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업원은 일단 최선을 다해 일단 드셔보셔도 상관없지 않겠느냐는 말을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했으나, 나는 이내 질문을 하자마자 종업원이 여기 식당에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우리가 더 시키는 쪽에 찬성하리라는 사실을 진즉에 예감했다.
어찌 되었든 다 먹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네 가지를 시키기로 했다. 나는 원래 먹기로 한 멜론소다 플로트는 사정을 봐가며 먹기로 결심했지만, 이미 종업원이 메뉴판을 거둬간 뒤였다.
추위가 음료수를 적극 말렸지만, 나는 또한 메뉴를 다시 안 가져올 것인데 괜찮겠느냐는 종업원의 물음을 들을 일본어 실력이 부족했고, 나는 얼결에 그렇다고 대답했던 것이다.
어묵 국물은 미지근했다. 나머지 밥이 맛있었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실망만 할 뻔했다. 뚝배기 안에서 펄펄 끓는 순댓국이 그날따라 몹시 그리웠다.
센베를 파는 집에 마냥 줄 서 있자니, 여자의 손가락 하나가 창문에서 불쑥 나와서 반대편을 가리켰다. 수차례 티켓이라고 말하는 걸 그제야 떠올렸다. 기둥 옆을 보니 라멘집에서 볼법한 자판기가 서있었다. 나는 버튼을 먼저 누르고 돈을 넣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버튼을 먼저 눌렀다.
자판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이런 자판기들은 마치 라멘집 자판기처럼 돈을 넣은 다음에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와 상의하면서 천 엔을 집어넣고 '타코 센배 3개'라고 써진 버튼을 눌렀다.
라멘집에서 나오는 티켓처럼 도트 프린트로 인쇄된 하얀 티켓이 불쑥 나왔다. 거스름돈이 찰랑거리는 소리에 새삼 목덜미에 추위가 느껴졌다.
티켓을 들고 줄을 서자니, 아까 그 여자가 티켓을 받는다. 티켓을 다 받자마자 코팅된 종이 세 장을 보여주며 건네주었다. 문어가 그려져 있는 종이를 넓게 코팅한 종이였고, 그 위에는 '타코 센베 교환권'이라고 적혀있었다. 코팅된 교환권의 모서리는 둥글었는데, 오랫동안 쓴 모양인지 접힌 흔적도 많았다.
우리 앞에 있는 중국인 관광객이 갓 나온 센베 세 개 중에서 두 개를 가져갔다. 우리는 일단 갓 만든 센베를 하나를 받을 수 있었다. 앞에 있는 아저씨가 잠시 기다리시라고 말하는 동안, 엄마와 나는 그걸 나눠먹었다.
센베는 내가 알던 센베보다 훨씬 얇은 축에 속했는데, 문어가 들어있지 않은 부분은 약간 싱거웠다. 문어가 든 부분을 씹으면 바삭한 식감과 더불어 문어 특유의 향이 비강 안에 들어왔다. 제법 짭짤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짜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바삭거리며 부서지는 식감이 좋아서 한참 동안 멍하니 먹었다. 어느새 엄마의 손에 두 개가 들려있었다. 엄마는 아저씨 말고 저 안에서 한 아가씨가 두 개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를 대뜸 꺼냈다.
우리는 자판기가 있는 쪽으로 쏙 들어가 나머지를 먹었다. 먹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 했다는 생각이 미쳤지만 그냥 지금 찍기로 했다. 그 와중에 엄마는 사진을 찍기 위해 열심히 우산 손잡이를 다른 손으로 옮겨야만 했다.
마지막에 나온 두 개의 센베는 첫 번째 것에 비해 맛이 덜했다. 전에 있던 센베는 갓 구워서 그런지 바삭했는데, 두 개의 센베는 휘어질 정도로 눅눅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향이 덜했고, 질겅질겅 씹혔다. 엄마도 내 말에 동의했다.
엄마는 나머지 센베를 몇 조각을 더 드시더니 이내 가방 속에 넣었다. 그제야 에노시마[江ノ島] 신사 입구가 눈에 띄었다. 배 채우고 나니 안 보이던 시야가 더욱 펼쳐진 느낌이었다.
신사 앞에는 우비를 쓴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중국사람들은 올라가기 바쁘고 엄마도 올라갈까 하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옆에는 매표소가 보였다. 괜히 더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내려가던 계단 오른편에 희끄무레한 털 뭉치가 보였다.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잠시 나무 밑에 몸을 피하고 있었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엄마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이내 질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고양이는 한참 동안 주위를 살피다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고양이가 내 옆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자, 엄마는 움직이는 고양이에 놀라 순식간에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당혹감과 안도감이 느끼며 계단을 내려왔다. 고양이는 어느새 천막 옆에 한적한 공간에 엎드렸다. 나는 고양이를 쫓아가 카메라로 고양이의 모습을 찍었다.
에노시마[江の島] 관광은 그렇게 끝났다. 돌아오는 길은 정신없었다. 쏟아지는 비를 피해 도망가는 것 같았다.
에노덴[江ノ電, 에노시마 전철선(江ノ島 電鉄線)의 별명.] 에노시마[江の島] 역까지 제법 먼 거리를 걸었던 일. 노면전차의 젖은 창 너머로 회색빛으로 일그러진 마을을 본 일. 원래 내리기로 한 역에 그대로 지나친 일. 고쿠라쿠지[極楽寺] 역에서 얼핏 본 수국의 그윽한 색채.
종착역인 카마쿠라[鎌倉]에서 잠시 돌아다니기로 한 계획은 그대로 접을 수밖에 없었다. 카마쿠라[鎌倉] 역 플랫폼에 서서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숙였다. 빗물을 맞은 도상의 검은 자갈돌 하나가 번들거렸다.
비는 비를 부른다. 현실의 비도. 추억 속의 비도.
계획한 여행에 실패할 때면 늘 속상하다. 이상하게도 실패한 기억이 좋았던 기억에 선명함을, 좋았던 기억이 실패한 기억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낼 때가 있다.
의도에서 벗어난 계획과 의도하지 않은 즐거움 사이에 비 오는 에노시마가 있었다. 섬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상쾌하다.(2024.7.30 ~ 2024.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