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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텀블벅 영퍼센트 May 04. 2020

‘실험정신 있는 호떡집’ 같은 출판사,
에디시옹 장물랭

함께한 작가의 책은 무조건 출간, 인간미에 충실한 출판사를 꿈꿉니다

텀블벅 사람들의 인생펀딩을 취재할 때 유독 공감한 후기가 있었습니다. "장물랭 님은 책 만들 때 정말 행복해 보여요.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색감은 ⟪잠의 땅, 꿈의 나라⟫에서 처음 봤어요!"라는 코멘트였어요. 아트북페어에서 자주 뵌 장물랭 님은 늘 유쾌하게 책을 소개해주셨고, 테이블에는 곱디고운 책이 가득했거든요. 혼자 출판사를 꾸려 가면서 부지런히 외부활동까지 챙기고, 인쇄 품질에 대한 고민과 연구 끝에 여러 분들께 강의도 하시는 모습이 참 멋졌습니다. 그래서 인터뷰를 청했는데 무엇이든 다 물어보라고 판을 깔아주시는 게 아니겠어요? 덕분에 소규모 출판 신에서 재밌게 일하는 법에 대해 궁금했던 것을 몽땅 여쭤봤습니다.☺︎ 



#1인1견 출판사 에디시옹 장물랭?


에디시옹 장물랭’의 시작과 현재에 대해 들려주세요. 

프랑스에서 돌아온 후 ‘해바라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그래픽노블 전문 번역팀을 만들어 활동했어요. 주로 출판사 이숲과 휴머니스트에서 반전, 여성, 환경, 반핵 등 논픽션 장르를 소개했죠. 작은 번역팀이었지만 저희가 선정하고 진행했던 작품들이 평론가와 언론으로부터는 많은 사랑을 받았던 거 같아요. 한국에 없는 정보들을 주로 소개했던 덕분인 거 같습니다. 일반 독자님들로부터는 철저하게 외면받았지만...

그 일이 인연이 되어 2년 동안 <한겨레21>에서 칼럼 ‘생각하는 만화’와 ‘어른들을 위한 동화’ 두 코너 연재를 맡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퍽 유용했던 경험 같아요. 여러 작품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또 출판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거든요. 하지만 출판사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출판계에서 겪은 어려움 때문에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밖에 없었어요.

그런 와중에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떠나셨고, 저는 프랑스로 돌아갈 준비를 착착 했어요. 했었죠... 했는데... 못 가게 되었어요. 갑자기 아주아주 예쁘게 생긴 강아지와 함께 살게 되었거든요. 이름은 아들이랍니다. 준비했던 계획이 모두 수포가 되자 먹고살 길이 막막했어요. 보고 배운 도둑질이 출판일이라 아들이랑 같이 출판사를 시작하기로 했지요. 출판사를 시작한 지 곧 4년이 돼요.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근사한 책들도 많이 냈고, 매력 넘치는 여러 사람들과도 인연을 맺었어요. 진짜 근사한 여정이었어요. 여전히 파리목숨 같은 쪼꼬만 출판사지만 앞으로도 즐겁게 일하고 싶어요.


4년간 어떤 책들을 출간해왔고, 또 출간할 예정인가요? 

저희의 출판 라인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작가몰빵주의’, 다른 하나는 ‘소외당한 작품’ 라인이죠. 작가몰빵주의는 함께 작업한 작가의 작품은 무조건 출간한다는 원칙이에요. 출판사와 작가의 관계는 달면 출간하고, 쓰면 안 출간하는 성격이 강하죠. 작가에게 있어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험적인 작품을 만드는 단계가 필요한데 상업적인 이유로 그걸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그게 참 싫었어요. 그래서 작가가 선정되면 작품이 제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무조건 모두 출간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여력이 안 되어서 모든 작품을 빠르게 소개할 수는 없지만 돈 열심히 모아서 꾸준히 하나씩 소개하고 있어요.

