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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m Sep 05. 2017

게.이.예.찬!

즐거웠어요. 여행 중이던 7년 전 여름, 필리핀 마닐라의 밤거리에서 만난 게이는. 한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아마추어 밴드의 보컬로 활동한다는 그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선선히 인정하며 웃었지요. 노래를 부르며 서로 떠들다가 가려던 방향이 같음을 알자 그는 독특한 제안을 했어요. 지프니 삯 10페소(250원 가량)를 대신 내줄 테니 자신의 뺨에 뽀뽀를 해달라는 것이었죠.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지프니를 타고 가면서 우리가 나눈 대화는 다음과 같아요. 너 그냥 우리 집에 올래? 다른 게이 친구들과 술 마시고 놀자. 술은 좋아하지만 글쎄, 내게 빠져버리는 건 아니겠지? 그럴 일 없을 거야! 근데... 또 모르지? 술에 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수위는 높았지만 전혀 불쾌하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그는, 밝았거든요. 지프니에서 내린 후 약속대로 그의 뺨에 입을 맞췄어요. 깔깔대며 헤어진 후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보름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네요.

두려웠어요. 역시 여행 중이던 7년 전 여름, 중국령 마카오의 밤거리에서 만난 게이는. 제가 찾아다니던 성당 근처의 3성 호텔에서 일한다는 그는 대화를 시작한 지 한참 후에야 자신이 게이라고 밝히며, 금세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죠. 우물쭈물거리면서 그도 독특한 제안을 했어요. 피곤해 보이는데 마사지를 해 줄 테니 자기 집으로 오라는 것이었죠. 그 제안을 거절하고 헤어지기까지 우리가 나눈 대화는 다음과 같아요. 너... 나랑... (왼손 엄지와 검지를 오므려 원을 만들고 오른손 검지로 그 원을 통과시키며) 할래? 흠, 혹시, (왼손 전체를 오므려 주먹 쥐고 오른손바닥 전체로 왼 주먹을 마찰시키며) 이걸 말하는 거라면, 싫어. 어... 그럼... 안아만 줄래? 음, 글쎄, 미안하지만, 싫어. 거절해야만 하는 제안도 있었지만 응할 수 있는 제안도 있었어요. 그럼에도 그의 제안들을 모두 거절한 이유는, 그가 어두웠기 때문이에요. 결국 한없이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는 멀어졌어요. 씁쓸하게 헤어지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보름달이 무섭게 빛나고 있었네요.

똑같은 보름날에 필리핀의 게이를 만났고 마카오의 게이를 만났는데, 왜 저의 반응은 '즐거움'과 '두려움'으로 나뉘었을까요? 그 차이는 아마도 분위기, 자신을 유쾌히 인정하던 필리핀 게이의 분위기와 버림받기 두려워하던 마카오 게이의 분위기 차이에서 나온 것 같아요. 두 게이의 차이는 그리고 결국 그들이 각기 속해있는 사회의 분위기 차이에서 기인하지요. 그들의 성 정체성에 그들이 속한 사회가 얼마나 너그럽고 또 무심한지의 차이 말이에요. 필리핀은 1994년 6월 26일,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게이 퍼레이드가 열렸을 정도로 동성애에 관대한 나라랍니다. 제가 만난 친구처럼, 필리핀의 게이는 활짝 웃으며 거리를 누빌 수 있어요. 마카오에서 게이 퍼레이드가 열린 적은 단 한 번도 없군요. 그러니 제가 만난 친구처럼, 마카오의 게이는 어깨를 움츠리면서 거리를 돌아다닐 수밖에요.

LGBT 페스티벌. 해마다 유월이면 성소수자들이 서울에서 벌이는 축제의 이름입니다. L(Lesbian : 레즈비언), G(Gay : 게이), B(Bisexual : 양성애자), T(Trensgender : 트랜스젠더)들이 종로 거리로 나와 퍼레이드를 하며 뛰어놀아요. '그들'이 재미있게 놀면 '그들'만 좋을까요? 제가 겪은 바로는 '우리'도 좋아요. '그들'이 웃고 떠들고 편해질수록 '우리'도 '그들'이 편해져요. 불쾌할 필요도, 동정할 필요도 없어지고, 끝내는 '우리'와 '그들'이라는 경계도 사라지게 될 거라고요. 그러니 이 땅의 모든 성소수자들은 더욱 깔깔대고 더욱 소리쳐야 마땅해요. 그들과 우리,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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