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종양 1기
안녕하세요. 튜머입니다.
2026년이 밝았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원래 연말결산 겸, 2025년에 했던 문화생활 중 인상 깊었던 것들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출퇴근 및 연말의 음주와 숙취까지 겹치는 바람에 어물쩍 연도가 넘어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월 초의 이 짧은 휴가 (작년 29일 종무식을 마쳤고, 1월 5일 시무식을 합니다)가 끝나기 전에, ‘올해 최초로 한 것들’을 기록해 두자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거창하게 최초로 한 것들이라고 하였지만, 전부 무용한 것들 뿐입니다.
분야는 총 세 가지입니다. 음악, 영화, 전시.
그리고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 주를 이룰 예정입니다.
1. 최초로 들은 음악
저는 외출할 때 거의 항상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나가며,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해선 문외한에 가깝습니다.
제 귀는 변덕도 심해서, 출퇴근길에는 억지로 힘을 내보려고 아이돌 플레이리스트를 틀다가도, 또 어느 날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조차 시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오래된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락발라드를 듣고, 추억에 잠기고 싶은 날엔 투니버스 주제곡을 듣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장르를 꼽자면 재즈겠지만, 그마저도 비중은 20%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다 보니 ‘올해 처음으로 들은 음악’이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느냐 하면..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기억도 잘 안 나고요.
그래도 다행히 유튜브가 저 대신 기록을 남겨주고 있어서, 무엇을 들었는지는 뒤늦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직 새해가 된 지 채 사흘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스크롤을 조금만 내려도 금방 찾을 수 있었고요.
심지어 외출도 거의 안 했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 음악은 제가 직접 고른 것이 아닐 확률이 큽니다.
그냥 유튜브 알고리즘이 골라준 음악이었죠.
그런데도 나름 의미를 붙여보자면 유튜브가 새해를 맞아 ‘다시 태어나라’는 뜻으로 윤종신의 <환생>을 골라준 셈입니다.
제가 일부러 “새해니까 환생을 들어야지~” 하고 눌렀다면 너무 오그라들었을 텐데, 알고리즘이 대신해주니 또 고맙더라고요.
이 곡은 2001~2002년쯤 맥도날드 새우버거 광고 음악으로 쓰였습니다.
제 어린 시절의 거의 모든 기억을 2002 월드컵이 집어삼켜버려서, 이 CM송 때문에 환생을 기억한다.. 까지는 아니지만, 당시 제가 가장 좋아하던 버거가 새우버거였고, 집 근처의 롯데리아보다 맥도날드가 더 가까워서 자주 갔던 기억은 선명합니다.
물론 ‘자주’라고 해봐야 부모님이 가끔 사주신 정도였지만, 저에겐 그게 아주 큰 외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CM송은 부모님에게 영향을 주었고, 저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지금까지도 여러 버거 프랜차이즈 중 맥도날드를 유난히 좋아하게 된 걸지도 모릅니다.
사실 맥도날드가 가장 맛있기 때문입니다. 반박은 받지 않겠습니다.
물론 현재 새우버거 맛은 롯데리아가 더 낫습니다.
맥도날드에 대한 추억을 더 늘어놓고 싶지만, 간단히만 말하자면 저는 그 특유의 냄새와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감자튀김의 기름 냄새가 먼저 반겨주고, 바닥은 항상 끈적하면서도 미끄럽고, 어딘가엔 꼭 콜라가 쏟아져 있고, 바닥 틈에는 감자튀김이 끼어 있고, 테이블과 의자는 눈이 아플 정도로 붉고, 마스코트인 피에로는 괴상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브제들과 늘 시끌벅적한 그 느낌이 좋아서요.
지금은 매장이 너무 깔끔해지고, 매우 매우 불편한 키오스크까지 생겨버려 그런 분위기는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돌이켜보면 사실 <환생>보다 맥도날드의 3000원 CM송이 저희 세대엔 더 큰 영향을 끼쳤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이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뮤지크>를 골라줬다면 이런 감상은 절대 나오지 않았겠죠. 아마 유년기의 시절보다 12년의 의무교육 기간이 길기 때문 일 겁니다.
쓰다 보니 노래 얘기라기보다 맥도날드에 대한 글이 되어버렸는데.. 뭐 다들 환생 아시잖아요. 혹시 모르신다면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좋은 노래니까요.
2. 최초로 본 영화
음악은 유튜브가 점지해 준 것이라면, 영화는 제가 직접 골라서 본 첫 작품입니다. 작년 초에는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을 봤는데, 만약 2025년 연말정산을 했다면 그 해에 극장에서 본 영화 탑 5 중 1위로 뽑았을 것 같습니다. 몇 안 되는 친구들에게 추천해 줬는데 반응이 다 좋았고, 그 덕분에 그 영화에 영향을 준 <석류의 빛깔>까지 같이 보러 갔으니까요. 이 영화도 꽤나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저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제 글 썸네일도 영화 장면인 경우가 많고, 글의 영감 역시 영화에서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영잘알’이냐 하면.. 글쎄요. 영화 감상이 취미이긴 하지만, 언제나 최우선순위에 두는 건 아니고, 특별히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시간을 온전히 2시간 넘게 쓴다는 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큰 비용처럼 느껴져서요. 좋은 신호겠죠.