소외된 작품 라인은 작품의 다양성 추구와 인디 출판사로서 저희의 정체성이 결합된 선정이에요. 쉽게 얘기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한국에 출간되지 않을 것 같은 작품을 출간하자는 것이지요. 안 에르보의 ⟪숲의 거인 이야기⟫나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의 ⟪르 데생⟫이 대표적입니다. 저희 책들이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고유한 영혼을 지닌 책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출간되지 않을 책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이 라인은 유지하려고 합니다. 


타이틀을 고르는 안목은 어떻게 기르는 건가요? 타고난 예술적 감각일까요?

저는 역사학을 공부했고, 예술적 감각은 정말 하나도 없어요. 타이틀 선정은 앞서 말씀드린 기준에 따라 진행하면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잡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외서를 소개하고 있는 만큼 한국에 없는 새로운 시각이 책에 담겨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잖아요.



에디시옹 장물랭의 대표작을 꼽는다면요?  

9종 밖에 없는 출판사라 모든 작품이 대표작이에요. 그래도 꼭 봐주셨으면 하는 작품은 톰 골드 작가의 ⟪달과 경찰⟫입니다. 톰 골드 작가 특유의 시니컬하고 절제된 감정이 너무 매력적인 작품이에요. 하지만 이 책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답니다. 밤에 읽어달라는 경고 메시지도 있고요. 한번 읽고 찾아봐 주셨으면 해요. 독자님을 꼭 행복하게 만들어 드릴 거예요. 꼭 밤에 봐주셔야 해요.


'독립출판으로 만 부 팔면 성공한 인생이지!'라고 같이 농담한 적이 있는데, 1만부 클럽에 드셨다면서요! 어떤 책인지 소개해주세요. 

저희 첫 작품 ⟪새내기 유령⟫과 그 뒤를 이은 두 번째 ⟪하루의 설계도⟫ 모두 1만 부를 넘었어요. 전부 로버트 헌터 씨 작품이네요. 두 책 모두 4가지 이상의 특별한 잉크로 찍은 작품이죠. ⟪새내기 유령⟫은 어떻게 인간이 밤하늘의 별이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고, ⟪하루의 설계도⟫는 파도가 치는 원인을 태양을 사랑한 지구의 집착 때문이라고 풀어낸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이에요. 이 책들뿐만 아니라 로버트 헌터 작가의 ⟪잠의 땅, 꿈의 나라⟫, 톰 골드 작가의 ⟪달과 경찰⟫도 만 부가 머지 않았답니다. 

로버트 헌터 씨는 뛰어난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애니메이터이기도 하지만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인쇄 장인이기도 합니다. 제게는 인쇄 스승님이시기도 해요. 헌터 씨는 종이책 작가의 완성은 종이와 잉크와 인쇄에도 정통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했어요... 특히 ⟪하루의 설계도⟫에서 더 많은 색역을 쓰기 위해 이제는 사라진 ‘헥사크롬’ 기법까지 꺼내어 사용한 건 정말 놀라웠어요.


프랑스 유학을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가서 공부 안 하고 다른 일을 하셨다고요? 

오랫동안 서양사를 공부하다가 대학원을 중간에 그만두고 프랑스로 갔어요. 그런데 유명 박물관이나 성당, 미술관 안내 책자에 중국어, 일본어는 있는데 한국어만 없더라고요. 그래서 유학생들과 함께 무료 한국어 안내책자를 만들어 배치했어요. 처음에는 자비로 진행했는데 나중에는 대한항공의 후원을 받아 35여 곳의 장소에 제작을 완료했지요. 그 일을 진행했던 게 에디시옹 장물랭의 모체인 ‘해바라기 프로젝트’예요. 그때 익힌 프랑스어 번역 능력을 토대로 그래픽노블 전문 번역을 시작했죠. 지금 돌아보면 학교 안에서보다 재미있고 근사한 일을 했던 거 같네요.


영어, 불어까지 3개 국어를 하시는군요! 출판 브랜드를 운영하려면 외국어 능력이 필요할까요?

