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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굽쇠 Feb 03. 2023

나이 드는 것이 안타까운가

나의 20대 중반에 대한 졸업논문

1.


   내가 10대였을 때만 하더라도 주변에서는 한 살을 더 먹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이만큼 더 자랐다’, ‘내가 이만큼 더 성장했다’, ‘이제 어른도 얼마 안 남았다’, 이런 얘기가 해를 넘길 때 친구들 사이에서 도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앞자리 수가 겨우 하나 올라갔을 뿐인데, 주변에서 해가 지나갈 때마다 들리는 말은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한 살 더 늙었다’, ‘이제 우리는 예전 같지 않다’, ‘벌써 노인네가 됐다’, ‘몇 살 어린 저 친구들은 얼마나 파릇파릇한가’, 그런 자조적인 혼잣말들이 내 주위를 메우기 시작했다.


   전역 이후 올해 초부터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게 - 주로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에게서 - ‘벌써 20대 중반이네’, ‘늙었구나’, ‘화석이네’ 같은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리고 해가 저물어가는 요즘은 ‘내년이면 반오십이네’, ‘한살 더 늙겠구나’, ‘아저씨’ 같은 말을 듣고 있다.



2.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와 동갑이거나 나보다 한두 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건 상대적으로 덜 신경쓰인다. 같은 시간을 살고 있거나 먼저 살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소회를 담아 얘기하는 거라면 뭔들 얘기 못하겠는가. 그런데 나보다 몇 살 아래인 사람, 심지어 10대 후반에게서까지 ‘늙었다’는 말을 들을 때는 불쑥불쑥 불쾌함이 느껴진다.


   나를 늙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그 또한 그들이 느끼기에 상대적인 감상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나도 10대 때, 고등학생이었을 적만 하더라도 20대 중반의 선생님을 보며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생각했으니까(지금은 그때 느꼈던 것만큼 차이를 느끼지는 않는다). 내가 불쾌함을 느끼는 포인트는 나에게 늙었다느니 화석이라느니 말하는 사람들의 말 속에 담긴 뉘앙스에서 ‘나이가 드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20대 중반이면 충분히 늙은 것이다’라는 전제를 깔고 나를 ‘안타까운’ 혹은 ‘불쌍한’ 사람으로 여기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마치 자기들은 평생 그 나이로 살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사족을 달자면 남자 동생들이 군대로 형들 놀리는 것만큼 한심한 일이 없다. 면제가 아닌 이상에야 모두의 미래인데…….)


   물론 나이가 드는 것이 슬플 수도 있다. 특히나 40대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신체 기능이 급속도로 저하되기 시작된다고 한다. 체력부터 시작해서 여러 기능들이. 그렇게 된다면 나도 슬플 것이다. 마음은 예전처럼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참 안타까울테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 그 나이가 아니고 20대 중반이라는 나이도 요즘같은 장수시대에 상대적으로 따져보면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에서 한 살 더 먹는 것을 두고 잔뜩 호들갑을 떨며 그런 잔망스러움에 나를 끌어들이고자 부추기는 주변 사람들이나 SNS의 풍조를 보고 있으면 대체 왜 그래야하나 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혀 이해가 안 간다. 나이 먹는 게 재앙인가? 뭐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는 누군가의 말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내가 볼 때 그 사람들의 유난을 떠는 이유는 그런 심오한 통찰 속에서 비롯한 건 아닌 것 같다.



3.


   나는 내가 한 살 더 먹는 것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다. 갓 성인이 된 후에는 ‘20살이 내 나이’라는 생각을 미처 다 소화하기도 전에 21살이 되어버렸고, 22살의 시작은 입대였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22살과 23살의 기억은 그저 군대 2년으로 등치되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흘러다니다가 이제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에게는 24살이라는 어떠한 셈법에 의한 결과가 주어져있었다- 이게 지금 내 나이에 대한 나의 솔직한 감상이다. 그냥 나는 24살일 뿐, 그게 늙었다든지 아직 젊다든지 좋다든지 나쁘다든지 하는 가치 판단이 들어가있지 않는, 그저 정보의 하나일 뿐이다. 간혹 후배들이나 종종 접하는 고등학교 학생들 앞에서는 내 스스로 늙었다느니 어떻다느니 농담 삼아 얘기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 생각을 품고 살지는 않는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24살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있는 시간이 훨씬 길 정도로 나는 내 나이에 별로 관심이 없다. 간혹 학교에서 마주치는 후배들이 나에게 ‘선배’ 혹은 ‘형’, ‘오빠’라고 부를 때쯤에야 겨우 ‘아, 내가 이 사람들보다 나이가 많은가보구나’ 하는 자각이 드는 정도다. 


