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X-87-79
비록 그가 몸담았던 ‘아무밴드’는 흩어졌지만, 그는 자신의 음악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결심’은 이 앨범에서 더욱 날카롭게 벼려졌다. 프로그레시브 포크 장르에 가까운 「칼」의 혼란스러운 사운드를 ‘끊는’ 이장혁의 기타 연주는 여전히 단호하다. 「스무살」에서 ‘아니라던 곳’으로 향하는 ‘형들’을 정확히 지목하는 그의 눈은 여전히 날카롭다. 「누수」에서 고장 난 자신을 안아 줄 수 있냐고 외치는 이장혁의 보컬은 여전히 온 지하실을 쩌렁쩌렁 울린다.
마음의 번민을 (격렬한 진폭의) 허무로 치환했던 이장혁의 감수성은 '아무밴드'의 개러지 록을 덜은 (거기에 프로그레시브 록을 가미한) 이 앨범의 포크 록에서도 여전히 선명하게 살아났다. 「스무살」과 「칼」은 자폐적 자존과, 미련과, 탈출 사이에서 이는 번민을 그렸다. 전자가 적나라한 치욕에 청춘의 울분을 더한 이장혁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린다면, 후자는 자괴감으로 얼룩진 단절의 풍경을 날카롭게 묘파한 사운드가 소름 끼치도록 선명하게 들린다. 전자는 또한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만든 드럼 사운드와 베이스 연주를 담당한 유재인의 솜씨와 최윤혁의 은은한 오르간(조덕배의 여러 앨범 사운드가 얼핏 생각나는) 연주가 인상적으로 들린다. 후자는 또한 스트링 사운드와 리얼 드럼의 집중력 있는 조화가 인상적이다. 그는 여전히 끝판에 이르러야 다다르는 (내향적인 방향으로 수렴할 수 있는) ‘허무’를 집요하게 노래했다.
다른 곡에서 ‘솟구치는’ 목소리 또한 청자의 마음을 깊이 건드린다. 중국 악기인 얼후[二胡] 연주와 가야금 연주의 조화가 인상적인 「동면」에서 이장혁의 목소리는 세밀하게 피는 성에꽃에 예민한 피로를 절절히 투영했다. 「성에」의 따듯함은 역설적으로 존재의 추위와 고독을 강조하는 듯이 들린다. 시인과 촌장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영등포」의 서정은 이 앨범이 맨손으로 찬 흙바닥을 헤짚어 겨우겨우 그러모은 따듯함을 군불처럼 지피는 듯 들린다. 「자폐」와 「꿈을 꿔」로 이어지는 (이 앨범 마지막에 있는) ‘칩거’는 「외출」로 끝나지만, (이펙터를 걸어놓은) 불안한 뉘앙스의 사운드로 인해, 일종의 ‘미봉책(彌縫策)’처럼 들린다.
이장혁은 이 앨범의 히든 트랙에 '아무밴드'에서 이미 발표한 「알아챈 사내」를 숨겼다. 이펙터를 잔뜩 입힌 기타 연주가 혼란을 표현하는 이 곡에 이르러, 그는 그가 응시하던 것이, 못을 제거하고 덩그러니 남은 못 자국 같은 ‘미련’이었음을 넌지시 청자에게 말하는 듯하다.
그는 얼터너티브 록의 함정(중 하나)인 ‘관습적인’ 분노에서 벗어나, 훨씬 내밀하고 자연스러운 ‘허무’를 음악에 적극 투영했다. 절망을 온전히 겪고 난 뒤에, 어두운 공동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듯한 그의 줏대 있는 표현은, ‘희망은 없다’라는 대전제에서만 인간을 온전히 말할 수 있다고 청자에게 단호하게 말하는 듯하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이 앨범을 들으니, 이 앨범의 표현 하나하나가 내 몸 안에 통풍처럼 다녀갔던 자리였다는 걸 여전히 실감할 수 있었다. 앓은 자리와 사랑한 자리를 구분할 수 없다는 앨범의 ‘자백’은 나를 언제나 알몸으로 만든다. 자신을 몇 장의 알량한 사진이나 그럴듯한 텍스트 안에 가두는 사람들 곁에서 이 앨범은 여전히 어두운 얼굴을 한 채로 서있다. 이 앨범은 지금도 그들의 가슴께에 칼을 겨누며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갇힌 수인(囚人)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