외국어에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는 스타일이에요. 한국으로 돌아온 뒤로는 외국인 만나도 전혀 사용하지 않아요. 아쉬운 사람이 해야죠. 실제로 거의 다 까먹었기도 하고요. 그래도 리딩은 어쩔 수 없이 매일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 프랑스어와 영어로 된 정보의 질과 양이 엄청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SNS를 통해 작가와 작품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기 때문이에요. 외국어를 못하면 외서 전문 출판사 운영이 어렵겠죠. 독자님들보다 정보가 늦어서야 될까요? 언어는 정말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해주는 엄청난 능력인 거 같아요.



#1인 출판사는 어떻게 먹고사는가 


편집부터 제작, 판매까지 소화하려면 일정 관리가 업무의 핵심일 것 같아요. 보통 시간을 어떻게 쓰시나요?

집무실(집+사무실)에서 일하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발주 들어온 물량 출고와 기타 행정 업무를 11시 30분까지 처리해요. 점심을 먹으면 이제 출격할 시간입니다. 오후에는 주로 서점을 다니거나 미팅을 하고, 시간이 남으면 문화 공간을 방문해요. 

예전엔 일이 없으면 사무실에서 편집 작업에 매달렸는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 편하기는 하지만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기 어렵다 보니 점차 매몰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굳어지고 뻔해지는 것 같았죠. 그런데 출판사 쪽프레스와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예술 동향에 대해 빠삭하게 꿰뚫고 있는 게 참 좋아 보였어요. 그래서 저도 저 나름대로 돌아다니면서 공부를 시작한 거예요.

저녁 즈음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마치고 편집을 시작합니다. 번역을 하거나, 포토샵으로 이미지를 수정하고, 또 인디자인으로 레이아웃을 잡죠. 늦은 밤이 되면 아마존이나 프낙(Fnac) 등을 살펴보면서 신간 등 동향을 파악하고요. 출판 잡지를 읽거나 인쇄 공부도 합니다.

프리랜서나 사업자 분들 공감하실 텐데요, 사실상 주7일 근무모드예요. 다행히 일하는 게 재밌어서 불만이 있지는 않지만요. 그리고 일정 관리가 중요한 만큼 제가 원하는 일정을 잡을 수도 있지요. 특별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셀프 연차를 쓰고 다음에 미룬 일을 처리할 수 있어서 좋아요.


혼자 출판사 운영하면서 먹고사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어려운 질문 죄송합니다. 

아직은 정말 힘들죠. 우리 모두가 유명한 작가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독립출판 신의 성장으로 콘텐츠 측면에서는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지만 시스템적인 측면에서는 기성출판의 것을 차용한 것에 불과해요. 기존 출판 생존 방식이 우리에게 맞지 않는 옷인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그간 몇 년간 플랫폼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어요. 텀블벅도 그렇고,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나 퍼블리셔스 테이블, 그림도시 같은 북페어. 독자들의 호응과 동네책방들의 노고까지요. 특히 동네책방은 정말 목숨을 걸고 진화를 거듭해왔어요. 처음에는 카페의 성격을 추가했고, 그다음으로는 여러 워크숍들을 만들었죠. 최근에는 출판사도 병행하여 서점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고 있죠. 스토리지북앤필름, 5Km, 이후북스 등이 대표적이에요.

창작자들도 동네책방처럼 계속해서 여러 시도와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답은 여러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창작자들 저마다 가지고 있는 경험 자산이 다르니까요. 누군가는 미국에서 공부했겠고, 누군가는 사진을 전공했겠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탈탈 털어서 자신에 맞게 유통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즉 텀블벅, 동네책방 유통, 북페어 참여, 워크숍 오픈의 단계를 서서히 밟으면서 독자적인 판매루트를 만들어야 해요.

창작에만 집중하고 홍보 및 판매에는 소홀한 창작자님들을 쉬이 볼 수 있는데, 생업이라면 창작만큼 중요한 게 홍보 및 판매라는 걸 강조하고 싶어요. 책이 완성되면 그제야 본 게임 시작입니다.

