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C』

PART 1. 70-0-0

by GIMIN

모든 ‘줄임말’은 결국 암호다. 이 암호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 ‘그들만의 비밀 장소’로 들어갈 수 없다. 이 앨범의 제목이자, 암호는 ‘A.R.I.C’다. 갱톨릭은 이 암호가 ‘Another Revolution is Climbing [또 다른 혁명이 올라온다]’의 이니셜에서 따왔노라고 「INTRO」에서부터 계속 강조한다. 거창하기 이를 데 없는 암호다.


이 앨범은 소위 ‘끼인 세대’의 힙합 앨범이었다. (스피릿만큼은 국내 최고였던) ‘검은소리[Blex : 블렉스]’와 (인지도만큼은 국내 최고였던) 김진표가 이 앨범보다 1년 앞서서 (지금 시점에서 보면) 힙합에 ‘준하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다음 해인 1999년은 소위 ‘1차 붐’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국내 ‘힙합’ 앨범이 많이 나왔다. 애당초 이들이 표방한 ‘갱스터 랩’ 또한 본토의 ‘갱스터 랩’과 주제적 특성이 약간 달랐다. 이들은 ‘언더그라운드’의 시선, 즉 아래에서 보는 ‘시선’으로 세상의 모든 부당함을 폭로한다는 의미로 ‘갱스터 랩’을 표방했다.


그러나 이들은 외골수를 자처하지 않았다. 이들은 되레 수많은 뮤지션과 교류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은 당시에 처음 생긴 힙합 클럽인 ‘마스터플랜’에 자주 얼굴도 비췄다. 성기완을 비롯한 당대의 홍대 인디 록 뮤지션과도 친분이 있었다. 이 앨범이 당시의 인디 록 뮤직 레이블인 ‘강아지 문화예술’에서 나온 게 바로 그 증거였다. 이 앨범의 (비트를 책임진) 컴퓨터 프로그래밍 사운드는, ‘강아지 문화예술’의 공동 설립자이자 엔지니어의 한 명이었던 이한별이 전담했다. (역시 강아지 문화예술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인) 이효찬이 이 앨범에서 갱톨릭과 더불어 협업하며, (거의 모든 곡에 베이스 연주를 전담하며) 곡을 편곡했다. 성기완은 이 앨범에서 「파고다」를 작곡하고, 기타 세션을 자처했으며, 베이스 연주 또한 거들었다.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그 당시 한국 홍대 앞 인디 록 음악 신과,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이 함께 만든 공동 창작물의 성격을 띠었다. 이들의 음악에 깃든 냉소적이고 차분하면서도 아방가르드한 사운드는 바로 이런 컬래버레이션으로 인해 나올 수 있었다.


김진표의 랩이 끝내 참신하고도 유기적인 플로우를 창안하지 못했고, ‘검은소리[Blex : 블렉스]’ 1집 앨범의 사운드가 스피릿 하나로 모든 단점을 무마했다면, 이 앨범은 유연한 플로우가 담긴 랩과 유기적인(보다 완성도 있는) 비트가 제법 그럴싸하게 한데 얽혔다. 「파고다」의 다층적인 사운드를 바탕삼은 비트와, 「Gangtholic LOVE」의 (웨스트 코스트 힙합을 의식한) 비트에서도, 이들의 랩은 힙합이라는 장르에 결코 부끄럽지 않은, (최소한 무참히 무너지지 않는) 완성도 높은 플로우를 청자에게 들려줬다. 이들이 말한 ‘변기 속 세상’은 이러한 음악적인 설득력을 지녔기에, ‘언더그라운드’를 자처하는 이들의 제스처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이 앨범은 적어도 ‘검은소리[Blex : 블렉스]’의 앨범이나 김진표의 앨범보다 훨씬 ‘각 잡힌’ 앨범이었다.


물론 이들은 라임을 비롯한 랩이 지닌 여러 기본 개념이 완전히 정착하지 않은 시대의 랩을 구사했다. 그러나 이 앨범의 특유의 건조한 사운드는 여전히 이 앨범의 가치가 그리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확실히 어필했다. 너무나 정직해서, 도리어 정취마저 느껴지는 이들의 음악은 적어도 사운드 면에서 부끄러울 구석이 없다. 이들의 ‘혁명’은 처절하게 실패했어도, 이들이 이 땅에 남긴 차가운 ‘시선’은 지금도 유의미한 ‘울림’을 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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