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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m Nov 04. 2017

영화, 우리가 만나는 곳

한 장의 사진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메가박스 해운대점, 관객들이 그날의 마지막 영화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 로비 사진. 2006년 10월 15일 일요일 저녁 7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고 아직 축제의 약칭이 ‘PIFF’였던 시절이었어요. 11회 부산국제영화제이자 제 첫 번째 부산영화제. 이틀 동안 5편의 영화를 몰아 본 후 저는 약간 멍한 얼굴로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영화제 자봉이 로비를 돌아다니며 이렇게 외쳤죠. “8시 영화 <아버지와 아들> 1장 무료티켓 있습니다. 보실 분 계신가요?” 공짜표! 제 손은 이미 들려져 있었고 그렇게 전 당신의 옆자리에서 영화를 보게 된 겁니다. 그날 이후 한 번도 다시 보지 못한 당신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내요. 11년 동안 마음 한쪽에 계속 남아있던 당신의 물음에 이제야 답을 드려요.


<아버지와 아들>은 홍콩 영화였는데 사실 지금 그 영화에 대해선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그 대신, 당신이 제게 영화를 같이 보자고 팔을 톡톡 두드리던 순간이 떠오르죠. 당신은 햄버거를 제게 내밀고 있었어요. 먼저 꺼내 먹으며 손으로 자른 햄버거 반쪽. 의심과 걱정이 동시에 몰려왔고 전 빠르게 선택해야 했지요. ‘처음 보는 당신을 믿을지 말지’의 선택. 그런데 그날 저는 영화를 계속 보느라 굶주린 상태였고 그 허기를 핑계 삼아 당신을 믿는, 대책 없는 선택을 한 거예요. 햄버거를 받아 조심스레 먹고 나니 당신이 이어 건네준 감자튀김은 더 빨리 먹을 수 있었고 종내 콜라까지 나눠 마시게 되었죠. 그렇게 당신과 나는 그 순간 우리가 되었고 우리는 같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다 본 우리는 어느새 해운대 백사장에서 같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네요.


당신은 직장을 막 그만둔 30대 중반의 남성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어요. 보헤미안처럼…” 이라며 어색하게 웃었습니다. 갓 제대한 어리바리 복학생이었던 저는 직장의 무게와 퇴사의 고민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 당신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어요. 영화를 보다 제게 먹을 걸 나눠 준 당신의 기묘한 친절도 어쩌면 ‘앞으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영화제가 처음이라는 보헤미안은 영화를 좋아한다는 어리바리에게 마구 물어봤어요. 


- 어떤 영화가 제일 좋았어요? 

- 오늘 오후에 본 다큐 <꿈의 동지들>이요! 

- 왜 좋았어요? 

- 음… 그게… 영사기사들의 삶을 다뤘는데요… 북한 여자도 나오는데… 웅얼웅얼. 

보헤미안은 또 물었죠. 

- 영화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상영관 불도 안 켜지고 사람들도 나가지 않아서 신기했어요, 그때 뭘 하나요? 

- 음… 그건… 영화를 만든 창작자들에 대한 예의로 그렇게 하는데… 아니 그런 정답 말고 내가 그때 뭘 하냐면… 어물어물. 

어리바리는 변변한 대답 하나도 못하면서도 보헤미안과의 대화가 즐거웠답니다. 헤어질 때 보헤미안의 연락처를 받으며 언젠가, 다시 만나 제대로 답을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이후로 좋은 영화를 볼 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조용히 보면서 종종 당신의 연락처를 핸드폰에서 매만졌습니다. 통화버튼에 손가락을 대다가 힘을 뺀 적도 여러 번. 그렇게 지내다 핸드폰을 잃어버리며 당신의 번호는 제게서 사라지게 됩니다. 번호를 따로 적어놓지 않은 걸 후회했습니다. 연락했다면 그때처럼, 대책 없이 즐거운 이야기를 다시 나눌 것 같았는데 말이죠. 후회와 상관없이 당신은 제게서 사라져 갔고 그날의 물음만이 남았습니다. 저는 당신이 듣지 못하더라도 답을 하고 싶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나만의 답, 말이에요.