그래도 제일 중요한 것은 창작 활동을 하는 우리의 행복을 지키는 일인 거 같아요. 언젠가 제가 디자인 이음의 잡지 ⟪베어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큰 명성을 얻지도, 많은 돈을 벌지도 못할 거예요. 그렇다면 재미라도 있어야죠. 재미조차 없으면 그때 우리는 망한 겁니다.” 


다른 분들과 협업도 많이 하세요?

아직 협업은 거의 없어요. 번역은 저희의 번역팀 해바라기 프로젝트에서 도맡아 하고 있고, 편집과 디자인은 제가 담당해요. 디자인의 경우 잘 만들어진 원서를 바탕으로 한국어판으로 바꾸기 때문에 창작 역량이 많이 들어가는 부분은 아니에요. 작가 저작료에 번역료를 지불하고 나면 협업까지 진행할 여력이 없기도 하고요.

그런데 최근에는 운영적인 측면에서 협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공동으로 광고를 한다든지, 물류창고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형태로요. 몇 가지 실험적인 계획이 있는데 아주 재미있는 결과가 나타날 거 같아요.


평소 창작자분들과 많이 만나세요? 독립출판-소규모출판 신에 있는 분들은 어디 가야 만날 수 있나요?

1인 출판사나 창작자는 무조건 다른 창작자분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야 해요. 전문 영역과 비전문 영역을 모두 소화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작업 중에 실수와 아쉬움이 생기거든요, 동료 작가나 출판사와 계속해서 크로스 체크하면서 작품의 퀄리티를 끌어올려야 하죠. 그건 타인의 조언 정도가 아니라 절실한 인프라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마음이 맞는 창작자 및 패널들과 단톡방에서 의견을 주고받아요. 대부분 북페어에서 알게 된 분들이에요. 발이 넓은 쪽프레스나 이빈소연 작가님을 통해서도 소개를 많이 받았죠. 두 분 모두 성격이 유쾌하고 포용력이 넓어서 항상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언젠가 여유가 된다면 프랑스 파리의 ‘카페 드 플로르’ 같은 곳을 만들고 싶어요. 카페 드 플로르는 카뮈나 에디트 피아프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카페죠. 창작자들이 북적거리면서 새로운 작품 기획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고, 함께 제작 방법에 대해 논의를 하면 퍽 멋질 거 같지 않나요?


한 해 동안 몇 종 정도 출간하세요? 

굉장히 적어요. 보통 4종 미만? 사실 많이 내려고 한 적도 없었어요. 에디시옹 장물랭의 설계도를 짤 때 한 권 한 권에 정성을 다하는 출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이는 자연스레 판매에 좋은 신간을 많이 내는 전략보다는 구간에 집중하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매번 재쇄 때마다 표지와 종이, 디자인을 바꾸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아주 먼 훗날에도 저희 책은 100종 미만일 거예요.


스태프 채용하고 종수를 늘리는 등 규모를 키울 생각도 있으세요?

그럴 생각은 전혀 없어요. 에디시옹 장물랭은 언제까지나 작은 출판사로 남아있을 겁니다. 작은 형태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있거든요. 저는 저희 작가님들에게 되게 잘하고 싶고, 또 독자님들과도 내밀하게 소통하고 싶어요. 저희 텀블벅 리워드 수작업 포장도 모두들 재밌어하시는데 규모가 커지면 상업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어 불가능한 일이 되겠죠. 그래서 유명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동네 한 귀퉁이에 있는 조그만 호떡집 같은 출판사가 되고 싶어요. 재료를 준비하고 직접 구워 파는, 작고 소소한 형태 속에서 아주 기본적인 인간미에 충실한 출판사를 꿈꿉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아트북페어에도 자주 나가셨죠. 참가 계기와 그곳에서의 경험이 궁금합니다.  

저는 오직 중화권으로만 다녔어요. 캐리어에 책을 꾹꾹 눌러 담아 베이징 한 번, 상하이 두 번, 타이베이 한 번 갔다 왔죠. 분위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모두가 무사해진다면 올해도 중화권은 모두 참여하려고 합니다.

