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일어나서, 양치를 하고, 샤워를 하고 옷을 입은 후, 회사에 터벅터벅 걸어간다. 누군가는 학교를 간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편의점에 간다. 데이트를 하러 외출 준비를 한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어딘가에 나갈 준비를 하는 것만 같다. 별 볼일 없는 일이라도 좋다. 몸을 자꾸 움직이고, 생각을 굴려보고, 오늘 하루를 내 스스로 운용하고 있다는 감각을 최대한 익히려 노력한다.
그래서 우린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한 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지만, 우린 암묵적으로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것’인 지도 모른다. 좀 더 멋져지고 이뻐지고 싶은 거다. 몸과 마음이,,
하지만 생각이.. 꼭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사는 것이 더 나은 나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생각을 하며 살기엔 세상은 너무나도 빨리 돌아가고, 나 또한 오늘 할 일에 대한 궁리만으로도 벅차다는 자기 최면에 스스로를 가둬 버리는 건 아닐까. 돈을 더 많이 주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그 연장선 상에서 사람을 만나고, 마음껏 읽어 재끼고 싶은 만화책보다는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이 좀 더 유용하다고 넘겨 짚는 것은 아닐까.
좀 더 자본주의 사회에 그럴 듯하게 적응하고 많은 인맥과 소유물을 포섭해 가면, 우리는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었다는 최면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단정지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물론 모두가 관념적일 수는 없다. 철학적일 필요도 없다. 어제보다 꼭 나은 내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기껏해야 몇 십 년 살다가 내 기억도 생각도 손에 쥔 돈 몇 푼도 땅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라면, 우린 ‘좀 더 다른 생각’을 해보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매스컴이 시끄럽고 드라마에선 도깨비가 출몰한다. 시끄러운 세상사 속에 흩뿌려지는 인간보다, 드라마 속의 허구적인 도깨비가 더욱 더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고민을 한다. 그래서 그러한 드라마의 인기조차 아이러니하다. 일그러져 있다.
정상적인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내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내려 놓고 살았던 것이 언제인지도 까마득하다.
그래도 우린 다시 기억해야 한다. 꼭 기억하고, 스스로에게 태엽을 감아 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꼭 멋지지 않아도 좋다. 단 한 가지 행동이라도 좋다.
그건 어린 시절의 나를 조금 더 강하게 향수지게 만드는 메타포와 같은 것인 지도 모른다. 가장 알기 쉬운 나를 가장 정면으로 바라보는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그를 위해 가장 좋은 스스로에 대한 확인 행위는 바로 ‘오늘의 마지막 생각’에 주목하는 것이다. 오늘 잠들기 전,, 아니면 퇴근하는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집에 돌아가려 무언가를 정리하는 짐 꾸러미의 일상 속에서 오늘의 마지막 생각을 주기적으로 떠올려 보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매만지고 얼굴을 이리 저리 둘러보며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 보듯이. 생각 또한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해도, 분명 내 머리 속에서 꽈리를 틀고 있는 그 무엇임이 틀림없을 테니, 그 생각을 가만히 내 방식대로 꼼지락거려 보자는 것이다.
거창한 인생 가치관이 아닐지라도, 오늘 하루 떠올랐다 자고 나면 잊혀 지는 생각의 끄나풀이라도 좋다. 그냥 내가 주변의 모든 환경과 소유물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벌거벗은 나를, 아주 순수한 태초의 나를 떠올렸을 때,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나의 순수한 응집과도 같은 존재가 오늘 하루를 통해, 떠오른 생각의 반추로 인해 조금이라도 그 결핍을 해소하지는 않았는지…
그 어제와의 다름이라는 1미리도 안 되는
생각의 조각들이 조금 더 퍼즐조각처럼
의미와 메타포를 한 웅큼 머금었는 지.
이러한 추상적인 단어, 문장의 나열조차도..
결국, 오늘에 대한 나를 어제와는 다르게 만들고 싶은 마지막 생각을 향해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이미지출처: www.behanc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