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앉아 이야기했다. 전하고 싶었던 오래된 말을.
2010년의 여행은 내게 있었을지 모를 많은 가능성을 버리게 했다고. 친구들이 졸업 후 사회로 나가고 있던 시기에 홀로 아시아를 떠돌았고, 머무르며 준비해야 마땅할 때 그러지 않은 대가로 오랫동안 힘들었다고.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평가에 무참히 휘둘렸고 내팽개쳐진 느낌으로 구석에 깊게 웅크렸다고. 머리를 싸맨 채 종종 생각했다고. 그때, 가지 않았어야 했을까. 수백 번을 자신에게 되물었다고.
아니,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방콕에서의 열흘 때문이야.
그 여행의 가을, 우연히 네가 살던 땅에서 열흘을 보내게 됐고 너를 다시 만났지. 약속 장소인 라차다몰 1층 스타벅스에서 너는 여전한 웃음으로 나를 맞았어. 열흘의 일정 중 우리가 일주일이나 만날 수 있었던 건 마침 네 비행 스케줄이 좋았기 때문이었지. 넌 아무 준비도 없이 온 나를 데리고 네가 사는 땅으로 인도했어. 새벽사원의 가파른 계단을 같이 오르던 너의 뒷모습을 기억해. 짜오프라야 강을 건너는 보트 승강장에서 조심하라며 나를 잡아준 너의 손도 기억해. 시암스퀘어에서 저녁을 먹으며, 색소폰펍에서 음악을 들으며 나눴던 대화의 온기조차 생생한 걸. 말을 잘하지 못해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일이 훨씬 편한 내가 왜 너랑 있을 땐 말이 많아졌는지. 마지막 날 우리는 파타야로 바다를 보러 갔잖아. 내가 쉼보르스카의 시를 읽어줄 때 너는 눈을 감고 있었지. 방콕으로 돌아온 우리는 지하철역에서 서로 말하지 않고 헤어졌어. 눈빛과 손짓으로만 나누던 작별. 네가 떠나고 나서도 나는 그 역에 오래오래 머물렀단다. 덥고 습한 방콕의 공기를 깊이깊이 들이마셨단다. 이 순간의 공기까지, 냄새까지 기억하려고.
아시아를 여행하고 돌아오자마자 현실은 나를 기다렸다는 듯 넘어뜨렸어. 정상적인 직장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이 내 몸을 떨리게 했고, 실패와 좌절이 반복되었지. 진흙탕에서 망가지면서 생각했어. 그때 여행하지 않았다면. 그 길로 가지 않고 사람들이 요구하는 길을 착실히 갔다면...
그랬다면 그때 너를 만나지 못했을 거야. 방콕에서의 열흘을 만들지 못했겠지. 프랑스 68혁명 당시 바리케이드 안쪽에 써진 낙서 중 'ten days of happiness'라는 문장이 있었대. 김연수 작가가 그 문장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썼단다. 살아가거나 사랑하는 이유로 열흘 동안의 행복이면 충분하다고. my ten days of happiness. 오래전 너와 함께 창조했던 방콕에서의 열흘을 잊지 못할 거야.
그래,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