해외 아트북페어는 책방 오프투얼론이나 비플랫폼을 중심으로 꽤 오래전부터 국내의 많은 작가님들도 참여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이빈소연 작가님이 신간을 영문판으로 만들고 작품 설명도 세심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눈이 번쩍 뜨였다고 할까요?

독립출판의 등장 이후 많이 바뀐 것 중 하나가 유통입니다. 예전에 출판 콘텐츠는 국경에 의해 구분되었어요. 외국서적을 번역 및 유통하려면 반드시 저작권 에이전시가 중계해야 하고, 그 범위도 한 나라로 제한되었죠. 하지만 이제는 국내 출판사도 얼마든지 외국 작가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고, 한국에서만 출간 및 복간하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완전히 패러다임이 바뀐 거죠. 더 나아가 중국 서점들과 계약하고, 한국에서 중국 인쇄소에서 발주하여 제작, 중국 물류창고에서 배송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장기적으로 그런 인프라를 구축하고 싶어서 중화권을 열심히 다녀보는 중입니다.

사실 아시아에서의 자유로운 문화 유통은 유학 시절부터 관심 있던 주제입니다. 유럽의 ‘솅겐 협정’을 작게나마 구현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해외 아트북페어 참여하는 국내 작가님들이나, 반대로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나 퍼블리셔스 테이블, 그림도시 등에 참여하는 외국 작가님들을 참 고마운 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많이 다니셔서 그런지 판매에 능숙해 보이셨어요. 북페어에서 부스 운영을 잘하고 싶은 분들께 팁을 주신다면요? 

북페어는 정말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자리예요. 일단 마음을 비우셔야 해요. 페어에서 크게 성공해서 팔자를 고치겠다는 생각은 버리시고요.(웃음) 행사가 시작되었는데 사람들이 많지도 않고 작품에도 관심이 없다면, 그날은 그냥 신나게 노세요. 다른 작가님들이랑 인사하고, 얘기도 많이 나누고, 책 구경하고, 간식도 노나 먹으면서요.

반면에 찾아오신 분들이 많으면, 이거 정말 효과 좋은 방법인데, 무조건 일어서 계세요. 그리고 지나가시는 분들에게 준비해둔 구호를 외치세요. 제 경우에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이 있어요’예요. 1초 안에 아이덴티티를 보여드리는 행위이죠. 그런 다음에 부담을 주는 않는 한도 내에서 작품 설명을 차근차근하면 많은 분들이 좋아하세요.

북페어는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작품 소개하는 기회예요. 내가 즐거워서 스마일스마일하면 경제적 보상은 자연히 따라온답니다.



#벌써 열두 번째 텀블벅


텀블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되게 참담한 심정에서 시작했어요. 새 책을 찍어야 했는데 돈이 없었거든요. 어떡해야 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몇 번 들은 적 있는 텀블벅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 스토리텔링 쓰던 게 아직도 기억나요. 너무 떨려서 자판을 제대로 치지도 못했어요. 잠도 제대로 못 잤고, 심장이 너무 쿵쾅거려 ‘프로젝트 시작하기’ 버튼을 누를 수도 없었죠. 이런 현상은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창작자가 똑같이 겪는다는 거 아세요? 

어려운 건 그때가 마지막이 아니었어요. 항상 매번 신간을 준비할 때마다 큰 산이 가로막는 느낌이에요. 그때마다 텀블벅을 진행하고, 한 분 한 분 도움을 주는 후원자분들이 늘어날 때마다 ‘거의 다 됐으니까 쫌만 더 참고 올라가자’ 하면서 등을 떠밀어주시는 게 느껴져요. 얼마나 감사한지 상상도 못 하실 거예요. 


독립출판 강연을 하실 때 예비 창작자 분들께 텀블벅 얘기를 해주신다면서요? 소규모 출판에 텀블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작년 이맘때만 하더라도 누군가가 신간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텀블벅 하실 거예요?’라고 물어봤어요. 하지만 요즘엔 ‘텀블벅 언제 하시게요?’로 질문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선택이었는데, 요즘은 필수라고 할까요?