그래도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하면 극장에 가서 보려고 노력합니다. ‘탑 5’를 만들 수 있었다는 건 그 해에 최소한 다섯 편은 봤다는 뜻이니까요.
올해에는 극장에 딱 한 번 갔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1위를 소개합니다.
<비포 선라이즈>, <스쿨 오브 락>, <보이후드>의 감독으로 유명한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누벨바그>입니다. 이 영화는 장 뤽 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를 제작하는 과정을 다룬 전기 영화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예매한 이유는, 고다르의 열성팬이어서가 아닙니다. 그가 만든 수십 편의 영화 중 제가 본 건 그 작품 하나뿐이고, 솔직히 말하면 그마저도 기억이 흐릿합니다.
누벨바그가 작가주의를 촉진시키며 영화사에 큰 변화를 가져온 건 동의하지만, ‘그렇다면 그 시대의 작품을 꼭 다 봐야 하냐’라는 질문에는.. 시간이 무한하다면 그렇겠죠. 하지만 지금 제 취향을 더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작품들이 너무나 많고, 자연스럽게 우선순위는 뒤로 밀리기 마련입니다.
사실 저는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이 영화를 예매한 이유를 돌아보면 아마 그것 때문이었겠죠. 그냥 개봉작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을 것 같았고, “왜 재미있을 것 같았지?” 하고 생각해 보면, 그 답이 ‘영화에 대한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제가 재미있게 봤던 영화들 중 상당수가 이 범주에 속해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자면 정말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겠지만, 가장 공통점이 큰 작품부터 말해보자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파벨만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빌론>, <시네도키, 뉴욕>, <거미집> ,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놉> 등이 떠오르네요. 이런 장르의 영화들은 제 기준에서 거의 실패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비교하기 가장 좋은 작품은 역시 <파벨만스> 일 텐데, 두 작품 모두 거장의 전기 영화이자 ‘영화에 대한 영화’이고, 영화를 찍는다는 것에 대한 감독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영화 중 더 재미있는 작품을 고르라면 당연히 <파벨만스> 일 것입니다. 이러다 또 <파벨만스> 이야기만 하다 끝날 것 같으니, 정신을 차리고 다시 <누벨바그>로 돌아오겠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좋게 느낀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시대의 공기를 재현하기 위해 무명 배우를 캐스팅하고, 흑백 화면과 독특한 화면비를 활용한 점, 그리고 그 ‘때깔’ 덕분에 당대의 수많은 누벨바그 감독들과 영화들에 대한 헌사처럼 느껴졌다는 점입니다. 팬 서비스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동시에 장르적인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보면 재미가 없느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은 전기 영화이고 내용도 전혀 어렵지 않아서, 일종의 잘 만든 서프라이즈 단편처럼 즐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무 배경지식도 없이 돈과 시간을 들여 꼭 봐야 할 걸작이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요즘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워낙 많기도 하고, 영화가 에피소드 중심으로 흘러가다 보니 저도 중반부터는 다소 힘이 빠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제게 <누벨바그>는
“이 시대와 누벨바그 영화들에 흥미가 생겼을 때, 입문용으로 보기 좋은 영화”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명작이라고까지 부르기엔 조금 어려운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아마 제가 ‘영잘알’이 아니라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요. 만약 <파벨만스>와 <누벨바그> 둘 다 보지 않으셨다면, 고민 없이 <파벨만스>를 권해드립니다. 이건 걸작이에요. 결국 못 참았네요. 넘어가겠습니다.
3. 최초로 본 전시
12월 30일의 음주 활동이 31일을 통째로 날려버렸습니다. 송년회를 했는데, 각자 술을 한 병씩 가져오기로 했고, 와인·위스키·전통주·샴페인 등 다양한 주종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걸 전부 비웠죠. 심지어 그중 네다섯 가지를 섞어 만든 칵테일? 독주까지 마셨습니다. 괴상하게도 정말 맛있었습니다. 가장 지배적인 피트 위스키의 요오드와 소시지 향이 처음과 끝을 책임졌고, 로제 와인의 단맛과 산미가 전통주와 와인, 위스키의 쓴맛을 과해지지 않게 밸런스 있게 잡아주었다고 느꼈거든요. 그렇지만 그 여파로 저는 연말결산을 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하루 종일 숙취에 시달려야 했거든요.
12월 31일은 1년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지만, 제 생일이기도 합니다. 소중한 친구들이 선물을 보내줬는데, 제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이것뿐이었습니다.
참 부끄러운 일이죠.
