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힐.링.이 필요해.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했다.
“책을 읽는 이유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소설적인 감성을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관찰자적인 시점에서 누군가를 진지하게 바라보려는 심정일 수도 있을 법한 얘기다. 기본적인 관점, 아니 객관적인 관점에선 어떤 의도와 마음을 갖고 입 밖에 내어본 문장인 지 알 것 같다.
하지만, 진심으로 공감할 수는 없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나 자신의 고통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넓게 포괄하자면 나 자신의 감정과 사고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고 싶어진다. 언제나처럼.
살면서 우린 얼마나 많은 일을 겪는가? 그리고 그 일이란 것은 얼마나 나 자신도 모르는 방향으로 흘러가는가? 아니, 흘러갈 것을 예상한 일은 과연 내가 예상했던 흐름이라고 자신있게 단언할 수 있는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일어난 일(Event)의 사실관계(Fact)가 같다고 할 지라도 그 뒤에 벌어질 일들과 주변 상황, 인물, 분위기의 성격에 따라 전혀 다른 흐름으로 귀결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린 부족하지만서도 늘 조용하면서도 착실하게 주변을 응시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타고 있는 인생의 돛단배가 어떤 물결을 타고 있는 지 차분히 관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더 재밌어지고 흥미로운 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결과의 예측불가능성과 종착역이 있다는 한계성.
인생의 핵심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힐링’이 예능의 대세라고들 하는데 어떠한 사회상을 반영하는 지 가만히 관찰해 보면, 책을 읽는 나의 심정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는 것만 같아 화두를 던져본 것이다.
정말 ‘토크쇼의 홍수’라고 할만큼 다양한 형태의 인터뷰가 TV를 지배하고 있다. 종편채널의 집단토크쇼,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인터뷰하는 토크쇼, 개인이나 집단이 주축이 되어 삶을 풀어가는 배틀식 토크쇼 등… 미디어 비평이 단상의 메인이 아니긴 하다. 그래도 무릎팍 도사가 고전하다 막을 내린 건, 어찌 보면 섭외력 등을 뒤로 하고 볼 때, ‘윽박지르기식 진심 캐기’ 속에 어느 정도 루틴이 반복된 뒤, 찾아오는 피로감의 당연한 결과였는 지도...
힐링이 힐링이 아니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무언가 출연자가 편하게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된다. 마지막에 제시하는 도사의 해법은 출연자에게 있어 힐링이나 고민해결이라기 보단, 나와줘서 고맙다 정도의 인사치레를 다른 식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져 간다. 자본주의는 더욱 심화되며 거침없이 수레바퀴를 굴려 가속도를 높이고 있다. 재테크에 목숨 걸고 뛰어들면 행복해 지는 줄 착각을 하고 있다. 경쟁은 너나 할 것 없이 미덕이 되어 버렸다. 치열하게 사는 것이 기본 덕목이 되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물론 이 모든 것이 수단이 되어 또 다른 인생의 꿈을 위해 달려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각자 스스로가 마음에 품고 있는 그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은 남이 부여하는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러기 위해선 쉬어갈 줄 알아야 하고, 힐링을 해야 한다. 자기 스스로.
물론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리듬을 타면서도 내 감정과 사고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는 행위. 그것이 바로 힐링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 가에 대해 스스로 체크하며 조금씩은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것. 그것은 인생의 쉼표와도 같다.
힐링을 중간중간에 할 것인가, 동시다발적으로 할 것인가는 각자의 문제이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런 노력을 좀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토크쇼에 출연하는 사람은 책으로 얘기하자면 ‘소설 속의 인물’과도 같다. 내가 아닌 타인의 코멘트를 곱씹어 보며, “그래서 나의 위치는 이렇구나. 무언가 비슷한 상황 같은데 해 볼만 하구나. 다 찬란한 듯 보였는데 저런 아픔이 있었구나. 결국 같은 인간이였구나” 등 감정의 동일선상에서 무언가 반추해 보고 싶은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연예인의 사는 집, 차, 재산, 인맥 등은 별도로 간추린 소식처럼 다른 채널에서 난무해져 간다. 뉴스기사가 점점 양극화를 더해가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이 굴절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단상’ 시리즈에서 자주 언급하는 것이 너무 세속적인 것을 경계하는 것이지만, 이는 ‘현실감각을 유지한다.’라는 전제하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힐링’을 해본다. 과연 어떤 방식으로 하면 좋을까?
첫째. 일상을 세분화하는 것이다. 이는 하루하루의 스케쥴 속에서 방점을 자주 찍는 것을 말하는데, 아침에 A 업무를 하고, 오후에 B 업무를 하다가 집에 가던 일상에서, C와 D(예를 들면, 자신이 좋아하는 독서나 산책하기, 10분 정도의 야외 심호흡)를 적절한 템포로 삽입하여, A-C-B-D식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매일 일에만 집중하다, 야근이 반복되면, A-B-A-B의 인생을 살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일상을 의식적으로 개입시켜 삶이 단조로워지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일하는 것이 그리 피곤하지 않는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둘째. 생각을 세분화하고 심화시키는 것이다. 어떤 사람으로 인해 힘들고 답답한 경우가 있다면, 이를 세분화하여 나만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달래고 새로운 생각의 전환점을 마련하는 것이다.
처음에 인용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은 근육과 같아서 쓸수면 강해진다고들 한다. 관점을 조금만 바꾸어 보면, 나의 고통에 대한 이해력도 근육과 같기도 때문에, 점점 생각해 보고 쿨하고 스마트한 나만의 관점을 갖는데 집중하다 보면, 점차 바뀌게 된다. 인간관계가 좀 더 수월해 지고, 단순히 화가 나는 단편적인 반응이 점점 세분화 되며 상황별 대처법이 슬슬 몸에 익어가기 시작한다.
훈련하지 않는 사고의 근육은 퇴화하게 되어 있다. 퇴화가 진행되면, 모든 상황을 좋은 일과 나쁜 일, 기분 좋은 일과 화나는 일과 같이 양분화하기 쉬우며 삶의 감흥이 단편적이고 직설적이 되기 쉽다. 그러다 보면 점점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다. 좋을 때는 한 없이 좋고, 싫을 때는 한 없이 우울해 지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억의 소실과도 같은 선물을 준다. 왜 선물이냐면, 힘들었던 기억들도 언젠가는 “그땐 그랬지”하는 감상으로 평화로운 맺음말을 덫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에만 의존하기엔 우린 바쁜 인생을 살고 있으며, 나만의 방식으로 힐링하며 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후원자는 꼭 내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결국, 우리는 인생의 쉼표를 반복하다 마침표를 찍게 되어 있다. 유한성이 있기 때문에 유한한 시간 속에서 무한한 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무한함과도 같은 역설적 공간 속에 빈 칸이 마련되어 있다. 각자가 인생의 단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아둥바둥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문장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문장에 집어 넣을 단어 찾기나 쉼표 찍기를 넘어서, 단어와 단어 사이에 들어가는 빈칸에도 집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힐링’이다.
나만의 ‘셀프힐링’, 바꿔 말하면 ‘인생의 문장에서 뛰어쓰기와도 같은 작업’을 당신은 일상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가?
단어가 전부 붙어버린 인생의 문장.
결국 의미를 알 수 없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