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NING』

PART 1. 71-0-0

by GIMIN

1980년대의 한국 헤비메탈 계는 그 시절에 나왔던 무협 소설의 ‘무림’과 꽤 많이 닮은 듯했다. 거기에도 문파나, 은둔 고수나, 의협심 넘치는 ‘대협’이 있었다. 이단도 물론 있었다. 심지어 마교도 존재했다. ‘배신’도 난무했다. 메탈이 아닌 장르를 배척하는 ‘정파’와 메탈 이외의 다른 음악을 듣는 ‘사파’도 존재했다. 협객도 주화입마도 존재했다. (하긴 ‘어지러운 세상’마저도 비슷하긴 했다.) 시대적인 상황보다는 차라리 개인적인 상황이 이들 모두를 억눌렀다. (딱히 ‘경제 개발’을 언급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문제는 그 당시에도 꽤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기타리스트 이근형은 바로 이 80년대 한국 헤비메탈 계에서 가장 고명(高名)한 협객이었다. 당대에 그가 구사한 기타 연주는 김태원이 가지지 못한 날카로움을 겸비했으며, 신대철이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한 호방함을 겸비했다. (프레이즈를 맛깔나게 다루는 게 그의 주요 ‘검법’ 중 하나였다.) 물론 그는 기타 다루는 솜씨만 훌륭하지 않았다. 그는 「Rock’ n’ Roll Party」나 「사하라」와 같은 출중한 곡을 작곡한 좋은 작곡가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작은 하늘이라는 밴드의 앨범을 준비하던 와중에 만난 뮤지션들과 더불어 새로운 밴드를 꾸렸다. 베이스 기타 연주는 (녹음 당시에는 다른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를 겸했던) 박현준이 맡았고, 드럼은 시나위 출신의 김민기가 맡아서 연주하기로 했다.


김종서가 보컬로 합류하면서 마침내 완전체를 이룬 이들은 이근형의 곡과 김종서의 곡, 김종서와 이근형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곡을 바탕 삼아 비교적 빠른 시간에 당대의 여타 헤비메탈 앨범보다 한결 치밀한 사운드를 지닌 이 앨범을 만들었다. (헤비메탈 그룹 백두산 출신의 유현상이 이 앨범의 디렉팅을 맡았다.)


김종서는 자신의 곡인 「빛바랜 옛 사진속에서」와 「너에게」를 이 앨범에 실었다. 나는 시나위 앨범에 들어간 김종서의 곡보다 이 앨범에 들어간 김종서의 곡에 더 마음이 간다. 전자가 무작정 내달리던 앨범에 쉼표를 제공했다면, 후자는 정직한 8비트 곡인 「저 산너머」와, 이근형의 속주가 휘몰아치는 「Rock’ n’ Roll」 사이를 잇는 훌륭한 가교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었다. (김종서의 곡이 없었던들 이 앨범은 지나치게 단조로운 작품으로 남았으리라.)


박현준의 베이스 연주는 정도(正道)를 달렸고, 김민기(그는 8비트 연주에 충실한 당대의 헤비메탈 드러머 가운데서 가장 깔끔한 연주를 구사했던 훌륭한 드러머였다.)는 여전히 뛰어난 그의 실력을 깔끔한 드럼 연주로 입증했다. 이근형의 기타 연주는 바로 이 든든한 토대를 바탕으로 마구 날뛸 수 있었다. 김종서의 보컬은 시나위의 앨범에서 가장 잘 어울리지만 이 앨범에서도 또한 잘 어울렸다. 그의 날카로운 보컬은 이근형의 날카로운 기타 연주에 어울리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소위 ‘버터 메탈’의 필을 다듬은 듯한 이 앨범의 날카로운 사운드는 순전히 (열악한 녹음 상태까지도 꿰뚫은) 이들의 출중한 역량으로만 세운 성과였다.


이 한 장의 날카로운 검흔(劍痕)은, 당대에 흔치 않았던 쾌검(快劍)을 마음껏 다룬, 이들의 패기 넘치는 행보를 (지금 시점에서 들어도) 비교적 생생히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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