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는 참 본받을만한 분이시다.
누군가의 딸들에게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종종 들으며 사셨으니 말이다. 정말 열심히 사셨고 늘 공부하는 자세와 리더십을 겸하신 분. 분명 나와는 여러모로 다른 분이다. 나는 이상적인 엄마의 이상한 딸이다.
그런 엄마와 궁합이 맞는 건 첫째 남동생이다.
2남 1녀 중 중간이자 장남인 동생은 눈치가 빠르면서도 의젓하다. (생각해 보니 엄마도 둘째다.) 어른들 말씀을 귀담아들으면서도 필요할 땐 자기 의사를 확실히 한다. 엄마 말을 듣고 네, 네 하지만 결국 본인이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낸다. 그 동생은 지금 외국에 살고 있다. 엄마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자식은 정작 저 멀리 타향살이를 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참 안타깝다.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까칠하고 불편한 딸에게 기대야 하는 현실이 말이다. 나는 개인주의적이며 내 영역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엄마에게 자식은 또 다른 나이고 반드시 좋은 길로 이끌어야 할 대상이자 숙제이다.
"집 넓혀 가야지, 부동산 좀 돌아봐라."
"지금 갖고 있는 돈 있니? 없으면 대출받아서 이 주식 좀 사라."
"똑같이 말해줘도 듣는 놈이 있고 안 듣는 놈이 있더라. 지인은 내 말 듣고 집 사서 내가 이런 인생을 살게 될 지 몰랐다며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모른다."
그렇게 내가 싫은 내색을 해도 본인 해야 할 말은 꼭 하셔야 하는 분이기에 감정의 균열을 피할 수 없다. 나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말을 들어먹질 않는 자식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니 아빠랑 똑같아"라는 말만 빠졌을 뿐...
나는 부동산에도 주식에도 관심이 없다. 지금 살고 있는 24평형의 집이 내게 꼭 맞는 옷이다. 사실 이 집도 어머니가 밀어붙여 산 집이고 감사하게도 집값이 많이 올랐다. 10년 전 우리에게 이 집은 소화 가능한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30평대로 옮기려면 3억 가량 대출을 받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매해 무섭게 늘어나는데, 매달 이자만 60만 원씩 갚아나가는 일은 내 성격과도 우리 형편과도 맞지 않는다.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아이들이 커 가며 집이 비좁게 느껴질 때도 있다. 게다가 코로나로 아이들 온라인 수업이 주가 된 요즘 답답한 마음에 집 앞 부동산을 한 번씩 들르기도 한다.
"어제 전화받았어. 엄마가 가보라 해서 온 거야?"
몇 주 전 부동산에 들렀더니 사장님께서 말씀하신다. 요즘도 자주 전화하신다고.
내가 잘 살았으면 하는 그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잘 사는 기준과 엄마가 잘 사는 기준은 엄연히 다르다. 나는 나이지 그녀의 미니미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차 없이도 가족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엄마와 단둘이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랄 거 없이 발 벗고 나선다. 보통 남자 형제들과 데면데면한 딸들과 달리 나는 남동생들과 참 우애가 좋다. 남들 보기엔 이렇게 돈독한 가정이 없다.
엄마가 이모들과 식사를 하실 때면 불려? 나가 커피를 사 드리곤 했다. 이모들에게까지 잘 하는 딸. 그런 딸을 가진 엄마를 부러워하셨다. 올해 어머니께서 다리를 다치셔 수술 후 긴 병원 생활을 하셔야 했다. 병원 원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따로 사례를 하고 바람 쐬 드리러 제주도에 다녀오기도 했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예의 바른, 경우 바른 딸로 컸다. 아니, 키워졌다.
이렇게 애쓰면서 나는 왜 엄마에겐 본전도 못 찾나. 왜 예쁨을 못 받나. 늘 한 발 앞서가는 엄마와 그 길로 가고 싶지 않은 딸. 왜 이 길로 오지 않느냐, 너를 위해 이만큼 애쓰는데 왜 고마워하지 않느냐 애끓는 엄마. 하지만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고, 내가 상처 받은 것들에 대해서는 왜 사과하지 않느냐 울부짖는 딸. 노쇠하신 어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길은 그저 내가 그녀에게 모든 걸 맞추는 수밖에 없는가.
Photo by Leon Biss on Unspl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