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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V피플 Jun 16. 2016

나를 그렇게까지 지켜서 뭐하나,,

진짜 나답게 표현하며 살려면,,


우린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둘러싸여 산다.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타인을 관찰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그리곤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된다. 매일매일 그러한 생활의 연속이다.
 
어릴 때부터 보아 온 수많은 사람들. 그들을 단 몇 가지로 유형화시킨다는 건 꽤나 건방진 일이고, 그것이 진실에 다가가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 스스로를 돌아본다는 의미에서 한 유형의 사람을 떠올려 보자. 꽤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한없이 지키는 사람이 있다. 가족 중에도, 학교 친구 중에서도, 회사에서도, 길을 걷다가도 자신을 지키기만 하려는 사람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자신을 지킨다’는 건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 언행, 생각, 가치관, 인생관 등을 그대로 고수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누구와 대화를 나누건, 어떤 상황을 만나건 절대 그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쉽게 말해 자기고집이 강하다. 물론 오해하지 말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잘 지키려는 노력이 의미 없거나 헛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나쁘다고 굳이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 지키려는 방식을 잘 들여다 보자. 모든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 수 없는데도 상황마저 주도하려고 하기 때문에, 늘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래서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짜증과 화를 뿜어내고, 싸움닭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시비를 건다. 나를 지키고 싶은 것 같지만, 사실 한없이 불안한 사람이다.
 
나와 다른 타인과 상황에 휘말려 내가 나답지 않게 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지금까지 꽤나 많은 상실을 겪은 경우가 많다. 더 이상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남은 건 악바리 근성과 주변에 대한 경계뿐이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그러한 경우,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이 느리기 때문에, 살면서 자연스레 습득하고 나이를 먹어 가면서 알게 되는 경험, 지혜, 지식의 흡수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점점 고집이 세어지니 늘 세상 앞에 나를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이 넘치는 것 같지만 심리적으로는 꽤나 위축되어 있고, 내면에 스트레스와 화가 가득하다. 자존감도 그리 높지 않다.
 
한 인물을 설정했지만, 결국 우리 모두가 그러한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나를 지키기만 해선 결국, 지금까지의 삐딱한 시선과 편협한 가치관의 나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남들은 앞으로 쭉쭉 뻗어 가며 각자의 이상향을 실현하려 할 때, 혼자만 뒤로 가는 느낌이다. 점점 더 완고해 진다.



 
우리 각자의 그러한 성향을 내려 놓는 것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시점부터 3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꽤나 중요해 진다. 40대가 되어선 잘 바꾸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없이 어두워지는 지도 모른다. 그러한 성향을 정체성으로 착각할수록.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자신을 지키는 건 결국, 나는 제자리에 서 있겠다는 것과 같다. 이미 현실로 드러난 결과에만 집착하는 방식이다. 일상이 새로울 것이 없다. 아니, 모든 것은 새롭고 흥미진진한데 도통 재미를 붙이지 못하는 것이다. 100년을 살아도 큰 보람이 없다.




 
자기를 표현하는 것에 눈을 떠볼 때가 된 것이다. 이젠 정말 그럴 때도 됐다. 화가 많고 결과적으로 남들 앞에 주목 받고 싶을수록 남이 하는 말과 시선에 영향 받는다. 그러니 자꾸 남 앞에서 나를 지켜야만 오리지낼리티(Originality)가 유지되는 것만 같다. 오히려 그 반대인데도 말이다.
 
상황은 늘 급변한다. 그리고 오늘 일어나는 일은 내 인생에 있어 결국 일어날 일이었다고 속 편하게 생각하자. 사람 사는 게 또 그렇다. 우위의 인생이란 없다. 인생의 비교란 결국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란 말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상황이 늘 변하고,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인생에 일어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한다면, 나를 지키려는 것은 그냥 주어진 밥그릇을 한 없이 움켜쥐는 보람없는 행동방식이다. 그것도 텅 빈 그릇을 말이다.
 
그보다는 백만 가지의 상황과 백만 가지의 인생의 길은 이미 나에게 펼쳐 져 있어서, 남은 삶은 내가 그 특정 인생의 길에 들어섰을 때 내가 나를 어떻게 드러내냐 하는 방식이다. 남에게 화를 내고, 내 입장을 견고히 하는 것만이 내가 아니다. 그런 건 학창시절이나 20대 일부의 시기로 충분하다.




 
오히려 나를 표현하는 건 얽매이는 게 아니라,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내 인생의 길에서 관계를 만들려면 새로운 흐름에 손을 뻗어야 한다. 내가 마음에서 진정 원하는 행동방식과 말투와 정면 마주하기로 말이다. 힘든 상황에서 그것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고, 심박수를 달리 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길에서 내 마음에서 나에 가장 가까운 일을 당연한 듯이 차분하게 펼쳐 보이는 것.
 
그런 경우, 결과가 안 좋다는 것 자체가 의미도 없고 떠오르지도 않는다. 두고 보면 인생에서 대단한 일은 없다. 우린 다들 태어나서 죽을 뿐이다. 정말로 그 뿐이다. 그리고 그 죽음의 순간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은 인생의 길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지금 이 순간에서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바로 내가 마음 먹은 그것을 바로 실천하는 것이다. 모두가 행복해 질 상황에서 객기를 부리는 것과 어렵다는 듯 느껴지는 상황에서 나답게 행동하는 것,, 과연 누가 더 행복할까?




 
산을 오르기 힘든데 산을 오르면서 차분히 정상으로 가면 그게 정상이었냐 하는 것과 관계없이, 실제로는 산을 오르기를 포기하지 않고 정면으로 걸었다는데서 인생의 희열이 나온다. 등산은 어차피 정해진 인생길이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역시 내가 태어난 순간 정해졌다는 말이다. 운명론도 아니고, 인생의 거대한 철학도 아닌, 그냥 오늘 하루 나답게 걸어 보자는 얘기다.
 
비로소 그 때, 나는 더 이상 인생의 어떤 길에서도 웅크리지도 피하지도 않게 된다.
 
더할 나위 없이, 지금이 가장 나다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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