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X-47-71
이 앨범의 모든 곡은 여유롭기에 매력적이다. 이 앨범은 자신의 스윙(Swing)을 잃지 않은 채로 삶을 살아가는 일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청자에게 풍성하게 일러준다.
이 앨범은 또한 한국의 모던 록이 재즈와 가장 짜릿하게 조우한 앨범이었다. 물론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팝으로 규정했지만, 이 앨범의 편곡이나 사운드에선 모던 록과 재즈의 조우가 강하게 느껴진다. 이 앨범의 색소폰 연주를 담당한 연주한 장효석이 이 앨범의 혼 섹션을 편곡했으며(그가 속한 T.S.T 팀이 이 앨범의 혼 연주를 전담했다.), 애니송 편곡이나, 각종 O.S.T. 곡의 편곡자이자, 세션, 뮤지션으로 맹활약한 베테랑 키보디스트인 전영호가 이 앨범의 키보드 연주를 전담했다. 이 앨범에 등장하는 (컴퓨터로 만든) 리듬 프로그래밍은 이소라의 『눈썹달』(2004)을 비롯한 각종 (주로 인디 밴드) 앨범의 컴퓨터 프로그래밍 사운드를 담당했던 모던 록 밴드 스웨터(Sweater) 출신의 신세철(a.k.a 멜로우이어[Mellowyeer])이 담당했다.
멤버들은 이러한 세션들의 연주에 적극 호응했다. 「싫증」이나 「소꿉친구」의 스트레이트한 드럼 연주도 곧잘 소화한 박정준은 이 앨범의 유일한 슬로 트랙인 「4시 20분」의 감성적인 드러밍과, (역시 이 앨범의 유일한 연주곡인) 「데드 볼」의 정교한 드러밍 또한 훌륭히 소화했다. 한진영의 베이스 연주 또한 이 앨범의 재즈에 호응하여 더욱 강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정순용 또한 이 앨범에서 자신의 기타 연주를 보다 입체적으로 가꿨다.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를 가리지 않고 모은 이러한 세션들의 공력과 멤버들의 협업 덕분에 이 앨범은 그 당시 인디 밴드의 앨범이 흔히 직조했던 사운드를 어느덧 훌쩍 초월한다. (「골든 글러브」의 스윙감 넘치는 연주와 「럭키 데이」의 복잡다단한 연주가 바로 이 점을 증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공력이 뒷받침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걸 빛내주는 곡이 없다면 이러한 시도는 안 하느니만 못했으리라. 그러나 이 앨범은 그 공력 또한 충분히 빛내줄 12곡을 품고 있다. 이 앨범이 나오기에 앞서 나온 싱글 앨범에 실린 「공항 가는 길」, 「4시 20분」, 「원」은 이 앨범의 비범한 ‘풍성함’을 예비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주며 이 앨범의 두터운 한 축을 담당했다. 정순용의 솔로 프로젝트인 토마스 쿡(Thomas Cook)의 앨범에서 먼저 나온 「파도타기」는 이 앨범의 연주와 사운드를 통해 (어쿠스틱 곡 특유의 러프[Rough]한 미감을 벗어나 금빛 햇살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기억의 기억」은 (‘어떤날’에 대한 오마주를 한 모금 머금은) 어쿠스틱 곡 특유의 느긋한 정서가 과감한 여백의 간주로 멋지게 발돋움하는 곡이다. 「싫증」의 차분한 성격 또한 싱싱하기 이를 데 없다. 앨범의 마지막 곡인 「Fairy Tale」의 ‘애수’는 애수 그 자체에 푹 빠지지 않는 싱싱한 멜로디 덕분에 오롯하게 빛날 수 있었다.
세상에 마냥 휘둘리다가 마침내 자신의 ‘스윙’을 발견한 이의 여유와 당당함이 이 한 장의 앨범에 푸른빛을 머금은 채로 들어있다. 「공항 가는 길」서부터 불안과 맑은 바람이 같은 비율로 일렁거리는 이 앨범은 미래를 걱정하기만 해도 찬란하게 빛나는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이 시절을 우리는 으레 ‘청춘’이라고 부른다.) 시간은 우리를 빛나게 해주기도 하고, 별거 없게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앨범은 우리의 시간이 결국 찬란한 빛에서 왔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다. 그 믿음이 얼마나 사람 마음을 든든하게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