아침 8시 30분인데 이러고 있으니…
아무튼 그 여파로 생일을 거의 통째로 날려버린 채,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때 주문한 샤인머스캣을 먹으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알도 크고 정말 달콤한데, 정작 저는 알맹이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네요. 아이러니합니다. 아무튼 개나 소나 하는 새해 다짐 중 하나인 ‘절주’를 올해 목표로 삼았고, 아직까지는 성공적입니다.
새해 첫날, 친구들과 아쿠아리움에 다녀왔는데 저녁 식사 후 술 한잔하자는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저를 빼고 술을 마신 친구들은 “오랜만에 마셔서 너무 즐거웠다”는 후기를 단톡방에 남겼습니다. 참 씁쓸하더군요.
올해 최초의 관람은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이었습니다. 카피바라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요.
휴일치고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운 좋게도 좋은 자리에서 카피바라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환상이 깨졌다는 점을 빼면 말이죠. 사진을 보충 설명하자면, 카피바라가 물에 방뇨한 뒤 그 물을 마시는 장면입니다. 만약 반대로 물을 마시고 방뇨를 했다면, ‘참 똑똑한 동물이구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았던 건 스쿠버다이버들이 한복을 입고 메인 수조에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퍼포먼스를 진행한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딱 맞아 우연히 좋은 구경을 했습니다.
접근성도 좋고, 해양 생물도 다양하고, 원통형 통로도 있고, 상어도 크고, 메인 수조도 커서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특히 펭귄 전시관에 있던 ‘펭귄 관계도’는 펭귄보다 더 흥미로웠습니다.
이 아쿠아리움의 특징 중 하나는, 동선 중간중간에 아이들을 유혹할 만한 요소가 정말 많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아쿠아리움은 입장–관람–출구 직전 굿즈샵 구조인데, 이곳은 해양생물 굿즈샵이 30m 간격으로 배치된 느낌이었습니다. 운영 구조를 생각하면 이해는 되지만, 만약 제가 부모가 되어 아이를 데리고 방문한다면 추가 지출이 상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카피바라 굿즈가 정말 많았는데, ‘혹시 이 친구를 데려온 이유가 굿즈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인형, 키링 등등… 요즘 대세 동물이긴 하니까요.
저는 예전부터 “전시하지 않는 생물의 굿즈는 팔지 말았으면 좋겠다”라는 이상한 고정관념이 있긴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흰 수염고래 굿즈는 어디에서도 못 팔겠지만요.
저는 아쿠아리움을 좋아합니다. 이렇게 나열해 보니 벌써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했네요. 아쿠아리움을 좋아해서 어딘가 여행을 가거든 그곳의 아쿠아리움을 꼭 들리는 편입니다. 지독할 수 있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곳 굿즈샵에서는 생선 절임을 팝니다. 산지 직송일까요? 다른 아쿠아리움 식품하면 떠오르는 건 구슬아이스크림 정도인데, 꽤나 노골적이죠. 사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건 ‘펭귄 산책’입니다. 가림막도 없이, 정말 바로 옆에서 펭귄이 걸어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저도 그걸 보러 갔다가 위의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만 수족관 자체는 꽤 낙후되어 있습니다. 규모도 작고, 생물도 다양하지 않고, 오타루 외곽에 있어 접근성도 떨어집니다. 1959년에 개장했다니 어느 정도 감안해야겠죠. ‘펭귄 산책’은 확실히 차별화 요소이지만, 정말 펭귄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저는 펭귄을 좋아해서 다녀왔습니다만, 삿포로 시내에 있는 AOAO라는 수족관을 더 추천드립니다. 전시 생물 수는 적지만 여기도 펭귄이 있고, 하나하나 신경 써서 잘 설계된 미술관을 관람하는 느낌이 듭니다.
새해가 밝고, 다들 계획을 세운 뒤라 그런지, 아마 오늘이 작심삼일의 마지막 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들 첫 단추들은 잘 꿰셨는지요.
매년 ‘바뀌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뇌가 굳어버려 변화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마치 헬로키티 껌처럼요. 처음에는 여타 껌과는 차원이 다른 부드러움을 자랑하다가도, 씹다 보면 어느새 딱딱해져 버리는 그 껌 말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그래서 저는 올해 계획을 조금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단점을 없애겠다는 목표 대신, 장점을 더 강화하는 쪽으로요. 물론 그러려면 먼저 장점을 찾아야겠지만요. 아직 제 뇌가 완전히 굳어버리지 않았다면, 이것이 오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 계획조차도 작심삼일로 끝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그래서 그냥 이 한 해가 무탈하게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래도 껌은 씹어봐야죠. 아직 이빨이 닿지 않아서 부드러운 곳이 있을지도 모르니 입 안에서 잘 굴려보세요. 저는 글을 쓰기 시작한지 3개월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굳기 시작한 느낌입니다. 열심히 혀로 찾아봐야죠. 여러분들은 자신만의 단물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