시다. 1882년에 건축가 비야르의 지휘 하에 시작되었다가 이듬해 가우디에게 넘어가고 나서 최초의 계획과 다르게 양식적인 변형이 많이 이루어졌으며, 1926년 가우디의 사망과 1950년대의 전쟁 등으로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지만 꾸준히 진행되어 현재 2026년 완공을 바라보고 있다.
건축·토목 분야에서 인류 최초의 프로젝트들이 오랫동안 진행되어 오기는 했지만, 프로젝트 관리(project management)가 정식 분야로 확립된 것은 정보기술의 발달로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가속된 20세기의 일이다.
1917년에는 가장 오래된 일정계획 기법으로 꼽히는 '간트 차트'가 개발되어 프로젝트에 필요한 작업들을 일목요연하게 표시하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표준화된 방법을 제시했다. 간트 차트는 현재에도 분야를 막론하고 많은 프로젝트 관리자들이 애용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세계 최초로 핵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 냉전 시대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킨 후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는' 것을 목표로 진행된 '아폴로 프로젝트' 등은 군사적·정치적 목적으로 최신 과학기술을 이용해 국가의 주도로 진행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들을 전세계인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이처럼 고도화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더 과학적인 프로젝트 관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국가 지도자나 경영자들 사이에서 확산되었다. 미국방부는 1962년에 WBS(Work Breakdown Structure)라는 프로젝트 관리 방법론을 정립해 모든 프로젝트 관리에 적용했고, 유럽에서는 1964년에 IPMA(International Project Management Association)이라는 최초의 프로젝트 관리 국제 기관이 설립되기도 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급격히 발전하는 컴퓨터와 정보통신 분야가 프로젝트 관리의 진화를 주도했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은 토목 공사와는 달리 개발 지연이 발생하는 원인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영국 정부는 국가 주도 소프트웨어 개발이 항상 계획보다 늦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PROMPTII Method라는 프로젝트 관리 방법론을 정립했고, 비슷한 시기 IBM의 임원 프레드 브룩스는 "지연되는 개발 프로젝트에 사람을 더 넣으면 그만큼 더 지연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후 80~90년대를 거치며 전세계 수많은 개발자들과 경영자들이 프로젝트 관리 분야를 고도화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여러 작은 팀들이 상호의존성을 띈 소프트웨어의 여러 부분들을 점진적으로 개발하는 스크럼(Scrum) 방법론의 경우 1986년에 처음 제안된 이래 IT 분야에서 현재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특출난 예술가 또는 장인의 손에서 작품이 탄생하고 도제와 같은 방식을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이 근대의 예술 작품 또는 문화적 콘텐츠의 기본적인 창작 방식이었다면, 20세기에 들어서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이러한 크리에이티브 분야 역시 여러 사람의 협업, 기획된 자본의 투여, 특정 산출물을 조건으로 한 일시적 참여 등을 특징으로 한 프로젝트 형태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방송이나 영화와 같은 신흥 종합·대중예술 분야는 생산과 수용의 범위가 이전의 그 어떤 창작활동과 비교해도 넓었고 수익성도 높았다. 수익을 목적으로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되면서 탄생한 '스튜디오'들은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는 것이 기본인 새로운 기업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고, 각 프로젝트의 실질적인 진행을 지휘하는 '제작자'의 역할이 커지게 되었다. 문화·예술 분야의 활동들 역시 프로젝트 기반으로 재편되면서 종사자들은 개인 작업과 기업화된 협업 작업을 병행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커리어의 형태로 삼았으며, 예전에는 개인 작업 위주의 '포트폴리오'가 가장 중요했다면 점차 협업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력을 서술하는 'CV'(이력서)의 지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대형 프로젝트 중에는 세금으로 추진되는 국가 단위 프로젝트나 대규모 민간 자본이 투입되는 수익성 프로젝트가 주류를 이루기는 했지만, 제3의 방식으로 자금을 모아 실행되는 프로젝트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유의 여신상이다. 19세기 말 프랑스 정부가 선물한 여신상을 세울 받침대를 건축할 재원이 뉴욕 주나 국회에서 마련되지 못하자, 신문사를 운영하던 조세프 퓰리처는 '개개인의 돈을 모아 받침대를 완성하자'는 내용의 광고를 실었고 5개월 만에 10만 달러의 자금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그는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기념과 감사의 표시로 기념주화 등의 리워드를 제공했는데, 무려 160,000명 이상이 참여한 이 모금은 최초의 현대적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미국, 영국 등을 시작으로 온라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크라우드펀딩이 국가 자금이나 기업 투자금을 모으기 어려운 프로젝트에 자금을 모집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90년대 이후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이미 프로젝트가 보편적인 업무 진행 방식으로 완전히 정착되었다. 