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엔 배신이 없다④

화려한 비상

by 이리천


나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M은 눈에 띄게 달라졌어. 무섭게 나한테 빠져 들었지. 들쑥날쑥했던 퇴근 시간이 칼같이 정확해졌고, 들어와서는 옷을 갈아입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시작했어. 주말엔 요리를 배우겠다고 쿠킹 클래스에도 등록하고, 나한테 옷을 직접 입혀주고 싶다고 뜨개질도 배우기 시작했어.

주말엔 제주도 목포 강릉 등 전국을 그녀의 미니쿠퍼로 돌았지. 휴가 때도 괌 사이판은 물론 보라카이 푸껫까지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아끼지 않았어. 그녀는 자신을 위해 썼던 돈을 모두 나를 위해 돌렸어. 자신이 먹던 음식과 술, 옷 값을 줄이고 대신 그 돈의 몇 배를 나를 위해 썼어. 그녀는 내 눈을 보며 행복하다고 했고, 나는 그저 조용히 웃어주기만 하면 됐지. 마치 <인간 실격>의 오오바 요조나 되는 것처럼. 어쨌거나 M의 일상은 급속히 안정을 찾아갔어.


회사 생활은 기적 그 자체였지. 있는 듯 없는 듯했던 그녀의 존재가 재조명받기 시작했던 거야. 나를 만난 해 가을에는 회사 안에서 전에 없는 기획안으로 회사 부장을 놀라게 했고, 그 기획의 결과가 호평을 받으며 사장의 귀에 까지 들어간 거야. 권고사직 대상으로 늘 위·아래에서 샌드위치,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M의 변신에 또 한 번 회사가 술렁였지. 사장은 모범상 시상으로 M을 자신의 임기 말년 성과·치적 케이스로 만들겠다고 결정했어.


하이라이트는 M이 온 직원 대상으로 수상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사람에겐 만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고(나와의 관계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그런 의미에서 여러 회사 선후배 동료, 그리고 사장님과의 인연이 더할 수 없이 귀중하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효과있는 '정치적' 멘트를 날린 거지.


사장은 M의 얘기가 막 끝나기도 전에 있는 힘껏 박수를 치며 일어나 장황한 치하를 시작했지. M은 단번에 사내에서 인간 개조 가능성을 증명해 보인 모범 사례로 떠올랐어. “M처럼 해봐”라는 말이 각 부서 부장들의 고정 레퍼토리가 된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지.


입사 후 단 한 번도 일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30대 말 골드미스가 단번에 선후배들의 따가운 질투를 시선을 받는 존재로 변신했을 때 느낄 수 있는 희열감이란. 그즈음 M은 기쁨에 들떠 집에 들어오면서 느닷없는 소리로 나를 종종 놀라게 하곤 했어. 나는 역시 조용히 웃어주기만 하면 됐고, 그녀는 그런 나를 안고 뒹굴며 마구 키스를 퍼부었지.


혼술도 줄고, 회사 생활도 안정돼가면서 그녀의 외모도 달라지기 시작했어. 볼과 턱밑, 엉덩이와 허벅지에서 살이 빠지면서 큰 눈과 긴 다리가 부각됐고, 거리에서 내가 독차지했던 시선이 어느새 그녀에게 분산되고 있음을 알게 됐어. M이 두 명의 남자로부터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는 사실을 수줍게 전하면서, “그렇지만 뭐 관심 없어”라고 말했을때, 난 그녀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가고 있었던 것을 놓치지 않았지.


마침내 지난해 여름, 그녀가 머리를 시원하게 올리고 퇴근하던 날, 나는 나도 모르게 먼저 그녀에게 키스하고 말았어.



(내 사랑엔 배신이 없다 5편에서 계속)



#사랑 #배신 #동거 #혼술 #존재감 #보라카이 #푸껫 #장례식 #냥냥이 #집사 #상속 #췌장암 #말기 #유튜버 #골드코스트 #편의점 #슬리퍼 #동거 #핫바 #비닐우산 #악몽 #사랑 #배신 #화재 #평창동 #자살 #수면재 #동거 #혼술 #존재감 #보라카이 #푸껫 #스타 #기상청



http://ttenglish.co.kr/


keyword