   내가 이렇게 나이에 둔감해진 이유는 비단 사람들의 액면가로 나이를 추정할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다. 나이와 내적 수준이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군대에서 가장 깊이 체험한 사실 중 하나였다. 군대라는 사회는 나이보다 계급이 우선시되었다. 모든 것이 계급이라는 유일한 기준으로 서열화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계급이 같거나 기수가 비슷하다면 그 외의 모든 요소를 초월할 수 있다는 점이기도 했다. 나는 후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할 수 있었다. 나이가 몇 살이든 상관없었다. 고향이나 학력이나 집안 형편이나 그런 외부적인 요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의미 없는 세계 속에서는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그 단 한 가지 사실이 중요했다. 그 전까지는 몇 살이라면 어떤 모습을 갖겠거니 하는 불투명한 생각을 해왔다면 군대에서 2년간 사람 자체를 들여다보는 버릇을 들이다보니 그런 생각이 불투명했다는 사실도 깨달았고, 나이로 사람에 대한 선입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에 대해서도 느끼게 되었다.


   전역을 한 후에도 그 당시에 사람을 보던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다양한 사람을 보다보면 나보다 생물학적인 나이는 어려도 참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물학적인 나이는 많아도 차라리 내가 한두 마디 잔소리로 가르쳐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보통 전자는 사람들에게 ‘어른스럽다’고 불렸고 후자는 ‘나잇값을 못한다’고 불렸다.



4.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나이 그 자체보다는 내가 그 ‘나잇값’을 할 수 있느냐의 여부였다. 그래서 내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사실은 나에게 있어서 매달 방 한쪽 벽에 걸려있는 달력 한 장을 찢는 것만큼이나 잊어버리기 쉽고 무감각한 일이었다. 다만 나는 나잇값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이 나이를 먹고 아직도 이렇게 미성숙한 모습을 보이다니’, 이것이 요즘의 내가 내 삶을 평하는 기준이었다. 물론 나잇값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떠한 나이에는 그 나이에 해당하는 기대치가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단어이기에 누군가 나에게 ‘나이와 내적 수준은 일치하지 않는다면서 넌 왜 그런 기준을 세우냐’고 지적하거나 ‘그 나이에 해당하는 나잇값은 뭔데?’라고 묻는다면 아직 딱히 할 말은 없다. 그건 그저 내 멋대로 적당히 생각한, 지극히 주관적이면서도 일정부분 사회적인 하나의 기준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말할 수 있다. 어제보다는 나은 내가, 과거보다는 나은 내가 되고 싶고, 그 발전의 정도 또는 발전해서 올라간 수준이 남들과 비교했을 때에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내 안에서 내 삶만을 통시적으로 바라봤을 때 ‘상대적인’ 발전을 이룬다면 적어도 내 스스로는 부끄럽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남들이 보기에는 대단한 발전이 아닐 수 있다. 그게 뭐가 발전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내 인생의 발전으로 여길 수 있다는 점은 그만큼 그것이 내 인생에 중요하다는 의미일 테니까, 굳이 그렇게 남들의 시선에 얽매이지는 않기로 했다.



5.


   나는 나이가 드는 것이 슬프지 않다. 그러나 그 나이를 먹고서도 누군가에게 ‘저 나이 먹고 왜 저런데’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정말 슬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아직도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겠는 ‘나잇값’을 하기 위해 조금씩 고민하고 조금씩 실수하며 하루하루를 ‘먹어가고’ 있다. 먹은 시간이 섬유질 마냥 소화되지 않은 채 어딘가로 다시 흘러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 인격과 내적 수준의 피가 되고 살이 되게끔 그 영양분을 조금이나마 붙잡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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