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의 졸업 겸 해서 가족끼리 1박2일로 떠난 여행 첫날 밤....
저녁을 먹기 전에 친정아빠한테 전화가 왔어요. 갑자기 미안하다는 말과 엄마가 많이 놀라셨을테니
위로해드리라는 말씀이었죠. 결론은 아빠가 간암 4기라는 것...
지금 정밀 검사를 위해 응급차를 타고 다른 병원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는 거에요.
무슨 장난같은 말인가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그 상황도 모르고 여행중인 난 괜히 죄인이 된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무슨 영화같은 이야기인지...
저는 그렇게 갑자기(누구나 그렇겠지만) 암환자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엄마와 여동생은 음식이나 건강체크 등을 하겠지만 떨어져 살고 있는 나는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3주 연속으로 주말에 친정집에 갔더니 입술에 물집이 생기면서 제 몸에서 신호를 보내더군요. 자신의 몸도 좀 돌보라구요... 여독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를 했나봅니다.
사실 제게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서 점점 내 뜻과는 다른 일들을 겪으면서 감정조절이 어려워져서 사람들을 만나는 횟수도 많이 줄였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친정에도 자주
가야하고 친척들도 만나야 하는데 첫째 딸인 저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부분입니다. 특히나 엄마나 여동생처럼 아빠한테 잘 맞추는 성격도 아니다보니... 특히 사춘기 아이들에게 전화를 부탁하는 일도 쉬운일이 아니구요. (할아버지 할머니를 어려워해서 심지어 용돈주기까지 준다고 했네요.)
고민을 하다가 우연히 간의 구조를 그려봤습니다. 약간의 명암을 넣어서 말이죠. 그리면서 이렇게 건강한
간을 보면 혹시 간이 건강해지려고 조금씩 노력하지 않을까 하는 황당한 생각까지 했네요.
가족들에게 보여줬더니 진짜 그린거 맞냐고 물어보네요.(연필로만 그렸지만 이런 말 들으니 기분은 좋네요.)
부끄러웠지만 아빠에게 간에 공급해주는 간동맥, 간정맥, 간문맥을 설명드리고 책상 유리에 넣어드렸죠.
40대 딸이 할 수 있는 게 이거라니...
지금은 2차 항암치료를 했는데 다행히도 잘 지내지고 계시네요. (1차때는 여러 증상들이 나타났거든요. 구토,
고열 등)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담배도 피셨고 퇴근 후에는 피곤하다고 식사 대신 술 한잔씩 하시던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암이 되버렸으니... 그래도 다행인건 간암 진단 후에는 술과 담배를
안하신다는 거에요. (사실 전에 입원해서도 병원에서 하라는대로 잘 안했거든요. 본인의 몸은 본인이 더 잘 안다면서 말이죠. 그때는 젋어서 그랬을까요?) 저는 겁이 나서 간암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알아보고 있지는 않아요. 심장이 안좋아서 약도 먹었지만 지금은 제 몸이 말하는대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조심히 지내거든요. 사실 당사자인 아빠가 가장 힘드실거고 그 다음엔 엄마와 여동생이겠죠. '너무 무리하지 않아야할텐데'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생각만 하면서 이러고 있네요. 이상하게 대화가 자꾸 의도치 않게 흘러가거든요.
6개의 접시에 각각 반찬을 담고 아래 판에 맞춰서 놓으면 이렇게 잎사귀 모양이 됩니다.
매일 드시는 식사라도 좀 더 색다르게 해봤습니다. 식욕이 생기시겠죠?
암환자의 가족의 역활이 뭘까요? 각자 답이 다르겠죠? 서툴지만 저도 조금씩 노력한다는 의미에서 글을
써봤습니다. 말보다는 글로 표현하니까 훨씬 마음이 편안하네요. 암환자 가족분들도 너무 무리하지도 말고
환자분 신경도 써야겠지만 자칫 본인의 몸을 상하실 수도 있어요. 항상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