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0-75-51
스래시 메탈(Thrash Metal) 트랙은 확실히 곡 자체가(최소한 곡에 대한 관이) 견고해야 한다. 기타 속주의 속도에 곡이 무너지지 않아야 하고, 탄탄한 저음부 연주에 곡이 짓밟히지 않아야 한다. 속도나 연주 테크닉만을 강조한 스래시 메탈 트랙은 경박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경박한 사운드 속에서 (스래시 메탈 특유의) 묵직한 재재는 쉽게 탈락한다.
이 앨범의 프로듀서이자 엔지니어인(이 순서는 매우 중요하다.) 콜린 리처드슨이 세 사람에게 주문한 건 결국 ‘기본에 충실할 것’이었다. 좋은 메탈 앨범은 곡을 만들고 편곡하는 단계에서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이들에게 꾸준히 강조했다. 이들은 그의 ‘충고’를 적극 받아들이며, 이 앨범의 사운드를 훌륭하게 축조했다.
콜린 리처드슨의 ‘멘토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들에게 새로운 레코딩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들은 이 과정 속에서 자신들이 기존에 지녔던 편견이나 오해를 상당 부분 해소하며 비로소 제대로 만든 소리를 냈다. 윤두병은 거의 기타 한 대와 앰프 하나로만 이 앨범에 있는 모든 기타 사운드를 녹음하며 이 앨범의 탄탄한 구성과 치밀한 사운드 밀도를 더욱 강조했다. (그는 이 앨범의 모든 기타 연주를 혼자서 다 소화하는 괴력을 발휘하며 앨범 사운드의 통일성을 견인했다.) 블래스트 비트를 수없이 구사하는 지구력을 지닌 정용욱의 투베이스 드러밍 또한 이 앨범의 안정적인 사운드를 더욱 굳건히 다졌다.
안흥찬은 이 데뷔 앨범에서부터 이미 무시무시한 보컬 실력을 뽐냈지만, 그는 또한 이런 장르의 앨범에서 가장 소홀히 여겨질 수 있었을 베이스 연주 또한 훌륭히 소화했다. 「Don't Ramble On」이나, 「Self Destruct」에서 윤두병의 기타 연주를 서포트하는 그의 베이스 연주는 기본에 충실한 연주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결과로 나타나는지를 분명한 결과로 증명했다.
이 앨범의 좋은 사운드 메이킹은 안 그래도 좋은 곡을 더욱 좋게 만들었다. 「My Worst Enemy」의 탄탄한 곡 구성, 「Scream」의 영리한 템포 변환, 「Don't Ramble On」의 깔끔한 구조, 짧은 곡인 「Screwed Up」의 파격은 이들의 이러한 연주력과 콜린 리처드슨이 만든 사운드 덕에 더욱 멋진 결과물로 거듭났다.
(물론 이 앨범 또한 음반 사전 심의 과정을 거쳤지만) 이 앨범의 영어 가사 또한 이 앨범의 옹골찬 스래시 메탈 트랙과 잘 어울리는 투쟁의 표현으로 가득했다. 이들은 자신과 적에 대한 피아식별을 명확히 하며,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데에 모든 역량을 쏟았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쓸데없는 문학적 수사를 깔끔하게 없앴다. 해당 장르를 충실히 이행하며, 폭력의 연쇄를 표현한 이들의 언어는, 이 앨범의 사운드에 더욱 굳센 당위성을 부여했다.
좋은 사운드를 위한 순수한 몰입이 좋은 음악에 힘을 넣었고, 그 힘을 받은 좋은 음악이 다시 좋은 사운드를 오롯하게 만든 선순환이 이 앨범을 더욱 충만하게 만들었다. 훌륭한 곡에 어울리는 빛나는 정공법이 이 앨범을 90년대 초반에 다 쓰러져갔던 한국 헤비메탈 계를 거의 홀로 떠받치는 아틀라스로 거듭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