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아침. 공항 리무진 버스에 앉아서 노래를 듣는다. 뭘 들을까. 볼빨간사춘기의「여행」이나, 거북이의「비행기」를 듣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예능 프로그램에 많이 나오는 노래긴 하지만, 그래도 들을 때마다 설레긴 한다. 훈련받은 것이든 개인적인 감흥이든 결국 취향이 이기기 마련이란 걸 아는 나는 종종 그걸 듣는다.
새벽에 나가는 날도 있었다. 편의점과 가로등만 제외하고는 몇몇 집의 불만 켜져 있을 때, 캐리어를 끌고 아스팔트 도로를 지나갈 때 손잡이를 통해 느끼는 촉감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지금 잠을 설친 피곤만 여행지에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있겠지. 리무진버스가 고속도로로 집을 때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리듬 기타와 나긋나긋한 목소리. ‘이제 성공할 거’라고 말하는 가사. 조동익이 만들고 부른「탈출」이다. 들뜬 마음은 올리되 조바심을 내지 말라는 그이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고속도로를 바로 보는 두 눈을 시원하게 했다.
아직 밤이 물러가지 않을 시간에 나올 때도 있었다. 나는 마침 글을 쓰기 위해 하나의 앨범 음원을 사서 핸드폰에 집어넣은 상태였고, 첫 곡을 들으면서 가기로 했다. 나는 분명 첫곡을 들었고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곡의 첫 음이 들리는 순간, 내 감정은 삽시간에 물이 되어 이곳저곳으로 흘렀다. 음계로 말할 수 없는 사운드가 귓가에 퍼질 때마다 내 안에 숨겨진 열이 봄날 햇살을 타고 발아하는 것 같았다. 유치하게 표현했지만,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잠시 울었다. 장필순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판’을 외칠 때 나는 또다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살면서 음악을 들으며 눈물 흘리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있는 일이어서 부정하고 싶어도 음악은 계속 이어졌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아스팔트 도로를 간신히 밝혔다. 멀리 동이 트고 있었다. 세상 모든 건물의 윤곽선이 천천히 하늘과 분리되었다. 콧물이 날 정도로 울음이 나지 않은 게 다행이었지만, 펑펑 울 때보다 더한 감정의 파문이 온통 마음을 흔들었다.「아침을 맞으러」는 그렇게 내게 왔다.
다시 돌고 돌아 눈 오는 아침,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고 처음 떠나는 여행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듣고 싶은지를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코로나 이전에 갔던 여행이 죄다 전설 속의 일처럼 느껴졌다. 마치 쥐가 난 다리처럼, 여행이라는 이름의 기억은 내 곁을 떠나 낯선 오브제가 된 지 오래였다. 피가 돌 듯이 다시 여행의 감각을 되찾긴 했지만, 어쩐지 낯설고 쑥스러웠다. 지금 있는 모습들은 다 그대로 있을까. 비행기가 떠오르는 감각을 느끼면서도 나는 그 낯섦을 완전히 풀지는 못했다. (분명 설렘과는 다른 감정이었던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무섭지 않았다. 나는 이미 노래를 들은 뒤였다. 드럼과 기타와 키보드와 베이스가 떠나는 사람의 설렘과 낯섦, 그리고 두려움과 격려를 동시에 안겨줬기 때문이었다. 곡의 끝에 울려 퍼지는 정순용의 흥얼거림 속에서 나는 공항 이름이 써진 도로를 바라보고 빙그레 웃었다. 내 플레이리스트의 제일 첫머리에 있는 곡. 마이 앤트 메리의「공항 가는 길」이다.(202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