흔히 텀블벅 펀딩을 이야기할 때 최대의 장점이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저는 그만큼 홍보와 제작 규모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는 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만드는 것에 몰두해 있다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미리 가늠해보는 건 너무 중요하죠.

또한 지속가능성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저는 굉장히 큰 금액으로 성공한 창작자보다 적은 금액이라도 오랫동안 여러 번 성공하는 창작자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분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힘을 텀블벅의 후원자님들로부터 얻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제 워크숍을 듣는 작가님들에게도 텀블벅은 이번 한 작품이 아니라 앞으로의 열 작품을 후원받겠다는 심정으로 접근하라고 말씀드려요. 창작하기에 어렵고 힘든 세상이잖아요. 텀블벅은 제일 앞에서 방패막이 되어주는 아군이라 우리에겐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텀블벅을 처음 도전할 때나 반복해서 할 때, 펀딩 진행에 팁이 있다면요?

텀블벅 리워드를 통해 독특한 실험을 많이 했었어요. 후원자님들에게 행운의 편지도 보내봤고, 씨앗도 드렸죠. 잉크랑 카메라 필름도 드려봤고요. 그런데 그 많은 시도 중에서 가장 큰 효과가 있었게 뭔지 아세요? 그건 바로 택배 상자 앞에 ‘위대한 후원자 XXX님’이라고 적는 걸 가장 좋아하시더라고요. 제가 다른 리워드 준비하고 포장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하하. 

저는 텀블벅을 서점이나 북페어랑은 구분해요. 서점에서 구매해주시는 분들은 ‘독자님’이시고, 텀블벅은 ‘후원자님’입니다. 텀블벅의 후원자님들에게는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보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결과물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2~3만원 후원해주시는 건 그냥 구입하는 것보다 더 큰 가치를 전달받는 일이에요. 

이렇게 감사하다면 마음속으만 품고 있을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해야 합니다. 저는 나름 이걸 어느 정도 풀어왔기 때문에 매 프로젝트마다 고정적으로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있는 거 같아요.


오래 이용해온 창작자로서 텀블벅의 좋은 점이나 아쉬운 점을 편하게 들려주세요.  

창작자의 입장에서 긍정적인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 좋아요. 새로운 프로젝트 시작하기 전에는 다른 창작자님들의 작품과 리워드를 많이 검토하거든요. 자연스럽게 스토리텔링을 읽을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는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콘텐츠에는 담기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 있어요. 그걸 읽으면서 ‘아. 이분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이건 진짜 새롭고 좋다.’ 등을 느껴요. 충격적인 프로젝트를 보면 반성도 많이 하고요. 아주 좋은 프로젝트인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정말로 많이 안타까워한답니다. 이 모든 것 과정이 여러 창작자를 성장시키고 있다고 믿어요.


마지막으로, 장물랭의 계획은요?

독립출판계는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가는 거 같아요. 제가 출판사를 일궈온 4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닌데 벌써부터 세대 교체가 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어요. 하루가 다르게 좋은 창작자분들이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고 있고, 그 작품들이 분위기를 바꿔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어요. 정말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죠. 동시에 위기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20대 분들의 신선한 감각을 따라갈 수는 없으니까요. 가만히 있다가는 그냥 묻혀버리겠구나 생각합니다. 

저를 비롯한 이제 서서히 자리잡아가는 책방, 창작자들에게는 모두 두 가지 숙제가 부과되었다고 봐요. 하나는 우리가 해왔던 삽질들을 잘 정리하고 전달해서 새롭게 시작하는 분들의 좋은 결과가 탄생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스스로가 좀 더 성숙해진 예술 경지로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좋은 책들을 만들도록 노력할 거고, 특히 제작 분야에서는 여러 워크숍과 책을 출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앤카인드’라는 근사한 출판사와 임프린트 제휴를 맺었어요. 디자인과 애니메이션이 으뜸인 출판사인데, 그곳이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저의 인프라 공유와 모든 지원을 서슴치 않을 거예요. 

언제나 후원자, 창작자, 책방이 함께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책은 축제니까요!!!


에디터_ 주소은 | 이미지 제공_ 에디시옹 장물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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