〈모든 것의 프로젝트화〉라는 제목의 2016년 논문에 따르면(Anders Jensen 외), 프로젝트는 특정 분야의 경계를 넘어 경제활동의 기본적인 단위 또는 핵심 추진력이 되었다. 과거에는 생산, 유통, 학습, 복지 등의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대체로 이미 존재하는 구조 속에서(공장, 시장, 학교, 병원 등) 미리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에 의해 큰 변화 없이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현대 사회는 끊임없는 변화와 예측할 수 없는 위협으로 인해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추진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심지어 전통적인 전쟁이 테러리즘으로 교체된 것 역시 '업무의 프로젝트화'로 보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회학자들은 우리가 여행을 가는 것부터 이직, 퇴직, 이민 같은 활동들을 꾀할 때에 이미 '프로젝트' 단위로 인생을 바라보고 있다고 본다. 예전에는 전통적인 가족 구조 속에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며 살면 어느 정도 안정을 담보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개인이 계속해서 다음 '프로젝트'를 고안해서 활동의 변화를 추구해야만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새로운 일을 빠르게 벌리고, 돌발상황에 민첩하게 대처하며, 주변의 피드백에 대응하는 능력이 기업 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인 변화 속에서 개개인은 꼭 기업인이나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특별한 활동'을 해 나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학생, 직장인, 자영업자와 같은 '역할'이나 '지위'보다는 그 사람이 실제로 해 온 활동들이 점점 더 그를 정의하게 되며, 이러한 새로운 정체성의 부상은 소셜미디어 프로필을 통해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의 '사이드 프로젝트'의 급부상 또한 프로젝트 사회의 큰 흐름 아래 있는 것이다.
프로젝트 사회에서는 한 가지 일만 하면 지루한 사람으로 여겨질 것 같은 초조함이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 기회를 찾기 위해 사람들은 일을 통해 아는 사람들의 범주, 즉 네트워크를 강화하려 노력하며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연속해서 선보인다.
대중문화 역시 이를 발빠르게 반영하고 있다. 동일한 포맷의 연속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일시적인 기획으로 그룹을 결성해 목표를 달성하는 MBC 〈놀면 뭐하니?〉와 같은 프로젝트 기반 기획, 그리고 '셀럽파이브' '둘째이모 김다비' '매드 몬스터' 등 기존의 직업에서 벗어나 역할을 확장하는 수많은 '부캐'(부(副)캐릭터)들의 활약에서도 느낄 수 있다.
개인도 프로젝트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기획을 시도하고자 하는 욕구를 실현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것을 요구받는 사회가 왔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정작 프로젝트를 하며 잘 사는 법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자신의 창의성을 프로젝트로서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문화에서는 개개인이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불안함에 시달리기 쉽다. 뿐만 아니라 건축, IT, 경영 등 일부 분야에서만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방법이 지식으로 축적되어 왔던 프로젝트의 역사를 고려하면 이러한 노하우를 모르는 개인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다음화에서는 프로젝트에 수반되는 불확실성과 복잡성을 관리해 처음 시작하는 프로젝트일지라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기초적인 프로젝트 관리 방법을 살펴보려고 한다. 물론 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대기업 수준의 전문적인 프로젝트 관리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으니 너무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단지 이것만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회사에서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사람도, 방구석 파라오가 되어 나만의 피라미드를 기획하고 있는 사람도 결국에는 프로젝트의 짧고도 긴 역사를 함께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글 김괜저
일러스트 최재훈
참고자료
Egyptians were the first recorded project managers-planning pyramids
The Projectification of Everything: Projects as a Human Cond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