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과 재스민

by GIMIN

우산에 있는 빗물을 털며 가게에 들어서니 안경에 김이 꼈다. 대충 보니 왼편에는 계단대가 있고 오른쪽에는 카운터 석이 있었다. 안경수건으로 안경을 닦으며 나는 계산대를 지키던 종업원에게 인원수를 알렸다. 다행히 대기하는 사람이 우리 말고는 없었다.


천장 쪽에서 뜨거운 열기와 더불어 기름 냄새가 퍼져왔을 때, 가게 안을 살피던 호기심은 어느새 쏙 들어가고 잠자던 허기가 두 눈을 부릅떴다. 굶주리진 않았지만, 기내식이 워낙 차가운 거여서 따듯한 식사를 하고 싶었다. 계산대 앞에 놓인 대기석에 앉은 나는 허기의 등을 고양이 쓰다 담듯 하면서 가게 안을 살폈다.


카운터석에는 두세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모두 맥주잔을 곁에 두고 있었다. 맥주잔에 있는 거품이 반쯤 꺼져있었다. 튀김 소리 때문인지 그 사람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그들 너머로 요리모를 쓴 사람들이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 사람들 곁에서 김이 일었다. 주방 안은 흰색 타일로 뒤덮여있었는데, 카운터석을 이루는 조명이나, 나무가 어두운 탓이었는지, 아니면 날씨가 흐린 탓이었는지, 주방 안이 외려 카운터 보다 밝게 보였다.


잠시 앉아 있으라고 해서 앉아 있는지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검은 치마와 하얀 블라우스 차림으로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나온다. 종업원은 테이블 석에 가서 드시겠냐고 내게 넌지시 말했다. 나는 됐다고만 이야기했다. 그러자 종업원이 등을 돌렸고, 나는 종업원의 등을 보며 따라갔다. 짧은 복도를 지나, 왼쪽으로 도니 자그마한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왔다. 방은 왼쪽에 카운터석 쪽으로 난 격자무늬 유리창이 나있었다. 4인용 테이블이 여섯 개 있는 방이었다. 한쪽 구석에서 몇 명의 일행이 식사와 반주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유리창이 왼쪽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하얀 불빛 너머로 접시 위에 수도 없이 엇갈린 채 올려진 새우튀김이 보였다. 흰머리를 곱게 빗은, 금테 안경을 낀 할아버지가 우리 쪽에서 등을 진 채 플레이팅을 하고 계셨다. 요리사라기보다는 약을 조제하는 약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릇은 저마다 먹는 용도가 따로 있었다. 내가 테이블 배치도가 적혀있는 글을 읽기도 전에, 엄마가 개인 접시에 간장을 따랐다. 나는 그제야 그것보다 작은 종지가 간장 담는 곳임을, 거기에는 소금만 덜어내서 찍어먹는다는 것을 눈치챘다.


같이 나온 소금은 대나무 수저로 덜어 놓을 수 있었는데, 생긴 게 큰 귀이개 같았다. 와사비 소금은 마치 시금치 가루 같았다.


나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튀김을 한 입 물었다. 튀김옷이 아직 뜨거웠다. 이내 이와 잇몸을 타고 뜨거운 열기가 입 안 가득 퍼졌다. 잠시 잇자국만 남기다고 튀김을 입에서 뱉었다. 소금이 떨어질세라, 입김을 조심해서 후후 불었다.


다시 튀김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소금의 짠맛이 밀려왔다. 어느새 생선살을 한 움큼 씹었다. 생선살은 마치 잘 데운 연두부 같아서, 그대로 흐물흐물 녹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산뜻한 기름맛과 식감이 이것이 생선살임을 실감케 했다.


몇 번 씹다가 이내 사라졌다. 먹고 난 뒤가 문득 적막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연근을 워낙 좋아하던 터라 연근 튀김을 집어 들었을 때 젓가락이 검지와 엄지 사이로 누르던 압력도 기억난다. 꽤나 묵직했다. 처음 한 입은 소금에 그다음에는 간장에 찍어 먹었다.


겉은 가볍게 바삭하고 속은 녹는 튀김의 식감. 우리네 빈대떡에서 느껴지는 그런 식감과 비슷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거기에 재료의 식감을 더 한 느낌이다.


국은 미역과 재첩이 들어간 된장국이었다. 입안이 기름지다고 느낄 때마다 차처럼 한 모금 마셨다. 가벼운 비린내를 잡은 된장에 입안을 개운해졌다.


찻잔 근처에서 꽃 냄새가 났다. 자세히 맡으려고 찻잔에 가까이 얼굴을 댔다. 재스민 향이었다. 백열등 밑에서 있는 찻잔 안에서 재스민 꽃잎이 펴지는 걸 지켜보는 일도 좋겠다 싶었다. 아쉽게도 잔이나 주전자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찻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된장국이 된장의 고소함을 기름기로 대신하는 격이라면, 재스민 차는 단순히 기름기를 녹이는데서 그치지 않고 목구멍을 통해 내려가면서 향기를 남겼다. 비강까지 타고 올라온 향기가 머리 전체에 산뜻한 향을 부여하는 듯싶었다. 진한 향기가 어쩐지 머리 전체에서 몸 전체로 도는 것 같았다. 피가 돌고 있다는 감각이, 향기의 순환과 더불어 몸에 스미는 것 같았다.


짠맛과 더불어 살짝 코가 시큰하다. 와사비를 넣은 소금이 위력을 발휘했다. 소금으로 찍어먹을 때, 튀김의 맛은 순전히 튀김옷과 재료만의 세계로 굳건히 이뤄지는 듯했다. 와사비가 여기에 새로운 맛을 부여했다. 방의 벽을 보다가 고개 올려 천장을 깨달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튀김을 다 먹었다. 밥을 먹었다는 느낌은 밥이 담긴 밥그릇에 사라진 밥과 더불어 입 근처에서 실종되었다.




나는 우리 테이블을 담당하는 종업원을 불렀다. 실례를 무릅쓰고 지금 나온 게 전부냐고 물어봤다.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을 때, 괜할 걸 물었다는 미안함과 튀김의 식감만이 머리에 계속 맴돌았다. 과거는 어느 순간에 그렇게 뒷골목으로 사라지고, 이제 남은 것은 그 공간과 가벼운 기름 냄새만 남았다. 젓가락으로 재첩 껍데기를 몇 번 건드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 문을 나설 때 어쩐지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가볍고 훈훈한 기름냄새가 비강을 타고 올라왔다. 배가 부르기 때문에 이제는 각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냄새였지만 어쩐지 맡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내가 마신 재스민 차의 향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 츠나하치[つな八]를 갔지만, 그날 만끽한 감각은 찾지 못했다. 그날 찍은 사진이라고는 흔들리는 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같은 가게를 가고 같은 음식을 주문했지만, 그날의 기름 냄새는 가볍지 않았고, 그날의 날씨는 화창했다. 허기 또한 충분히 견딜만했다. 심지어 자리는 주방이 바로 보이는 카운터 석에 앉았다.


지나치게 편했던 나는 결국 지나치게 빨리 먹고 나왔다. 사진조차 안 남길 정도로.(202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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