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회사를 너무 대충 다니는 게 아닌가?" 무료한 오후, 나른함을 깨기 위해 같은 부서 직원들을 모아 티타임을 가지던 중 과장이 내게 말한다.
우리 부서 과장은 신입 때부터 회사일에 성실히 임한 듯하다. 틈만 나면 자기가 어떻게 회사생활을 해왔는지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말하고 또 말한다. 이미 세 번은 족히 들었고, 본인은 항상 자랑이 아니라곤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직원은 없는 듯하다.
"자네 후배 민수 군은 실적도 좋고, 출근시간 보다 한참은 일찍 출근하지 않는가. 선배 은영 양은 이번에 또 자격증을 준비한다던데" 과장이 덧붙인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사실 조금도 개의치 않았지만, 머쓱하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
과장이 내게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문제의 직원은 아니다. 나는 동료 직원들을 친절하게 대하며, 내 업무는 알아서 잘 처리한다. 단지 1인분 '이상'의 역할을 못할 뿐이다. 나는 남들 눈에는 자기계발이라곤 전혀 없는 평균 이하의 직원인 것이다.
"열심히보단 잘하는 게 중요하다네, 하하하" 과장은 진심을 실컷 다 말해놓고 장난인 듯 마무리한다.
직원들 앞에서 이런 수모(?)를 당해도, 내 행동을 전혀 고칠 생각은 없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나는 내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내게 맡겨진 업무에 구멍 내지 않고, 거래 업체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둘째, 나는 단지 직원들과 관심사가 다를 뿐이다.
남들이 토익을 공부할 때, 나는 영어회화 공부를 한다. 남들이 승진을 준비할 때, 나는 책을 읽는다. 그것도 인생에 전혀 필요 없어 보이는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소설 등을 읽는다. 나는 소위 '쓸모'없는 것에 관심이 있다. 이 외에도 성인이 돼서 독해력을 기르고 싶어 수능 비문학을 공부하고, 전공과 전혀 무관한 심리학과 대학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운동 면에서도 남들이 겉으로 과시할 수 있는 팔뚝, 어깨와 복근 운동을 할 때, 나는 건강과 가장 직결되는 등, 엉덩이, 햄스트링 운동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쓸모'가 나에게는 너무 매력이 없어 보인다. 승진을 하여 회사 사람들의 동경을 살 수 있지만, 책을 읽고 마음의 양식을 쌓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격증을 따서 기세등등한 것보다 과학 공부를 통해 나라는 사람의 기원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일반화를 시켜보자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객관적인 연구 결과 같은 건 없다. 그렇지만 왜 이렇게 맞는 것 같을까. 어린왕자도 말하지 않았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인생은 짧고 순식간에 지나간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런 얘길 남들에게 한다면 웃음거리가 되기 딱 좋아 보인다. 하지만 난 꿋꿋이 지켜왔다. 딱히 외로움을 느끼진 않았지만 외로운 싸움을 해온 것이다. 이런 내게, 처음으로 내가 잘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준 문구다. '쓸모'가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 가장 '쓸모'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