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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의 낙하에 대한 소고

악필은 나의 잘못이 아니며, 공간의 곡률 때문이다

by 박참치

#T-R-Λ01106-G


획의 낙하에 대한 소고

—펜촉의 궤도와 필체의 비유클리드 기하학적 해석


“악필은 나의 잘못이 아니며, 공간의 곡률 때문이다”


작성일: 20XX-11-06

저자: 박참치 (자의식 기반 관찰물리학 자체 전공)

적용 학제: 서사물리학 × 필기역학 × 무의식공학



초록(Abstract)


“참치야, 넌 글씨체가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 정지한 것 같아서… 이상하게 정겹다.” 프랑스자수(초등 동창 / 동 대학 의예과)는 늘 그런 식이다. 정교하고 반듯한 필체를 가진 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온화한 말투 속에 조용한 단죄를 품었다. 나는 더는 그들의 오만과 미적 독선을 감내할 수 없다. 내 필체의 궤적을 변호하기 위해 이 논문을 쓴다.


본 논문은 인간의 필기 행위를 기존의 언어학적, 심미적 범주가 아닌 물리학적 해석으로 전환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저자는 자신의 악필이 단순한 근육 제어 실패가 아니라, 전적으로 ‘글씨 내부에 존재하는 중력장’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글자의 선행획이 후행획에 미치는 질량적 영향을 설명함으로써 획의 뒤틀림과 붕괴가 예술이 아닌 물리의 문제임을 입증한다. 이는 필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기존 미적 판단 체계에 대한 전면적 반박이자, 인간 필기의 궤적을 천체물리학의 언어로 다시 기술하려는 시도다.



1. 서론 — 나는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궤도를 따라간다


나는 평생 악필이었다. 많은 이들이 나의 필체를 두고 ‘급해서’, ‘감정이 격해져서’, 혹은 ‘신경을 안 써서’ 글씨가 망가졌다고 말했지만, 나는 나의 손이 무언가로 ‘당겨지고 있다’는 느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 논문은 그 당김을 “글씨 자체의 중력”으로 규정하고, 펜촉의 움직임이 자율적이라기보다 ‘전 글자의 질량에 따른 궤도 운동’이라고 해석함으로써, 내 악필을 과학적으로 무죄 판결하고자 한다.



2. 질량을 가진 선(線) – 필체의 중력장 가설


가설: 글자의 획은 질량을 가진다. 즉, 종이 위에 존재하는 모든 선은 미세하지만 고유의 중력장을 형성한다.

선행획(α)이 공간에 남긴 질량적 흔적은, 후행획(β)의 진입 각도에 영향을 준다.

이 영향은 미세하지만 지속적이며, 특히 빠른 필기 속도에서는 누적 오차가 극단적 곡률로 변형된다.


→ 획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획은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3. 필기란 ‘낙하’이다 – 획과 궤적의 자유낙하 운동


펜촉의 움직임은 관념상 능동적이지만, 실제로는 이전 획에 의해 생성된 공간곡률(spatial curvature)에 의해 끌려가는 자유낙하 운동(free-fall motion)에 가깝다.


실험 A: 공중 필기 시 궤적 보존률

조건: 종이 없이, 손으로 공중에서 글씨를 쓰는 동작을 5회 반복

결과: 5회 평균 획 일치도 92.7% (추적앱 기반 궤적 중첩률)

해석: 외부 접촉 저항이 없을 때, 인지된 글씨 모양이 안정적으로 재현됨


실험 B: 종이 위 연속 필기 시 궤적 편향

조건: 같은 글자를 종이 위에 이어서 5회 반복 작성 (예: “참”)

결과: 후행 획 평균 궤적 왜곡각: 11.4°

결과: 필기 라인 이탈 거리: 평균 0.6cm (좌우 0.2cm 편향 포함)

해석: 선행 글자의 잔상/압력/방향성이 후속 움직임의 경로를 유도(誘導)하거나 굴절(屈折)시키는 경향


→ 이로써, 필기란 펜이 종이를 ‘긋는 것’이 아니라, 종이가 펜을 “당기는” 사건이며, 이는 의식적 서술 이전의 비의식적 조응 운동에 가깝다는 주장을 시사한다.



4. 중력항과 미학적 판단 기준의 붕괴


기존 필체 평가 기준(정자체, 균형감, 획의 정렬)은 유클리드 기하학적 평면을 전제한다. 하지만 실제 필기 상황에서 종이는 절대 평면이 아니며, 감정, 압력, 시간의 누적은 비유클리드적 곡률장을 형성한다.


→ 즉, 악필은 필기의 일반 상대성이론 하에서 전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내 글씨는 망가진 것이 아니라, 시공간 왜곡에 충실한 궤적이다.



5. 결론: 나는 추하게 쓴 것이 아니라, 나는 휘어져서 쓴 것이다


“나의 글씨는 추하지 않다. 나의 글씨는 궤도를 돌았다. 나는 단지, 내 손목의 뉴턴이었을 뿐이다.”


본 논문은 악필에 대한 미적, 교육적 편견에 물리학적으로 저항한다. 획은 곧 힘의 표현이며, 필체는 충돌과 낙하의 누적 궤적이다. 내 글씨는 나쁘지 않다. 내 글씨는 오직, 중력적이다.



참고문헌


Einstein, A. (1916). The Foundation of the General Theory of Relativity. Annalen der Physik.

Feynman, R. P. (1964). The Feynman Lectures on Physics. Addison-Wesley.

Newtum, I. (16XX). Principia Calligraphica: On the Motion of Inked Bodies. Royal Scribal Society.

Noiré, S. (19XX). The Physics of Ink and Memory. Black Drop Publications.

Rossell, B. (19XX). On the Curve of Meaning in Scripted Discourse. Camford Acad Press.

김상욱 (2018). 떨림과 울림. 동아시아.

박참치 (20XX). 내 손목의 뉴턴: 악필자들을 위한 상대성 물리학 입문. 자의식과잉출판사.





그러나 이 모든 이론은, 물리망나니(학부 동기)의 노트를 목격한 이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그 필체는 낙하도 아니고, 충돌도 아니며, 일종의 우주적 혼돈이었다.

나는 그것을 ‘활자의 엔트로피 붕괴’라고 명명했다.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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