울리 가울케 감독이 만든 다큐 <꿈의 동지들>은 4개의 국가를 돌며 영사기사들의 삶을 담습니다. 미국, 인도, 부르키나파소, 그리고 북한. 영화는 이들이 서로 한 번도 본 적 없어도 영화라는 ‘꿈’으로 ‘동지’일 수 있다고 말해요. 제가 이 작품을 제일 좋아했던 이유는 미국의 페니라는 여성과 북한 청산리의 한영실을 교차 편집한 후반부 때문이에요. 각자의 외로움과 소망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교차로 반복되는 어느 순간, 저는 미국과 북한의 정치적 대립을 잊었거든요. 그 속에는 다만, 같은 꿈을 공유하는 두 여인만 있었답니다. 결국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제 취향과 관련이 있네요. 강하게 주장하지 않고 부드럽게 속삭여 마음을 예쁘게 움직이는 영화를 좋아해요. 영화 뿐 아니라 그러한 연극도, 소설도, 그리고 삶도.


당신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최근에야 찾았습니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저를 제일 움직였던 영화를 보고 나서지요.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 <빛나는>의 주인공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영화 음성 해설 대본을 만듭니다. 그녀는 영화의 주제를 담은 마지막 장면을 장황하게 설명하다 지적을 받아요. 시력을 잃어가는 사진작가가 그녀에게, 말이 너무 많으면 우리에게 느낌을 강요하게 된다고 질책하죠. 그녀가 말을 대폭 줄이고 건조한 묘사만으로 해설을 바꿔보자 사진작가는 또, 설명이 너무 없으면 영화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어쩌란 말인지? 서로 불화하던 그와 그녀가 이해하고 소통하며 해설은 균형을 찾아갑니다. 이 아름다운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저는 눈을 감아보았어요. 빛이 없는 세계를 느끼려고 노력해봤어요. 눈이 안 보여 영화를 보지 못하는 이들이 영화를 감상하는 일을 상상해봤어요.


그러니 이제 답할 수 있습니다. 좋은 영화를 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저는, 제가 아닌 무수한 다른 존재들에 대해 생각한다고요. 이란에서는 여성이 축구장에 들어가지도 못하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한 소녀가 그 상황에서도 계속 싸우고 있고(자파르 파나히 감독, ‘오프사이드’) 뉴욕 허드슨 강에는 비행기가 불시착하는데 기장은 물론 이 사고를 둘러싼 책임자들이 우리와 아주 달리,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내어 “오늘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도록 만들죠(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설리’). 제가 보는 영화가 제 마음속 굳어가는 생각을 허물기 바라요. 그건 곧 여기가 아닌 다른 도시, 다른 나라, 다른 곳의 경계를 넘는다는 뜻이겠죠. 경계를 넘어 도착한 다른 땅에서 볼 때 우리는 얼마나 낡고 고인 물에 갇혀 있을까요? 현재의 금기를 기꺼이 넘으려고 하는 영화를 그래서 저는 더 많이 보고 싶은 거예요.


2006년의 이맘때, 지금은 사라진 해운대 메가박스 7관에서, 당신과 저는 같이 영화를 봤습니다. 그날 당신이 내게 던진 두 가지 질문이 내게는 이토록 강렬했지요. 그때로부터 얼마나 많이 지나왔는지. 영화제의 약칭은 ‘BIFF’로 바뀌었고 영화의전당 시대가 열리며 남포동의 낡고 큰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도 이젠 사라졌어요. 커져만 가던 영화제는 기괴한 정부에게 온갖 탄압을 당하다 간신히 숨통이 틔었고요. 올해 부산에서 해운대 모래를 밟으며 생각해보니 이제 제가 그날의 당신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더군요. 당신처럼 나도, 예기치 못한 기쁨을 준 사람으로 누군가에게 남아야 할 텐데요. 11년 전 당신의 물음에 이제야 답을 드렸습니다. 저의 첫 부산영화제에서 좋은 기억을 남겨주셔서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디 자유롭게 살아가고 계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부디 언젠가, 이 편지를 읽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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