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는 생각보다 넓었다. 지하에 있는 중심구역은 원으로 되어있었는데, 거대한 기둥 하나가 밑을 받치고 있었다. 왼쪽과 오른쪽에는 해변으로 가는 입구가 보였다. 우리는 직진했다.
걸어오는 내내 방파제나 이따금 날아드는 갈매기, 해변의 완만하고 어두운 뻘 깊숙이 들어오는 바닷물을 지켜보았지만 구경하는 데도 칼로리가 소모 되었다. 조금씩 허기가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아침에 컵라면을 먹고 나왔고, 엄마는 계란 샌드위치에 커피를 조금 드셨을 뿐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둘 다 흥분했지만 일단 차가운 것들이라는 생각이 미쳤다. 인도교를 걸으면서 나는 엄마에게 식당에 있는 어묵은 반드시 시켜야 되겠다는 말을 꺼냈다. 뜨듯한 국물이나 훌훌 마시자는 꿍꿍이(?)였다.
비 오는 날의 숲은 외려 운치가 있었다. 숲의 깊이가 은은하게 드러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지만, 감탄이 추위를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온천 목욕탕 건물 앞에서 아줌마로 보이는 호객꾼이 사람들을 부르기 위해 큰 소리로 손님들을 부르고 있었다. 걷는 내내 엄마와 나는 내심 배고프냐는 말을 넌지시 주고받았다. 이 날씨에 굳이 해산물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푸르게 녹슨 토리이[鳥居]를 지나가니 언덕길이 나왔다. 거리 양 옆에는 당고를 비롯한 가게들, 목도가 전시된 가게, 티셔츠가 전시된 가게가 즐비했다. 몇몇 가게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언덕길은 생각보다 가파르게 보이지 않았다. 배가 고픈 데다 땀을 흘릴 수 없을 정도로 추우니 꽤나 가파른 언덕 길고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고 지레짐작했다.
하루미식당(ハルミ食堂) 앞에서 머리에 수건을 둘러쓴 남자가 화로 옆에서 서성대었다. 생선구이는 이쪽에서 미리 주문해서 내어주는 줄 알고 슬쩍 물어보니, 일단 그건 아니라는 모양이었다. 엄마와 내가 들어가기 위해 문 앞에 서자 남자는 비닐봉지와 우산 비닐을 건네주었다. 엄마의 3단 우산은 남자가 직접 비닐봉지에 집어넣어 주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운이 좋았던 탓인지 우리를 제외하고는 두 테이블 밖에 없었다. 가운데 앉은 두 여자들과 맨 오른쪽에 앉은 가족들만 눈에 띄었다. 종업원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어서 오라는 소리를 하며 자유롭게 테이블을 골라 앉으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왼쪽에 비어보이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엄마는 창밖을 보며 앉고, 나는 돌아앉았다.
외투를 벗어도 그렇게 춥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조명으로 인해 내부가 크림색으로 비쳤다. 그림들도 제법 낡았지만, 먼지 한 톨이나 흐트러진 데도 없이 단정했다. 왼쪽 벽을 중심으로 단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단 위에는 100엔을 넣으면 별자리 운세를 보여주는 기구가 있었다. 엄마도 신기한지 그걸 잠시 집었다 놓았다.
메뉴와 차를 주면서 종업원 차는 셀프니까 우리 오른편 뒤에 있는 곳을 이용해 달라는 이야기를 말하며 물러났다. 아줌마는 우리 등 뒤에서 주방으로 보이는 듯 한 입구를 등지고 서있었는데, 두 손을 모으며 차분히 식당 안에 있는 손님들의 동정(動靜)을 살피는 듯 보였다.
엄마는 이곳이 생각보다 깔끔한 곳이라 놀라며 차를 들었다. 나 또한 차를 마셨다. 따듯한 온기가 입과 코 안에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마냥 뜨겁지도, 그렇다고 미지근하지도 않은 온기였다.
엄마와 나는 별 망설임 없이 메뉴를 골랐다. 나는 먹기로 했던 해산물 참치 덮밥[海鮮漬けマグロ丼 : 카이센즈케마구로동]을 골랐고, 엄마는 에노시마 덮밥[江の島丼 : 에노시마동]을 먹기로 했다. 에노시마 덮밥은 소라와 계란이 있어서 엄마의 식사로 미리 점찍어둔 메뉴였다.
우리는 거기에 구운 오징어와 어묵을 단품으로 시켰다. 주문 고르는 내내, 엄마와 나는 이걸 다 먹을 수 있을 지에 대해 한참 의논을 주고받았다. 주문을 다하면서도 나는 은근히 두 사람 분 치고는 많지 않냐는 말을 종업원에게 건넸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