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안에서

by GIMIN

비행기가 이륙할 때면 괜스레 좌석 팔걸이 앞부분을 손으로 잡는다. 플라스틱 재질 특유의 매끈함도 이럴 때는 좀 긴장된다. 갑자기 몸이 붕 뜨는 느낌은 쉽게 익숙할 성질의 감각이 아닌가 보다. 많이 줄인 엔진 소음이 비행기 안을 흔들 때, 앞발을 들고 있지 않은데 앞발을 들어 올리는 느낌은 생각보다 가볍지만, 의자 안에 있던 엉덩이가 무게를 찾아주었을 때, 나는 내 몸을 온전히 비행기에 둬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위로 급격하게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짧고 굵은 부유감과도 다르다. 처음에는 잘 안 느껴지지만, 사선으로 보이는 지평선이나, 작아지는 건물과 같은 창 밖의 풍경들이나, 기울어진 그림자 같은 주변 정보로 파악할 수 있는 부유감.


올라가서 구름 사이를 통과할 때면 흔들릴 수도 있고 안 흔들릴 수도 있다. 비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 나는 비구름을 저미는 날개를 바라보면서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문득 조종사는 어떤 시야를 보고 있을지 궁금했으나, 안전벨트에 묶인 내가 볼 수 있도록 허락된 창은 언제나 한쪽으로 고개를 돌려야 온전히 볼 수 있는 창이었다. 때로는 그게 숨구멍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구름을 헤치고 나와 푸른 하늘 위로 올라갈 때, 무거운 몸의 무게중심이 흔들리는 신체적 불안과, 난기류 사이를 통과하면서 느낄 심리적 불안이 한꺼번에 씻겨나간다. 비구름이 이는 날이면 그 차이가 훨씬 잘 드러난다. 세상이 비를 맞지만, 지금 이곳의 하늘은 그저 비구름보다 높은 구름과 햇빛 가득한 하늘만 있었다. 대지의 무게와 맥락을 잊은 하늘은 정말 아름다웠다.


자글자글한 윤슬이 깃든 바다를 볼 때면 내가 정말 한국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실제로 비행기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며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지상 위를 날아다니지만, 창 밖에 보이는 풍경은 느릿느릿 지나가는 듯하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은 그저 유유히 지나갈 뿐이라는 듯이 지나가는 듯하다.


다 먹은 기내식을 치우고 음료수를 한 잔 받을 즈음돼서 다시 창 밖을 내다본다. 날개에 묻은 구름 몇 점이 절로 스쳐 지나갔다. 태양은 우리 곁에서 움직이는 듯이 있었고, 똑같은 풍경에 방향마저 잃은 듯한 나는 내 앞에 있는 모니터를 바라본다. 우리는 지금 여기 왔다고 표시한 지도를 보면서 내가 여기 와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나는 그곳이 아니라 그곳 위에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지각할 수 있는 감각은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뿐이었다.


지상으로 내려가는 순간의 충돌과 난기류에 의해 순식간에 주저앉는 듯 한 착륙이 진행되면 이 느낌은 곧 사라질 것이다. 실제로는 비행기의 착륙기어를 엄청나게 섬세하게 조정하여 이뤄진 부드러운 착륙인 데도 이 착륙이 거친 착륙으로 느껴지는 건 비행기 안에 부유하던 몸이 갑자기 추락하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더 그럴 수도 있다. 더 날고 싶은데, 더 날 수 없는 느낌. 12시간을 비행기 안에 있는 일은 차라리 탈출을 꿈꾸지만, 서너 시간 나는 일은 차라리 더 날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돌이켜보면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홍콩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작은 섬을 보았다. 실버라인을 친 구름 사이로 햇살이 한 두 가닥 섬에 비치는 모습을 나는 사진으로 찍어뒀다. 푸르게 젖은 섬의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그 부유의 순간을 흐뭇하게 떠올리는 것이다.(202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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