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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니 Oct 29. 2023

비료를 너무 많이 주면 오히려 말라죽는다

과한 애정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을

초등학교 때 학교 과제로 1인당 화분 하나를 교실에 가져가서 키웠었다.


어렴풋한 기억 속 나의 첫 반려식물은 동네 꽃가게에서 데려온 스파티필름이었는데 나는 그 꽃을 꽤나 마음에 들어 했다.


독특한 하얀 꽃의 모양새가 예쁘기도 했고 내가 직접 무언가를 키운다는 점이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했기 때문이다.

스피티필럼


하루는 화분에 꽂아두는 노란 튜브형 액상 비료를 같은 반 친구가 건네주어서 화분에 꽂고 한참이나 지켜보다가 비료를 더 많이 먹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료의 뚜껑을 열고 화분에 쏟아부었는데 웬걸 그게 화근이 되었는지 며칠 뒤 식물이 말라죽어버렸다.


어린 나는 식물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고 왜 죽었는지는 알지 못한 채 비료를 한 번에 많이 주면 죽는구나 정도로만 이해할 수 있었다.




중학교 생물시간에 배운 화분이 말라죽은 원인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한 번에 많은 양의 비료를 뿌림으로 인해 뿌리보다 흙의 농도가 더 높아졌고 삼투압현상으로 인해 농도가 낮은 뿌리의 물이 농도가 높은 흙 쪽으로 빠져나가버린 것이다.

사진출처: 금성출판사 티칭백과


한 번 말라버린 뿌리는 재생하기 어렵기 때문에 식물 전체가 고사한 것이었다.


식물이 더 잘 자라고 예쁜 꽃을 피우길 바라서 했던 내 행동은 오히려 식물을 말라죽게 했다.




어쩌면 인간관계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과도한 애정은 독이 된다.


그리고 그 애정은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의 사랑표현이어야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만 애정을 휘두르는 것은 사랑이 아닌 폭력에 더 가깝다.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한 연예인의 신혼생활이 담긴 영상을 보게 되었다.


댓글을 보면 다들 남편을 이 시대의 청년상, 달콤한 신혼이라고 칭찬하지만 나는 그 영상을 보고 속이 답답했다.


영상의 시작은 아침에 아내를 깨우는 남편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아내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더 자고 싶어 하지만 이미 아내의 휴대폰에는 아내를 깨우기 위한 부재중 전화 6통이 찍혀있다.


그 이후는 건강식을 먹으라고 아침밥을 차려놓고 가는데 아내는 건강식에 들어있는 닭가슴살에서 비린내가 나서 먹기 싫다고 의사를 표현했었고 본인은 아침밥을 원래 안 먹는 스타일이니 차려주지 말라고 몇 번이고 말한 상황이다.


결국 아내는 건강식을 깨작깨작 먹다가 거의 다 남겼는데 이 모습을 본 남편은 왜 안 먹냐고 서운함을 표현한다.


남편은 아내를 정말 사랑한다. 남편은 내가 추구하는 건강하고 건전한 삶을 내가 사랑하는 너도 함께 했으면 좋겠는 거다. 이 마음에서 그러한 사랑표현이 우러나온 거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과 상대방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의 모습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내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태도는 오히려 관계를 망칠 수 있다.




같은 맥락의 예시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웹툰이 있다.


첫 에피소드는 조증에 걸린 환자에 대한 이야기다.


이 여자는 부잣집 딸에 엘리트 코스만 밟아와서 직업도 교사고 남편도 판사다. 그동안 부모의 뜻을 한 번도 거스른 적 없는 온순한 사람이다. 이런 완벽한 사람이 어쩌다 조증에 걸리게 됐을까? 조증에 걸린 이 환자는 술에 취해 1,000만원을 한 번에 카드로 긁는가 하면,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춤을 추기도 한다.


환자의 엄마는 딸을 너무도 사랑한다. 매일매일 면회를 와서 음식을 주고 가기도 하며 농원에서 직접 따온 유기농 최고급 포도를 들고와서 딸에게 한 알이라도 먹이려고 한다.

출처: 네이버 웹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2화


출처: 네이버 웹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2화'
출처: 네이버 웹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2화


딸은 어렸을 때 포도가 목에 한 번 걸리고 나서 포도를 싫어하게 된다.

그럼에도 엄마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 딸에게 포도를 계속해서 갖다 준다.


또 딸이 결혼을 할 때 외제차 대를 사줬는데 문제는 이 여자는 운전을 무서워하고 앞으로 배울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엄마의 욕심으로 딸에게 선물을 한 것이다.


엄마는 딸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원하는 사랑표현을 내 마음대로 휘두른 뒤 받아들이지 않는 딸을 보며 의아해하는 것이다.


딸은 결국 정신병이 오고 말았다.


사랑하는 마음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행복하게 하는 방식의 표현을 선택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관찰이 빠진 사랑은 나 혼자만의 사랑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관찰하다 보면 잘못된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들도 만난다.

잘못된 사랑은 두 가지 케이스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과도한 통제이다. 이런 아이들은 부모의 지나친 관심과 통제 속에 숨통이 조여 숨을 허덕인다.


두 번째는 과도한 허용이다. 아이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엄청난 애정을 쏟고 키우지만 이러한 아이들은 제멋대로가 되어 규칙을 지키는 능력이 매우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학부모님들의 행동은 다 자녀를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은 아이를 위한 비료를 주는 것처럼 여겨지겠지만

앞서 말했듯 비료가 너무 과하면 오히려 식물이 말라죽게 된다.


뜨겁지 않고 따뜻하게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하자.

그리고 사랑표현의 시작은 관찰에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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