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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야 Sep 14. 2021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남동생, 그리고 나의 이야기


"엄마, 도시락 하나 더 싸 주실 수 있으세요?"


어느 날, 하교한 남동생이 어머니께 물었다.

같은 반 친구가 점심시간마다 밥을 안 먹고 교실 밖으로 나가더란다. 아이가 향한 곳은 운동장 수돗가. 친구는 도시락 대신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그날 남동생은 집에 와 엄마에게 친구 도시락을 부탁했다.

당시 우리 집 형편 역시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퇴직금으로 비디오 가게, 부동산 등을 차리셨지만 줄줄이 망했다. 집에는 매일 술, 담배, 폭력이 난무했다. 어머니는 가장, 가정주부에 아이들 공부지도까지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해내다 과로로 실신하기도 했다. 그 해 어머니는 아침마다 3개의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고등학생인 딸의 도시락 2개, 중학생인 아들의 도시락 1개. 이후 아들 친구의 도시락까지 어머니는 1년여간 매일 4개의 도시락을 싸셨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나눔과 봉사, 리더십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다. 지금도 당장의 끼니를 걱정하고, 생리대 살 돈이 없어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다. 주변을 돌아볼 줄 알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으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남동생은 종종 나보다 훨씬 어른 같다. 동생은 참 좋은 놈이다.



"엄마 힘든데 어떻게 이런 걸 부탁해." 나였다면 입이 안 떨어졌을 것이다. 그 친구를 애써 모른 체 했을는지도 모른다. 남동생이 어머니 힘든 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 어머니께 도시락을 부탁하는 건 어찌 보면 큰 용기였을 것이다. 그렇잖아도 힘든 엄마에게 친구의 도시락까지 부탁한 녀석. 동생은 참 나쁜 놈이다.



돌아보니 가슴이 아린다. 그 친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부디 잘 살고 있길 바란다. 우리 어린 시절엔 한 반에 50명 넘는 학생이 함께 생활했다. 그러나 점심시간마다 없어지는 조용한 친구를 눈여겨보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남동생은 분명 보통의 아이들과 달랐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동생은 참 이상한 놈이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외삼촌 이야기를 해 주어야겠다.

아들 주변에 좋은 롤모델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복이다.

동생은 참 멋진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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