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한국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예상되는 감성 구조와 극의 전개, 그리고 적당히 공항에서 재회하며 마무리하는 에피소드의 부재가 식상했다. 한 때 일본 드라마에 몰입해서 보던 것도 이제 더 이상 하지 않는다. 11회 정도로 구성되어 매 회별 완성도 있게 마무리 하는 에피소드식 구성은 초반 몰입을 주도하지만, 장르물적 한계성이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지금까지 본 드라마 중 꽤 기억에 남는 건, 2013년 tvN에서 방영한 이진욱, 조윤희 주연의 ‘나인’. 이 드라마는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몰입하고 싶어 진다. 예전부터 그랬다. 드라마는 재미도 우선이지만, 무언가 나에게 또 다른 상념과 생각의 정리를 수반해야 무언가 가슴을 열고 보게 되는 것만 같다.
무심코 들여다 본, 또 오해영. 이미 12회 시청률 9.4%(닐슨 코리아 기준)이 말해주고 있듯이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월요병도 잊게 해 주는 마력이 있다. 그 매력을 몇 가지만 살펴보자. 맘 잡고 A4 20페이지는 쓰고 싶지만 꾹 참고.. ㅎ
첫째, 흙수저 오해영의 홈비디오와 같은 표정연기와 대사를 뱉는 방식이다. 나는 여주인공 역의 서현진처럼 이렇게 다양하고 현실감 넘치는 표정과 대사를 본 적이 없다. 흡사 메이킹 필름을 매회 들여다 보는 것처럼, 표정은 장소와 상황에 따라 오글거리는 재미를 배가하고, 대사톤 역시 애드립인 지, 정극인지, 시트콤인 지 헷갈림 가득한 대사톤을 갖고 있다.
박도경에게 상처를 입고 우울해 하다가도, 금새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선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수십 가지의 오해영을 보여 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NG가 재밌는 이유는, 뻔하지 않은 정극 연기 이외의 표정과 대사를 발견하기 때문인데, 그것이 과잉되지 않게 정규 편성되어, 오해영의 심정을 120% 느끼게끔 하는 서현진. 2001년 SM 아이돌 그룹 ‘밀크’로 데뷔해서, 2006년부터 연기를 시작한 그의 오밀조밀한 매력은 ‘시청자의 보는 재미’가 무언가 알고 있는 것만 같다.
둘째, 사회 직딩들에 대한 갖가지 고민과 애환을 대변한다. 삼포, 오포, 칠포 세대로 비유되며, 연애, 결혼, 출산, 육아, 내 집 마련에 이르기까지 사회생활을 하는 30대의 심정을 곳곳에 에피소드와 장소적 설정으로 풀어 가고 있다. 박도경(에릭 분) 집에 얹혀 사는 설정으로 내 집 없는 설움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오해영은 회사에서도 상사에게 변변치 못한 평가를 받는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지도 못한 처지는 드라마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 무언가 외부적 요인으로 결혼을 하지 못한 많은 남녀들에게 페이소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것이 막장 아침 드라마나 판에 박힌 주말 홈드라마가 아닌 형태로 드러나고, 케이블 특유의 자유분방한 대사와 작가적 필력에 맞물리면서 재미를 배가한다. 극 주인공과 이름이 같은 박해영 작가는 2004년 올드미스 다이어리로 시트콤적 드라마의 키득거림을 이미 증명했다. 그 덕인지 예지원의 연기는 물이 오를 대로 올랐고, 여기저기서 행위예술 하듯 물흐르는 듯한 몸짓으로 심각한 고민이 필요 이상으로 깊어 지는 것을 완충해 주고 있다.
셋째, 흙수저 오해영은 금수저와 대비되지만, 절대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시선을 인식하고, 학창시절부터 풀리는 일 하나 없지만, 늘 자기답고 살고 싶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우리네 불완전한 인생길과 꽤나 궤도가 맞물려 있다.
오해영이 집에서 보여 주는 각종 광기와 푼수짓, 홈패션, 독백을 보면서도 왠지 비웃을 수 없는 건, 우리 역시 회사에서 돌아오면 꽤나 널부러져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꽤나 신드롬을 일으킨,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정’, ‘호타루의 빛’도 여주인공이 집에서 널부러져 있다가 그것이 마음 있는 남자에게 들통나면서 좌충우돌하는 비슷한 맥락을 갖고 있다.
넷째, 주인공 외의 주변 인물에 주목할수록 극중 페이소스는 높아진다. 박도경(에릭 분)의 동생으로 나오는 박 훈(허정민 분)과 윤안나(허영지 분) 커플은 아무 조건도 과거도 따지지 않고 무작정 사랑하고 무작정 표현한다. 자그마한 감정에도 엎치락 뒤치락하는 주인공들과 다르게, 그냥 마음껏 사랑할 줄 아는 철없는 젊은 커플의 모습에서 우린 왠지 모를 부러움을 느낀다.
주인공의 관계 변화에 따른 이 어린 커플들의 관계 변화에 한 번 주목해 보라. 물론 박수경(예지원 분)과 이진상(김지석 분) 커플도 순수한 사랑의 꿈을 잃지 않은 한 여자와 바람기 가득한 말그대로 진상의 남자 속에서 우리의 젊은 시절과 앞으로는 어떤 관계와 사랑으로 다가올 것인 가에 대해 미리 점쳐 보는 재미가 가득하다.
마지막으로, 시간이라는 코드가 과잉 되지 않게 드라마에 녹아 있다. 최근 몇 년간 인기몰이를 한 드라마, 영화의 구심점은 ‘시간’이었다. 과거와 미래로 이동하고, 그에 따라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소재는 드라마 나인을 통해 드러났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응답하라 시리즈도 과거를 바꿀 순 없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 볼 수 있다는 묘한 판타지가 스토리의 주축을 이룬다. 시그널, 시간을 달리는 소녀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흥행하진 못했지만 이러한 기류를 바탕으로 조정석 주연의 ‘시간이탈자’ 등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과거, 현재, 미래는 모두 이미 내 안에 있다는 설정으로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는 박도경(에릭 분)과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을 앞에 둔 그의 극단적 상황 속에, 극적 긴장감과 선택의 한계성은 더욱 더 우리를 몰입하게 한다. 해피엔딩도 중요하겠지만, 주인공의 감정선을 풀어 가는 에피소드의 주축이 무엇이냐가 향후에도 드라마와 영화의 성공을 좌우할 것이다.
한국 영화, 드라마에 대한 기대는 더욱 높아졌고, 꽤 재미있지 않으면 사람들이 보지 않는다. 뻔한 사랑 얘기, 치정극, 극단적인 설정은 시청자를 피곤하게만 할 뿐이다.
연기에 있어, 톱스타가 아닌 배우들이 작가적 스토리를 날개로 달아, 뻔하지 않은 흐름으로 극의 실타래를 풀어 가는 ‘또 오해영’. 앞으로 6회 정도 남은 지금에 있어, 벌써부터 아쉬움이 밀려오지만, 그 역시 행복한 고민이 아닐까.
우리네 삶의 공감대는,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페이소스로 충분히 반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여전히 시청자의 감각은 살아 있다. 그래서 ‘또 오해영’의 성공은 의미가 있다.
살면서 어떤 일을 겪어도 나다움은 표현하고 살라고,
사랑하고 싶을 때는 조건 따지지 말고
충분히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또? 오해영이,,
내 인생에 얼마든지 찾아와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